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17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학자와 전문가 2164명 공동선언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새해 1월8일 끝나는 이번 임시국회 회기 안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을 공언하면서 법안의 세부 쟁점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17일 정책의원총회를 열어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책임자 처벌을 위한 핵심 쟁점인 ‘인과관계 추정’ 조항의 위헌 소지를 없애 절충점을 찾기로 했다.
학계와 전문가 2164명은 공동선언문을 내어 법안의 세부 쟁점이 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을 법안에 포함하고 ‘50인 미만 사업장 유예’ 없이 법을 전면 적용하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세부 쟁점 가운데 핵심은 사업주에게 소속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대한 포괄적 책임을 지우는 조항 등인데, 노동계와 정의당 등의 입법 요구에 맞서 경영계도 반대 성명을 내는 등 격론이 일고 있다.
우선 중대재해 발생 때 인과관계를 추정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핵심 쟁점이다. 박주민·이탄희 민주당 의원 발의안에는 △사고 이전 5년간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수사기관 등에 의해 3회 이상 확인된 경우 △사업주가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등 사건 은폐를 지시한 경우에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책임이 없다는 입증을 해야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위헌 소지를 지적하고 있다. ‘범죄의 입증책임은 검사가 진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에 반한다는 까닭에서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도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이런 주장을 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지난 14일 발의한 안에서는 이런 이유로 인과관계 추정조항을 삭제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 단체는 “불가능한 것에 책임을 묻는 것”이라며 “경영책임자는 그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무거운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김도형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지금까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재발 방지를 꾀하기 어려웠던 사정들을 근거로 합리적 범위에서 인과관계를 추정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조항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환경범죄단속법과 환경오염피해구제법,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 등에서 이미 입법된 사례가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든다.
사업주에게 노동자의 보건·안전 책임을 두고 어느 범위까지 의무를 부과할 것이냐도 주요 쟁점이다. 박주민·이탄희 안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안 등에선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겪지 않도록 하는 사업주의 ‘위험방지 의무’를 포괄적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처벌 대상이 과하게 확장될 수 있고, 안전조처 및 보건조처 의무를 포괄적으로 규정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재계 단체는 “지켜야 할 의무가 명확히 주어진 이후 해당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을 때 처벌되어야 하는 것이 헌법 및 형법의 원리인데, 중대재해법안은 매우 불명확하다”며 “벌금 외에 경영책임자 개인 처벌, 영업정지·작업중지 등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 등 4중 제재”라고 반발했다. 이에 박범계 안은 산업안전보건법 등 법률에 규정된 의무만 사업주에게 부여하는 쪽으로 범위를 한정했다.
노동법률단체는 지난 16일 의견서를 내어 “새로 법률이 제정되거나 개정될 경우 이를 수시로 반영하기 어렵고, 개별법이 규정하지 않은 처벌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이 조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중대재해 당시 ‘2인 1조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더라도, 현행법에는 이 수칙이 규정돼 있지 않기에 경영책임자 처벌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정학 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포괄적으로 사업주의 의무를 규정하는 것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면 호주 등 국외 사례를 참고해 이 조항을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범위’에서 사업주가 (안전·보건) 의무를 지키도록 규정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17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2164명의 학자와 전문가 공동선언 기자회견에서 권영국 변호사(왼쪽 셋째)와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왼쪽 넷째) 등 참석자들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50인 미만 사업장의 법률 유예기간을 둘지 여부도 쟁점이다. 박주민·박범계 안에서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안전·보건 조처 마련을 전제로 법 적용을 4년 유예하는 방안을 담았다. 영세업체의 경우 안전의무자나 보건의무자를 두기 어렵다는 까닭에서다. 다만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이라도 이곳에 하청을 주는 원청이 있다면 그 원청이 형사책임을 지는 취지는 포함된다.
하지만 정의당과 노동계는 유예를 두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산재 통계를 보면,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산재보험 기준)는 전체의 59.6%였는데, 전체 사망자 중 비중은 77.2%이었다. 산재 사망자 10명 중 8명이 작은 사업장 노동자란 얘기다. 학자 전문가 2164명도 “무조건 유예할 게 아니라 원청이 있는 경우 원청이 책임지도록 하고 영세 사업장의 경우 정부가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다 하고 관리감독을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재계는 “산업안전 인력과 투자에 한계가 있는 중소기업들은 처벌 위험에 상시 노출돼 우려와 부담감을 떨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준용 조계완 기자
juney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