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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얼굴에 푹 빠진 20년… 이젠 사람이 느껴져요

등록 2006-06-06 19:43수정 2006-06-07 16:17

황진 사진관 안에서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선 주인장 황씨. 뒤쪽 벽에 그가 찍은 보통 사람들의 얼굴 사진들이 옷처럼 내걸렸다.
황진 사진관 안에서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선 주인장 황씨. 뒤쪽 벽에 그가 찍은 보통 사람들의 얼굴 사진들이 옷처럼 내걸렸다.
‘황진 사진관’ 주인장의 기념사진 이야기 /

■ 사진관 주인장은 이미지 사냥꾼?

황진씨는 자신을 작가 대신 ‘사진사’라고 부른다. 인사동길 중간쯤에 있는 ‘쌈지길’ 상가의 반지하 공간에 걸친 ‘황진 사진관’(02-739-8930)의 주인장이기 때문이다. 2004년 문을 연 이래 이곳은 ‘신기한 기념사진관’으로 소문 났다. 쌈지길 지하 전시장 가는 계단 중간에 있는 사진관은 2평 남짓한 쪽방이다. 들머리와 다른 쪽 난간 틈새로 자연광이 들어오는 이 귀퉁이 공간은 안팎이 온통 그가 찍은 인물사진들로 도배되어 있다. 비좁은 내부로 들어가면 현관 벽과 다락방이 온통 700장이 넘는 크고 작은 사진들과 티베트, 중국, 한국의 전통 고가구, 옛 석물들로 들어찼다. 안쪽 구석에 애장물인 10여 마리의 해태 석상과 친구인 작가 이재삼씨가 그려준 황씨의 대형 목탄 초상화가 걸려 있다. 원로작가 조성묵씨, 김을씨의 사진을 비롯해 웃는 진돗개, 다리를 물어뜯는 비둘기, 국가대표 스케이트 선수, 방송사 무명 탤런트, 가수 장사익씨, 트위스트 킴, 제약사 사장님 등의 사진들이 보인다.


수동카메라로 숨쉬듯 흑백 사진 작업
쌈지길 쪽방 사진관 차린 지 2년 만에
매일 필름 3통씩 1천여명 인연 맺어
“그저 찍어주고 간직하고 칭찬받는 재미에”

그는 기념사진을 폴라로이드나 흑백 필름으로 찍는다. 여느 사진관처럼 “고개를 돌려달라”, “얼굴을 들어달라”는 등의 귀찮은 주문을 하지 않는다. “앉아보세요” 하고 농담 몇마디 나누다 슬쩍슬쩍 찍어버린다. 황씨의 말대로 오직 “눈빛이 가장 맑아 보이는 한순간”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선한 표정이 가장 잘 나온다고 해서 인사동 마니아들 사이에서 황진 사진은 독특한 기념사진의 전형으로 꼽힌다.

다락이 딸린 황진사진관 내부. 개개인의 인생이 담긴 한순간의 표정들이 모인 각양각색 인물 사진들로 빼곡하다. 옛적 시계, 라디오, 옛 석물 등도 함께 있는 이 공간은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물씬하다.
다락이 딸린 황진사진관 내부. 개개인의 인생이 담긴 한순간의 표정들이 모인 각양각색 인물 사진들로 빼곡하다. 옛적 시계, 라디오, 옛 석물 등도 함께 있는 이 공간은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물씬하다.

■ 사진은 드로잉!

누가 아날로그 사진을 추억과 향수의 상징이라고 했을까. 누구든 디지털 카메라(디카)와 포토샵으로 이미지를 주무르는 시대지만 사진관 주인장 황씨는 아날로그 카메라 작업을 숨쉬는 삶처럼 받아들인다. 다른 이들이 디카 찍듯 아날로그 수동 카메라로 숨쉬듯 물마시듯 사람들을 찍고 또 찍는다. 영화처럼 순간순간 만나는 사람들의 인상과 사연을 담고, 클래식 카메라와 흑백 인화를 고집하면서 특유의 황진 사진을 만든다. 무엇보다 찍는 인물들이 그와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그들의 개별적인 사연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인간적인 사진을 찍는다는 것, 곧 촬영하는 행위 자체가 사연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목인 갤러리의 기획자 박준헌씨는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지닐 수밖에 없는 카메라의 기계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작업”이라고 정의한다.

인물 군상 작업은 독일 민중 사진으로 유명했던 20세기 초 거장 아우구스트 잔더나 웨인 왕 감독의 영화 〈스모크〉에서 가게 앞 사람들 사진을 날마다 찍던 점원 오기를 언뜻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사회비판적인 거대담론이나 휴먼 다큐 사진으로 범주를 가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오직 빛과 자신의 시선이 맞을 때만 셔터를 누른다는 게 원칙이다. 1993년 뉴욕 유학 시절 백남준이 비디오볼을 이리저리 굴리는 퍼포먼스를 우연히 찍은 사진을 가장 아낀다는 그는 “순간적인 느낌만으로 사람을 읽어내고 헤아리는 재미로 일한다”고 했다.

황씨가 사람들 얼굴만 찍기 시작한 건 벌써 20년이 넘었다. 대학 다니던 83년부터 시작했고 인사동 사람들 사진에 재미를 붙인 것은 2004년 쌈지길에 사진관을 차렸을 때부터였다. 지난달 17~23일 목인갤러리에서 열린 ‘산·오름’이란 제목의 풍경사진전을 비롯해 사진으로만 벌써 6차례 이상 개인전도 했다. 하지만 인사동 사람들을 2년간 1000명 넘게 찍은 작업들은 아직 파일로만 계속 쌓아두는 중이다. 지인들에게 그냥 주고 간직하고 칭찬받고 싶어 찍은 것들이어서, 아직은 전시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고백이다.

실제로 그는 사진을 드로잉이라고 단언했다. 즉흥적인 일필 일획으로 승패를 가늠짓는 문인화처럼 사진 또한 일필일획의 시선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마음이 동하면 삽시간에 여러 통 찍을 수 있고, 순간순간 충만하고 삶에 의욕적일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좋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2~3분 사이에 좋은 컷들이 쉽게 쏟아져 나온다는 매력이 작업의 비타민이 되지요.”

인사동 길에서 쌈지길 상가 여직원을 붙잡고 ‘찰칵’. 말을 건네면서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버릇이다.
인사동 길에서 쌈지길 상가 여직원을 붙잡고 ‘찰칵’. 말을 건네면서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버릇이다.

■ 다시 한번 찰칵!

매일 저녁 8시 그의 발길은 충무로 골목으로 향한다. 단골 현상소로 가서 필름을 맡기고 전에 맡긴 필름의 현상 사진을 받아들고 다시 가게로 돌아온다. 밀착 인화지를 보면서 최종적으로 뽑을 이미지를 고른다. 보통 하루 3통의 필름 가운데서 60%를 건져 파일로 보관한다. 오늘은 그의 전시회 개막 때 왔던 소설가 장정일의 사진(8×10)을 본다. 눈자위 아래가 심하게 그늘진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는 듯, 곡절 많은 작가의 인생사가 잡히는 듯하다. 느낌이 좋다. 인화할 필름들을 넣은 종이첩에 특유의 당나귀 드로잉을 한다. 작품에 기운을 불어넣으려는 의도에서 그리는 부적 같은 것이라고 한다.

집에 돌아가려는 찰나 휴대폰이 울린다. 〈왕의 남자〉를 만든 감독 이준익씨(그 또한 황씨 사진을 좋아하는 컬렉터다)와 같이 있으니 한잔하러 오라는 화랑 큐레이터의 들뜬 목소리다. 좋지! 다시 카메라에 필름을 일발 장전하고 득달같이 인사동 식당으로 달려간다. 사람 좋은 그와 소주잔 쨍하게 부딪친 뒤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요즘 광고 찍느라 정신없다고 푸념하는 이 감독의 어눌한 웃음을 보는 황씨의 눈이 파릇파릇 빛난다. 농담 진담 나누며 이 각도 저 각도로 찰칵찰칵, 카메라 돌려대며 팡팡 찍는다. 신이 났다. 이젠 다시 미술작업을 해봐야겠다는 이 감독의 다짐을 들으면서 자리를 나서자마자 옆 공사장의 푸른색 볼보 대형 트럭이 눈에 들어온다. “감독님 트럭 앞에서 잠깐 포즈 잡아봐요! 느낌이 팍팍 오는데요.” “…”(찰칵!)

그는 말한다. “좋은 사진은 우연히 날아오른 새 한 마리예요. 숲에서 이미지를 찍다가 새가 푸드덕 날아오르면 왜 기분 좋은 거 있잖아요. 빛은 새예요. 날아오르는 새처럼 기분 좋게 빛이 앵글과 맞물리면 상큼한 사진이 되지요. 사진사의 대가 브레송도 애초엔 사냥꾼 생활을 했다잖아요?”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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