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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집배원 정씨가 병원에서 좌판 차린 사연은?

등록 2006-06-13 17:21수정 2006-06-14 16:09

김옥숙/소설가
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거참! 자네, 해도 해도 너무하잖나? 이게 병실인지 시장통인지. 이제 사람들 제발 그만 오라고 해. 저기, 구석에 쌓인 저 계란하고 참기름하고 과일나부랭이에다 호박 좀 봐. 아예, 좌판을 차리지 그래.”

“아이구! 영감님, 이거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다음부텀 절대 물건들을 받지 않겠습니다. 어르신들이 안 받으면 어찌나 화를 내시는지.”

황 노인이 어깃장을 부리자 우체부 정만수씨가 뒤통수를 긁적입니다. 그 순박한 얼굴에 미안한 표정을 한껏 담고는 포크에 배를 찍어 내밀었지만 황 노인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우체부 정만수씨가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다는 소문이 퍼지자 읍내 고려병원 305호실은 난리 북새통입니다. 무슨 유명 정치가나 유명 탤런트가 입원해도 이보다 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뭔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병문안을 오는 통에 아닌 게 아니라 무슨 좌판을 벌려놓은 것 같군요.

집 계단에서 넘어져 골반 뼈를 다친 황 노인에게는 면회를 오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간병인만 들락거릴 뿐 자식들과 친척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30년 전, 황 노인은 가난 때문에 신부전증을 앓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지요. 황 노인은 돈에 한이 맺힌 사람이었습니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 부동산투기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친척들이 돈을 빌려달라고 해도 돈 한 푼 빌려주지 않았고 자식들에게도 인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말년에 그는 고향의 땅을 사들여 으리으리한 집을 지었지만 드나드는 사람은 파출부밖에 없었습니다.

“이 할미, 좋아하는 갈치도 사다주고 전기세도 내줘야 할 거 아니여. 이건 곰국이여. 어제 밤새 고았다니께. 이거 먹고 지발 빨리 나으란 말이여.”

주름이 쪼글쪼글한 할머니가 정만수씨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찍어냅니다. 꼭 다친 자식을 쳐다보는 듯한 짠한 눈빛입니다.

“안 갖고 오셔도 되는데… 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퇴원해요. 퇴원하면 제일루 맛있는 갈치루다 사다 드릴게요.”

정만수씨가 살갑게 대답을 하자 할머니가 안심이 되는지 그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고는 병실을 나갑니다. 20년을 한결같이 우편배달을 하며, 외로운 노인들에게 설탕과 소금과 간고등어까지 사다주고 온갖 은행 심부름까지 했던 정만수씨였지요. 황 노인은 정만수씨가 배달했던 것은 자신이 가진 수백억원의 재산보다 천 배 만 배 귀한, 정과 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 노인은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우체부 정만수씨의 옆얼굴을 쳐다보며 그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그늘을 가진 느티나무인지 깨닫습니다. 그 그늘 아래서 잠시 앉아 쉬고 있는 황 노인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져나갑니다.

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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