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과학 수업 시간에 나영성 교사가 막대온도계의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묻자 한 학생이 일어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삼우초교의 수업 /
13일 오전 8시45분. 3학년 담임 나영성 교사가 아이들에게 과학 책을 펴라고 말했지만 한 아이는 스티커 붙이기에 정신이 없다. 그가 슬쩍 축구 이야기를 꺼냈다.
“축구 봤어요? 우리나라가 이겼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아이들이 돌아가며 답한다. “행복했어요.” “날아갈 것 같았어요.” “좋았어요.” 눈들이 반짝인다.
그때 수업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들렸다. 과학 시간. 날씨와 생활이 오늘 배움 주제다. “오늘 기온이 얼마인지 알아볼까요?”
아이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실 안팎에 걸린 4곳의 온도계로 달려가 눈금을 본 뒤 자리로 돌아와 저마다 온도를 말했다. 복도쪽은 23도, 교실 안의 두 곳은 24도, 바깥에 걸린 온도계는 20도였다. 나 교사는 아이들에게 온도를 재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 하도록 했다. “저요, 저요.” 서너 명의 아이들이 손을 든다.
“저는 밖의 온도가 추워서 내려갔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주어를 빠트리면 나 교사가 “저는”이라고 바로 잡아 준다. “저는 바깥이 왜 20도냐 하면 교실 안은 조금 따뜻하고 밖은 춥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덧붙이겠습니다. 교실 안은 학교가 감싸줘서 그렇습니다.” “빨간 액체는 사람보다 온도에 민감합니다.”
한 아이가 민감이라는 말을 쓰자 나 교사가 “교양있는 말을 썼다”고 칭찬하고 아이들의 박수를 끌어낸다. 아이들은 민감이라는 이라는 말을 되새기는 듯하다.그는 얼마 전 아이들 대부분이 풍부라는 단어의 뜻을 몰라 그때부터 ‘고급 단어’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 반 학생 10명 가운데 5명이 ‘결손가정’ 아이들로 어려서 돌봄을 받지 못해 또래 아이들보다 기본학습 능력이 조금 떨어진다. 나 교사의 고민거리다.
“빨간 액체는 온도에 민감해요”, “온도계에 들어갔어요, 나 살려”
아이들 말하고 해보고 느끼고… 선생님은 그저 친절한 길잡이
이어 나 교사는 맑은 날과 비오는 날은 왜 온도가 다른지, 온도계의 빨간 액체는 왜 올라가고 내려가는지, 막대 온도계 이름은 왜 막대인지, 온도계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등에 대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질문을 계속 했다.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눈 뒤 발표하는 시간도 있다. 아이들 말이 어눌해도, 엉뚱한 이야기를 해도 나 교사는 짧은 말로 이끌어갈 뿐 미리 설명하지 않고 아이들 입에서 ‘정답’이 나오기를 끈기있게 기다렸다. 날씨를 몸짓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 시간이 지났지만 딴 짓 하는 아이들 하나 없다. 모두가 웃는 표정. 수업이 아니라 놀이 시간 같다.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났지만 수업은 이어진다. 이 학교는 수업을 과목별로 몰아서 두 시간씩 한다. 나 교사는 “한 시간 수업은 아이들을 깊이 있게 끌고 들어갈 수가 없다”고 이유를 들었다.
아이들이 온도와 온도계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자 나 교사가 이제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아이들이 탄성을 지른다.
모두 함께 노래를 시작했다. “콩~콩. 나는 콩. 동글동글 콩.” 맨 왼쪽에 있는 아이가 혼자 답한다. “체온계 속에 들어갔어요. 아이 뜨거, 아이 뜨거.” 다시 합창. “아이 뜨거, 아이 뜨거. 콩~콩. 나는콩.” 그 옆자리의 아기가 노래했다. “막대온도계 속에 들어갔어요. 아이고 나 살려, 아이고 나 살려.” 이어 나 교사가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묻는다. “사우나에 들어갔어요.” “찬물에 들어갔거든요.”
이를 통해 아이들은 온도계의 종류와 쓰임새를 다시 한번 정리하게 된다. 수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날씨와 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아이들은 텃밭으로 몰려갔다. 비가 쏟아졌지만 아이들은 수건과 신문지를 머리에 쓰고 바깥으로 달려간다. 교실에서와 마찬가지로 비와 농사, 비와 생활에 대한 문답이 이어진다.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시를 발표했다. “저요, 저요.” 모두 한 자락씩 비, 날씨 등과 관련된 시를 읊조린 뒤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와 공책에 시를 썼다. 수업끝.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빨간 액체는 온도에 민감해요”, “온도계에 들어갔어요, 나 살려”
아이들 말하고 해보고 느끼고… 선생님은 그저 친절한 길잡이
삼우초등학교는 학급마다 텃밭을 가꿔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농사를 배울 뿐 아니라 작물과 교감하는 명상을 통해 심성을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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