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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딴짓요? 공부가 놀이인 걸요”

등록 2006-06-20 17:42수정 2006-06-21 15:18

3학년 과학 수업 시간에 나영성 교사가 막대온도계의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묻자 한 학생이 일어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3학년 과학 수업 시간에 나영성 교사가 막대온도계의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묻자 한 학생이 일어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삼우초교의 수업 /

13일 오전 8시45분. 3학년 담임 나영성 교사가 아이들에게 과학 책을 펴라고 말했지만 한 아이는 스티커 붙이기에 정신이 없다. 그가 슬쩍 축구 이야기를 꺼냈다.

“축구 봤어요? 우리나라가 이겼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아이들이 돌아가며 답한다. “행복했어요.” “날아갈 것 같았어요.” “좋았어요.” 눈들이 반짝인다.

그때 수업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들렸다. 과학 시간. 날씨와 생활이 오늘 배움 주제다. “오늘 기온이 얼마인지 알아볼까요?”

아이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실 안팎에 걸린 4곳의 온도계로 달려가 눈금을 본 뒤 자리로 돌아와 저마다 온도를 말했다. 복도쪽은 23도, 교실 안의 두 곳은 24도, 바깥에 걸린 온도계는 20도였다. 나 교사는 아이들에게 온도를 재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 하도록 했다. “저요, 저요.” 서너 명의 아이들이 손을 든다.

“저는 밖의 온도가 추워서 내려갔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주어를 빠트리면 나 교사가 “저는”이라고 바로 잡아 준다. “저는 바깥이 왜 20도냐 하면 교실 안은 조금 따뜻하고 밖은 춥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덧붙이겠습니다. 교실 안은 학교가 감싸줘서 그렇습니다.” “빨간 액체는 사람보다 온도에 민감합니다.”

한 아이가 민감이라는 말을 쓰자 나 교사가 “교양있는 말을 썼다”고 칭찬하고 아이들의 박수를 끌어낸다. 아이들은 민감이라는 이라는 말을 되새기는 듯하다.그는 얼마 전 아이들 대부분이 풍부라는 단어의 뜻을 몰라 그때부터 ‘고급 단어’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 반 학생 10명 가운데 5명이 ‘결손가정’ 아이들로 어려서 돌봄을 받지 못해 또래 아이들보다 기본학습 능력이 조금 떨어진다. 나 교사의 고민거리다.


“빨간 액체는 온도에 민감해요”, “온도계에 들어갔어요, 나 살려”
아이들 말하고 해보고 느끼고… 선생님은 그저 친절한 길잡이

삼우초등학교는 학급마다 텃밭을 가꿔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농사를 배울 뿐 아니라 작물과 교감하는 명상을 통해 심성을 가꾼다.
삼우초등학교는 학급마다 텃밭을 가꿔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농사를 배울 뿐 아니라 작물과 교감하는 명상을 통해 심성을 가꾼다.

이어 나 교사는 맑은 날과 비오는 날은 왜 온도가 다른지, 온도계의 빨간 액체는 왜 올라가고 내려가는지, 막대 온도계 이름은 왜 막대인지, 온도계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등에 대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질문을 계속 했다.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눈 뒤 발표하는 시간도 있다. 아이들 말이 어눌해도, 엉뚱한 이야기를 해도 나 교사는 짧은 말로 이끌어갈 뿐 미리 설명하지 않고 아이들 입에서 ‘정답’이 나오기를 끈기있게 기다렸다. 날씨를 몸짓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 시간이 지났지만 딴 짓 하는 아이들 하나 없다. 모두가 웃는 표정. 수업이 아니라 놀이 시간 같다.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났지만 수업은 이어진다. 이 학교는 수업을 과목별로 몰아서 두 시간씩 한다. 나 교사는 “한 시간 수업은 아이들을 깊이 있게 끌고 들어갈 수가 없다”고 이유를 들었다.

아이들이 온도와 온도계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자 나 교사가 이제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아이들이 탄성을 지른다.

모두 함께 노래를 시작했다. “콩~콩. 나는 콩. 동글동글 콩.” 맨 왼쪽에 있는 아이가 혼자 답한다. “체온계 속에 들어갔어요. 아이 뜨거, 아이 뜨거.” 다시 합창. “아이 뜨거, 아이 뜨거. 콩~콩. 나는콩.” 그 옆자리의 아기가 노래했다. “막대온도계 속에 들어갔어요. 아이고 나 살려, 아이고 나 살려.” 이어 나 교사가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묻는다. “사우나에 들어갔어요.” “찬물에 들어갔거든요.”

이를 통해 아이들은 온도계의 종류와 쓰임새를 다시 한번 정리하게 된다. 수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날씨와 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아이들은 텃밭으로 몰려갔다. 비가 쏟아졌지만 아이들은 수건과 신문지를 머리에 쓰고 바깥으로 달려간다. 교실에서와 마찬가지로 비와 농사, 비와 생활에 대한 문답이 이어진다.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시를 발표했다. “저요, 저요.” 모두 한 자락씩 비, 날씨 등과 관련된 시를 읊조린 뒤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와 공책에 시를 썼다. 수업끝.

아이들이 주인이에요~ 지역주민들도 쓰세요~

철학 담긴 학교건물

삼우초등학교는 5월말 새로 지은 건물로 이사를 했다. 2층으로 단아하게 지어진 교사는 학교 건물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예쁘다. 구경을 위해 학교를 찾은 사람들은 건물에 담긴 이 학교 교사들의 교육 철학을 들으면 더욱 놀란다.

삼우초교의 공간은 철저하게 학생중심이다. 교사 한 가운데에 도서실이 마련되어 있다. 교장실과 교무실이 현관 양쪽에 자리한 여느 학교와는 다르다. 학생들이 주로 생활하는 교실을 1층에 모두 뒀다. 도서실을 둘러싸고 동그랗게 자리하고 있다. 교사들은 한눈에 아이들을 감시할 수 있는 일자형 복도는 교육적이지 않다고 생각해 그렇게 만들었다.

교실 안의 사물함은 모두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2단 80㎝를 넘지 않도록 했다. 교실 바닥은 원목으로 만든 온돌마루를 깔아 아이들이 안방처럼 뛰놀 수 있도록 만들었다. 교실마다 두 개의 출입문 외에 텃밭으로 나가는 문을 따로 만들어 돌아가지 않아도 되도록 했고, 돌아올 때 손을 씻을 수 있도록 세면기도 설치했다.

이 학교에는 학생 휴게실도 있다. 전통문화체험실, 미술실, 목공도예실, 과학실, 세미나실, 정보자료실, 작품전시실 등 특별활동을 위한 공간도 많이 마련했다.

학교 건물은 지역사회와의 소통이라는 철학도 담고 있다. 1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전통문화체험실은 온돌마루를 깔고 심야전기를 들여 지역 농민들이 도농교류나 해외교류 때 숙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2층에 마련된 극장형 시청각실은 문화행사 때 사용할 수 있는 작은 공연장이다. 식당도 유기농교육실을 겸한다. 여느 학교에서 관리가 어려움을 들어 수업이 끝난 뒤에 학교 공간을 닫아 거는 것과 달리 삼우초교는 지역민들이 이용하는 공간은 학생들의 수업공간과 분리해 접근할 수 있도록 동선을 짰다. 지역 주민들이 학교 수업이 끝난 시간에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학교 건물을 설계할 때 교사들은 학교 운영위원회와 함께 회의를 거듭했다. 교실, 도서실, 특별활동실 등 공간 배치는 물론 외장 벽돌의 색깔과 재질 결정, 페인트 색깔, 채광을 위한 벽체 창문 설치 등 시시콜콜한 문제에 대해서도 토론을 벌였다.

삼우초등학교는 학급마다 텃밭을 가꿔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아이들은 이곳에서 농사를 배울 뿐 아니라 작물과 교감하는 명상을 통해 심성을 가꾼다.
삼우초등학교는 학급마다 텃밭을 가꿔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아이들은 이곳에서 농사를 배울 뿐 아니라 작물과 교감하는 명상을 통해 심성을 가꾼다.

아침 8시30분, 하루의 시작

학교종이 땡땡땡♬ 명상과 텃밭이 기다립니다

삼우초교는 8시30분에 하루가 시작된다. 0교시 수업을 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의 심성을 곱게 하고 수업 시간에 앞서 들뜬 아이들을 차분히 가라앉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사들이 만든 시간이다.

14일 8시30분 2학년 교실. 송수갑 교사와 아이들이 교실 한 켠에 마련된 탁자 위에 모여 있다. 송 교사가 사물함 옆에 마련된 수납장에서 다구를 꺼낸다. 2학년은 일주일에 세 번은 차를 마시고, 두 번은 운동장 한 켠에 가꾸고 있는 텃밭에 나가 작물을 돌본다.

학교에 온 뒤 친구들과 재잘대며 교실 안에서 장난을 치던 아이들이 찻잔과 받침대가 나눠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졌다. 시간이 많지 않아 차는 송 교사가 우리고 아이들은 다관을 받아 돌아가면서 차를 따랐다.

이때 강은수가 “상혁이가 안좋은 말을 했어요. 제가 제일 싫대요.” “마음을 가라 앉혀볼까”라는 송 교사의 말에 은수가 바로 눈을 감고 다른 아이들도 따라 한다.

“텃밭의 작물에게 사랑을 보내볼까요. 사랑을 보내면 누구에게 좋은 일이지?”

“우리가 먼저 좋아져요.” 합창하듯 말하는 아이들. “자, 이제 그만” 이처럼 차를 마실 때는 명상도 함께 한다. 이어 송 교사가 이날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첫 시간은 대나무 물총을 만들어 보는 시간인데 비가 와서 물총 놀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어 수업을 하려고 해요. 다음에 꼭 시간을 내서 할테니 오늘은 그렇게 하도록 하면 어떨까.”

싫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송 교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조금 지나자 아이들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텃밭 가꾸기는 아이들이 농사를 이해하고 배우며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하기 위해 만든 시간이다. 이곳 아이들은 집에서 곧잘 부모의 농사일을 돕는다. 아이들은 텃밭에서 작물에 사랑을 보내는 명상을 하고 작물의 변화도 관찰한다. 교사들은 텃밭을 가꿀 때 잡초나 벌레 처리에 대해서도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도록 한다. 벌레를 멀리 개천에 가져다 놓아주자는 아이, 땅을 파고 깊이 묻어 거름이되도록 하자는 아이, 잡초가 작물보다 크지 않도록 조금만 뽑자는 아이 등.

“아이들은 잡초와 작물이 사이좋게 자라도록 명상할 때가 많아요.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작물은 물론 친구들도 모두 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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