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지난 12일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되고 있다.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적용으로 이번달 열린편집위원회 회의는 화상으로 이뤄졌다. 줌 화면 갈무리
지난달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서른여섯살의 당대표가 배출됐다. 이준석 대표 당선은 ‘이준석 현상’으로 불리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 12일 오후 4시 온라인으로 진행된 9기 열린편집위원회 회의에서는 이른바 ‘이준석 현상’을 비롯한 한겨레의 청년 정치 관련 보도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김민정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경미 위원(섀도우캐비닛 대표), 김보림 위원(청소년 기후행동 활동가), 김준범 위원(한라홀딩스 부사장), 임자운 위원(법률사무소 지담 변호사), 홍윤희 위원(장애인이동권컨텐츠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황세원 위원(일in연구소 대표)이 참여했다. 한겨레에서는 이봉현 저널리즘책무실장과 권태호 에디터부문장, 정환봉 소통데스크가 함께했다.
김민정 정치 이슈 중에서도 청년 정치에 초점을 맞춰 자유롭게 의견을 나눠보자. 최근 <한국방송>(K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질문하는 기자들 큐(Q)’에서도 언론의 청년 보도 점검이 있었다. 세가지 지점을 짚었다. 첫째, 이준석 대표 당선 이후 언론이 ‘이대남’(20대 남성)을 보수적이고 반페미니즘적이며 공정 이슈에 민감한 특정한 성향을 지녔다고 납작하게 규정하고 객체화하는 문제를 짚었다. 또 이대남의 반대쪽에 20대 여성을 두고 둘 사이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를 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마지막으로 언론이 주로 서울지역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외면받는 청년들이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한겨레도 비슷한 문제가 있지 않았는지 짚어보자.
김준범 청년 이슈에 대해 한겨레는 다른 언론과 확실히 다른 스탠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본질을 상당히 잘 짚어주고 있다고 본다. 다만 젠더 갈등이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 임명 관련 기사의 제목이
‘박성민 논란…비뚤어진 공정 잣대로 20대 자극 분노 장사’였는데, 분노 장사라고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보수 언론이 (20대 남성의 생각을 왜곡하며) 너무 한쪽 끝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데, 한겨레는 또 그 반대로 너무 강하게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극단적인 갈등을 보도하라는 게 아니라 20대 남성의 생각과 현실을 제대로 취재해 드러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민정 인터넷 커뮤니티나 대학 익명 게시판 반응을 소재로, 청년들이 대부분 박 비서관의 임명을 불공정하다고 보고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문제를 한겨레가 잘 짚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박 비서관 관련 기사(‘박성민 논란…비뚤어진 공정 잣대로 20대 자극 분노 장사’)를 보면 그가 어떤 정치적인 경력과 자질을 가지고 있어 임명된 것인지 잘 나와 있다. 이어 임기가 길지 않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우려와 함께 청년이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도 짚었다. 한겨레가 중심을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
임자운 이번 논란을 보면서 예전 인천공항공사 사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청년들의 목소리보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자극적 발언을 언론이 확대 재생산하고, 이것이 청년들의 대표적 입장인 것처럼 보도한다. 물론 그런 입장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청년이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박 비서관 논란도 이렇게까지 이야기 해야 하는 문제인가 싶다. 그런 측면에서 한겨레가 이번 논란에서 관련 기사를 많이 쓰지 않으면서 한발짝 떨어져 진단하고 여타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다른 의견들을 다뤄주는 역할을 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김경미 청년들이 왜 이 문제에 분노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주현 정치부장의
‘박성민과 공정감의 온도’라는 칼럼이 의미가 있었다. 이 이슈가 단선적이지 않은 복잡한 문제이며, 어느 한편에서 양쪽을 재단하지 않겠다는 심경이 담겨 있다. 유럽의 경우 정당의 리더십 훈련 등의 코스를 거쳐 정치인이 된다. 박 비서관 역시 비슷한 사례인데 그런 이력이 한국 사회 청년 그룹 안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 아닐까 한다.
홍윤희 한겨레에서 박 비서관 임명 논란과 관련한 서베이를 진행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박 비서관 임명을 왜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 고민해보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독자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분석할 수도 있고 그 결과를 잘 가공하면 기사로 쓸 수도 있다고 본다. 또 청년 이슈를 이야기할 때 수도권 대학생 목소리에 대한 과도한 집중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가령 특성화고 학생이나 졸업생들이 생각하는 한국 정치나 정책에 대한 생각도 들어본다면 한겨레의 폭이 더 넓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김보림 이번 주제와 관련한 한겨레 사설과 칼럼이 인상 깊었다. 이른바 ‘이대남’ 이슈로만 다루는 게 아니라 청년 세대를 일반화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설과 칼럼이 많았다. 다른 언론사에서는 이 이슈와 관련해 논란이 되거나 자극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왜곡해서 다루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겨레는 그러지 않아서 좋았다. 다만 이 문제가 복잡한 문제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서 앞으로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다루는 기사들이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김민정 한겨레 기사들을 검색해보니 2019년 12월
‘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이라는 기획이 연재된 적이 있었다. 지역, 계층, 학력이 다 다른 청년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기사였다. 그 뒤로 2년이 지났는데 그들을 다시 만나 지금 생각은 어떤지 업데이트를 해주는 보도를 해주면 어떨까 한다.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기획 기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정당에서 경력을 쌓은 청년을 다른 청년들조차 인정해주지 않는 정치 문화에 대한 지적도 있었는데, 이 문제는 이준석 현상과도 연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준석 현상에 대해 세대교체나 청년의 정치 세력화 필요성 등 당위적 해석만 나오는데 구체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답답했다. 토요판에 실린
‘“권력은 찬탈하는 것…청년이 의사결정 핵심에 도전해야”’ 기사가 이준석 현상을 청년 정치인 3명에게 직접 들어봤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황세원 좋은 기사였다. 조민경 인천 연수구의원의 말 중 ‘청년이고 여성이면 청년과 여성 정치만 강요하고 그 부분만 담당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내용이 와닿았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의 ‘청년 정책은 청년의 관점에서 모든 정책을 봐야 나오는 것인데, 마치 특정 분야, 특정 부분을 할당하고 배려하는 것이 정치권이 해야 할 모든 일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지적도 좋았다. 이런 관점에서 한겨레의 이준석 대표 관련 보도를 살펴보면 부족한 면이 많아 보인다. 이 대표가 디지털을 잘 다룬다거나 백팩을 메고 따릉이를 탔다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보이는 것들 외에 한겨레가 이준석 현상을 제대로 분석했다고 생각되는 기사나 칼럼을 보지 못했다. 한겨레 시각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좋았던 것은 이 대표의 인터뷰 기사였다. 청년과 정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신선했다.
박 비서관 기사와 관련해선 ‘이낙연이 발탁한 인재’라는 말이 계속 들어가는 것이 불편했다. 언론이 권위 있는 누군가의 발탁을 청년 정치인 자격의 한 요소로 바라보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이 대표를 ‘박근혜 키즈’라고 부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한다. 한겨레가 청년 정치인이 할당받거나 발탁되는 것이라는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좋겠다.
김준범 이준석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이 대표가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들었던 이슈를 과감하게 발언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페미니즘과 관련한 20대 남성의 입장을 강조해서 이야기한다거나, 수술실 시시티브이(CCTV) 문제를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그는 반발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전체적인 여론과 다른 발언을 한다. 이런 이슈들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논의를 해 볼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 그동안 진영 논리로 나뉘어져 제대로 된 토론을 못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이슈를 계속 던지니 사람들에게 신선하고 시원하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한겨레가 이 대표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그 발언의 이면에 담긴 것들을 심층적으로 다뤄주면 좋겠다.
임자운 이준석 현상은 청년 세대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본다. 청년들이 이 대표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그의 주장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나와 비슷한 세대가 정치의 중심에서 플레이어로 활약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을 청년의 정치 참여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견인할 수 있는 기사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러나 이 대표를 청년 정치의 상징으로 만드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청년 정치인의 실력을 화술이나 상대를 조롱하며 제압하는 표현력, 방송에서의 퍼포먼스 등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청년 정치인에게 바라는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니다. 청년의 삶에 기반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여러 현장에 가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 청년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한다. 이 대표처럼 말 잘하는 사람이 청년 정치인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상징화되는 순간, 이준석 현상은 청년 정치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본다.
김민정 청년들이 직접 말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한겨레가 청년 칼럼니스트를 발굴하려고 노력하는 점은 높게 평가한다. 뉴닉 에디터인
천다민씨의 칼럼도 잘 읽었고,
‘전범선의 풀무질’이나 이길보라 감독의
‘90년대생의 결혼법’ 등 청년 칼럼니스트의 글을 다른 매체보다 더 자주 접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권태호 편집국에서는 박 비서관 임명이나 최근
여성가족부 폐지 이슈 모두 처음 논란이 빚어졌을 때는 굳이 과도하게 다뤄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모아졌다. 이 쟁점을 이슈화하는 것이 공익적 가치가 높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두 쟁점 모두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논란이 커져 우리 사회가 이 부분을 어떻게 봐야 할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판단해, 이후 오히려 비중 있게 기사를 썼고, 지면에도 각각 1면에 배치했다.(6월25일치, 7월8일치) 박 비서관과 관련해서는 청년들이 분노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박 비서관 임명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등까지 담아 정치 기사를 넘어선 사회 분석적 기사로 다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준석 현상과 관련해서는 한겨레나 진보 지식인들 사이에 양가적 감정이 있다고 본다. 과도한 능력주의나 젠더를 바라보는 시각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거대 정당의 당대표가 되어 청년들에게 정치 효능감을 준 측면은 긍정적인 대목이 있다. 이와 관련해 2030 세대가 대선을 비롯해 정치적으로 중요한 국면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등을 지속해서 추적하며 관심을 가져갈 생각이다.
정환봉 소통데스크
bonge@hani.co.kr, 녹취 설선정
■ 열린편집위가 뽑은 ‘이달의 좋은 기사’
‘젠더데이터, 빈칸을 채우자’
여성 현실 다룬 의미있는 시도
9기 열린편집위원들은 지난 6~7월 <한겨레>가 생산한 콘텐츠 가운데 12건의 ‘좋은 기사’를 추천했다. 이 가운데 위원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준 기사는 젠더데이터 관리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다룬 ‘젠더 데이터, 빈칸을 채우자’ 기획이었다. 이 기사를 추천한 김민정 열린편집위원장은 “데이터 공백으로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지워지고 있는 현실을 다룬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1.
‘젠더 데이터, 빈칸을 채우자’ 기획 기사
최윤아 디지털콘텐츠부 기자
심사평: “영국 저널리스트가 남성을 위해 설계된 세상을 비판하며 낸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의 한국판을 기대해본다.”
2.
‘기본소득 5가지 질문’ 기획 기사
이지혜 경제산업부 기자
심사평: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많은 언론이 ‘인물’만 다루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 의제를 심도 있게 분석한 점이 돋보였다.”
3.
“권력은 찬탈하는 것…청년이 의사결정 핵심에 도전해야”
조혜정 토요판부 기자
심사평: “청년 정치인이 직접 말하는 ‘청년 정치’, 생생한 이야기를 잘 풀어낸 기사”
4.
‘코로나블루 최전선’ 기획 기사
이주빈·이재호 사회부 기자
심사평: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잘 담아냈다.”
5.
비뚤어진 공정 잣대로 20대 자극 ‘분노 장사’
노지원·이완 정치부 기자
심사평: “박성민 비서관 임명을 둘러싼 과도한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심을 잘 잡아준 기사”
정환봉 소통데스크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