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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마음 한 장: 봄] 당신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

등록 2021-12-21 04:59수정 2022-12-20 09:25

2021년, 여러분이 웃고 울었던 현장에 <한겨레> 사진기자들도 있었습니다. 한 해를 끝자락까지 그 마음에 남은 사진 한 장들을 모았습니다.

새해에도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마음을 잇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2021년 마음 한 장'을 봄·여름·가을·겨울로 묶어 소개합니다.

#1: 당신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

한규선씨(앞)와 김동림씨가 지난 3월 31일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나무 아래 전동휠체어를 타고 김씨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김포/이정아 기자
한규선씨(앞)와 김동림씨가 지난 3월 31일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나무 아래 전동휠체어를 타고 김씨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김포/이정아 기자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시설은 비장애인들과 분리돼 장애인들끼리만 거주하는 대규모 수용 시설처럼 운영돼 왔습니다. 그런데 거주 장애인과 직원들이 시설의 비리와 횡포, 인권유린에 맞서 2008년 투쟁에 나서 장애인 탈시설운동의 시발점이 된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향유의 집이 지난 봄 문을 닫았습니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이라는 옛 이름이 더 유명한 이곳이 진보적 인사들로 운영진을 교체해 여러 비리와 문제들을 바로잡은 뒤 급기야 시설 해체를 실행함으로 장애인들의 자립과 지역사회 통합을 지원하는 탈시설운동의 또 다른 역사를 쓰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서 삶의 한 시기를 살아내고 투쟁을 통해 개인의 삶을 되찾은 한규선, 김동림씨는 일단의 안녕을 찾았지만, 아직 해피 엔딩은 아닙니다. 오늘도 여러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의 투쟁은 계속됩니다. 저상버스 도입을 위해, 지하철 승강기 설치를 위해 길 위에서 온몸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누군가를 만나기, 때론 친구와 저녁 식사 함께 하기, 산책길 막 피어난 봄 꽃망울 만나기….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사소한 이 일상이 아직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투쟁으로 쟁취해야 하는 특별한 일상이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모두가 공평히 누릴 수 있는 흔한 일상이 되기를 함께 소망합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 잊고 지내 죄송합니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역 인근에서 ‘택배노동자에게 모든 책임 전가시키는 일방적인 아파트 택배차량 진입금지 규탄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4월 8일 한 택배노동조합 조합원이 저상택배차량에 앉아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김혜윤 기자
서울 강동구 상일동역 인근에서 ‘택배노동자에게 모든 책임 전가시키는 일방적인 아파트 택배차량 진입금지 규탄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4월 8일 한 택배노동조합 조합원이 저상택배차량에 앉아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김혜윤 기자

최근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중간 조사 결과 발표 현장에 갔습니다. 기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유튜브로 생중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영상이나 사진기자 한 명은 왔을거라 생각했는데, 저 말고는 없었습니다. 홍보담당관은 ‘시간이 지나 관심이 시들해졌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건물에서 나오면서 시간이 지나 잊힌, 혹은 잊고 지냈던 사건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가족을 찌르고 12층에서 뛰어내린 한 대학원생, 둘째 돌을 한 달 앞두고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수 천만 원 상당의 빚에 떠밀려 생을 마감한 한 주부 등…. 기사로 나온 사건도 있고 보고 수준에 그친 사건도 있습니다.

그 중 올해는 이 사건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저희 집, 제가 학창시절을 보낸 고등학교 인근에서 일어났던 일이라 더 그런 듯합니다. 고속도로를 타러 가거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상일동역을 자주 지나치는데, 그때마다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했던 장면이 생각나 이분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실까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4월 뜨거운 감자였던 ‘고덕동 택배대란’. 약 5000세대 살고 있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ㄱ아파트 단지에서 택배차량의 지상 진입을 막은 사건입니다.

이 동네에서 이 아파트 단지만 택배차량 지상 출입을 금지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매일 지하철을 타러 가는 강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도 택배차량은 지상 출입이 불가합니다. 이 사건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그 아파트 단지 주차장 입구 높이를 보며 택배기사분들의 상황도 변하지 않았겠구나 짐작합니다.

당시 아파트 쪽은 택배기사들에게 저상차량으로 개조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차량 개조 비용은 ‘개인 사업자’(특수고용직) 신분인 택배기사들에게 떠넘겨집니다. 개조비용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한번에 옮길 수 있는 택배량이 줄어드니 차량 운행 횟수가 늘어나는 문제가 남습니다. 또 저상차량을 사용할 경우 택배기사들이 목과 허리를 굽히며 택배를 내려야해서 노동 강도가 올라갑니다. 저상차량 짐칸에 쪼그려 앉은 택배기사 머리 위로 한뼘 남짓 보인 공간을 담은 이 사진을 올해의 마음 한장으로 선정했습니다.

일하면서 다치면 산재입니다. 다치는 일은 일회적인 사고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이 원인이 쌓여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다가올 2022년에는 그 누구도 일하다 다치지 않기를, 그 누구도 누군가가 일하다 다치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택배기사분들의 상황이 바뀌기를 꼭 바랍니다. 집에 오다 사진 속 저 곳을 지날때마다 빌고 또 빌겠습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3: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화물차 운전기사 김지나, 서울대 학생식당 조리보조원 양문정, 자살예방 전화상담사 김슬기, 제주대 청소노동자 조영심, 수도검침원 김애란, 아이돌봄노동자 배민주, 방문점검 서비스노동자 김순옥, 렌트카 출반납 업무 김일곤씨. 박종식 기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화물차 운전기사 김지나, 서울대 학생식당 조리보조원 양문정, 자살예방 전화상담사 김슬기, 제주대 청소노동자 조영심, 수도검침원 김애란, 아이돌봄노동자 배민주, 방문점검 서비스노동자 김순옥, 렌트카 출반납 업무 김일곤씨. 박종식 기자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노동자가 있습니다. 고 노회찬 전 의원은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직을 수락하는 연설에서 매일 새벽 6411번 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으로 향하는 청소 노동자들을 ‘투명 노동자’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사무직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빌딩을 쓸고 닦아 빛을 내지만 세상에 보이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2021년 4월 한 달, 노동절을 앞두고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곳곳의 투명노동자를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일회용품 취급을 받으며, 죽을 듯한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경력도 인정받지 못한 채,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취재를 하며 ‘어떻게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감정은 저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투명 노동자로 불리는 청소노동자의 경우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1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저임금으로 일하고 있는 현실인데 더 이상 비정규직의 고용형태에 방관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김상현)”

“감정노동자 우울장애가 일반 노동자의 4배라고 합니다. 고객들은 근로자도 당연히 사람이라는 것과 나의 가족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이명자)”

“1만 명이 넘는 제주 렌터카 노동자, 제주의 관광산업을 위해 너무나도 중요한 노동이지만 그들의 노동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저임금에 고용불안에 갑질에 그리고 장시간 노동에 허우적대고 있다.(들님)”

독자들은 댓글로 ‘투명 노동자’의 현실에 공감하고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제 카메라 앞에 선 분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노조라는 뒷배가 있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노동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11월 30일 검찰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불법파견 사용자 처벌을 요구하며 고용노동청과 대검찰청에서 농성을 했던 김수억씨 등 비정규직 노동자 17명에게 모두 합쳐 징역 21년을 구형했습니다. 청사 안에서 농성을 하고, 퇴거에 불응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법을 지키라며 길 위에 선 노동자에게 법은 철퇴를 내리쳤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카메라 앞에 기꺼이 선 제주대 청소노동자 조영심님, 자살예방 전화상담사 김슬기님, 서울대 학생식당 조리보조원 양문정님, 렌터카 출·반납 업무 김일곤님, 방문점검 서비스노동자 김순옥님, 화물차 운전기사 김지나님, 아이 돌봄 노동자 배민주님, 수도검침원 김애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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