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환 변호사가 9일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 임명됐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9일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과 차기환 변호사를 각각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보궐이사로 추천·임명했다. 지난 5월30일 한상혁 전 위원장 면직 이후 기존 공영방송 이사진 찍어내기에 집중했던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 체제의 방통위가 두 사람 인선을 계기로 본격적인 공영방송 경영진 물갈이를 시도하는 모양새다. 두 방송사 노동조합은 이번 보궐이사 추천·임명이 통상적으로 이뤄진 공영방송 이사 후보 공모와 심사, 검증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는 점과 정치적 편향성 등을 들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방통위는 이날 비공개 전체회의를 열어 서 전 재판관을 한국방송 보궐이사로 추천하고, 차 변호사를 방문진 보궐이사로 임명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야당 추천 김현 상임위원은 이번 의결 안건이 상임위원 간 협의나 보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상정됐다며 회의에 불참했다. 비공개회의였던 만큼 속기록도 공개되지 않았고, 브리핑 자료에는 인선 배경 및 과정에 대한 설명 없이 두 사람의 이름과 직업만 소개됐다. 방통위는 그동안 한국방송과 방문진 이사를 추천·임명할 때 공모 기간을 두고 후보자의 지원을 받은 뒤 이들을 대상으로 서류 심사와 면접 심사 등을 거쳤다. 특히 2021년 7월 한국방송과 방문진 이사 추천·임명 당시에는 지원자의 지원서를 방통위 누리집에 공개하고 국민들로부터 의견 및 질의도 받았다.
지난 7일 사퇴한 임정환 이사의 후임 격으로 임명된 차 변호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인 2009~2015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추천으로 8·9기 방문진 이사를 지냈다. 당시 차 변호사 등 여당 추천 이사들은 문화방송 경영진을 상대로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의 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단협에 규정된 국장책임제 등 공정방송 견제 장치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 요구였다.
2012년 10월11일 임시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차 변호사는 단협 개정을 두고 “(김재철) 사장님께서도 (2010년 임명 당시) 공약에 그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며 “3년이 지나도록 전혀 개선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2017년 국가정보원 불법사찰 수사 과정에서 공개된 ‘엠비시(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2010년 3월2일) 등 언론장악 문건을 보면, 단협 개정은 당시 국정원이 ‘문화방송 정상화’를 위해 설정한 ‘당면과제’였다. 차 변호사 등 여당 이사들이 언론장악 문건의 내용이 실행될 수 있도록 지원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차 변호사는 방문진에서 6년 동안 활동한 뒤 2015년 한국방송 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거나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족 비하,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북한군 침투설 유포 전력 등이 있어 그가 2021년 방문진 이사 공모에 지원했을 때 세월호 단체와 5·18 단체가 일제히 반발하기도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는 이날 성명에서 차 변호사에 대해 “한나라당 추천으로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방문진 이사를 연임하고 곧바로 케이비에스 이사 자리까지, 유례없는 ‘공영방송 이사 3연임’을 누렸던 대표적인 극우 편향 인사”라며 “엠비(MB) 정부 당시 이동관과 호흡을 맞춰 공영방송 장악에 앞장섰던 차기환을 방문진 이사로 내리꽂은 것은 과거 엠비시 장악을 그대로 반복하거나 더 철저히 무너뜨리겠다는 의지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서 전 재판관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21회)에 합격한 서 전 재판관은 청주·수원지법원장과 서울중앙지법원장을 거쳤다. 2013년 4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2019년까지 헌법재판관을 지낸 대표적 보수 성향 법관이다. 2008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때 이건희 삼성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 등에 무죄를 선고했는데, 서 전 재판관의 경남고 후배인 최광해 전 전략기획실 팀장이 당시 공동피고인이라서 사건을 회피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몇몇 언론 관련 재판에 참여한 것 이외에 언론·방송 분야 경력은 전무하다.
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도 성명에서 “재벌 그룹과의 유착 의혹 등 (서 전 재판관) 본인의 자질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번 이사 추천은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그야말로 졸속 인사이자 무법적 인사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