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청문회가 있었다. 볼수록 마음만 답답해지는 장면 속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은 이 후보자가 본인을 ‘스핀닥터’(spin doctor)로서 자부하는 모습이었다. 스핀닥터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단어가 아니기도 하지만, 그 장면에서의 쓰임새도 단어의 본래 의미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내게는 그나마 청문회의 기억할 만한 잔상을 남겼던 것이다.
영어에서 스핀닥터라는 단어는 1984년 뉴욕타임스가 당시 레이건 대통령과 먼데일 후보의 대선 티브이 토론 결과를 보도하며 처음 사용한 이후, 정치적 선전활동을 지칭하는 유행어처럼 사용되었다. 여기서 ‘스핀’이란 당구공이나 야구공에 회전을 넣어서 공을 휘게 하는 것처럼 본래의 사실을 비틀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뜻으로 시작됐다는 설과, 실 가닥을 뽑아내서 천을 만들 듯 거짓 얘기를 엮어서 만든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그중 어느 것이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은 듯하다.
그 기원이 어떠하든, 사실 스핀닥터란 용어는 그냥 홍보활동을 뜻하기보다는 이를 조롱하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내 나름의 미국 생활의 기억 속에서 한번도 스핀닥터라는 단어를 좋은 의미로 들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확인차 찾아본 관련 논문들 속에서도 굳이 ‘홍보(PR)를 스핀닥터라고만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주장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내 기억이 크게 틀리지 않은 듯하다.
사실 이 정부에서 원래 용어를 본래 의미와 달리 이상하게 사용하는 것이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빈번히 등장하는 자유라는 단어는 해방(Liberation)도 표현의 자유(Freedom)도 아닌 ‘반공’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으며, 킬러는 그것이 입시문항이던 규제조항이던 당장 없애 버려야한다는 의미의 접두어가 되지 않았던가. 그런 면에서 내게는 스핀닥터라는 단어도 영화 범죄도시에서 사뭇 진지한 장면에 툭 터져나와 더 웃음을 주었던 한줄 대사처럼 참신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냥 웃고만 넘어갈 수 없는 것이, 스스로를 스핀닥터라고 생각하는 분이 방송통신위원장이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스핀닥터라고 하면 유명한 부시 정부의 칼 로브나 클린턴 정부의 제임스 카빌처럼 정치자문이나 선거 컨설턴트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들은 정치전문가들로서 대통령의 이미지를 포장하고, 연설 내용과 미디어 전략을 수립하여 기자회견 등을 통해 언론과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능수능란하게 수행했다. 클린턴의 성추문 문제가 불거졌을 때, 카빌이 힐러리를 슈퍼볼 방송 직후 기자회견 카메라 앞으로 내세웠던 것은 바로 추악하면서도 성공적인 스핀닥터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디어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 칼 로브도 제임스 카빌도 방송사 이사진에 대한 결정권이나 방송사의 재허가 재승인의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국가적 미디어 정책을 결정하거나 집행하지 않았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방통위원장의 자리에서 스핀닥터의 교묘한 기술 따위는 별로 필요치 않을 것이다.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한국방송 이사장,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등 이미 미디어 거버넌스의 절대자에게는 손가락 스냅만으로 뭐든 절반은 날려버릴 힘이 있다는 것을 예고편으로 보고 있으니까 드는 생각이다. 뭐든 날려버릴 수 있는 존재에게 스핀닥터는 너무 귀여운 이름 아닌가?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