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KBS 사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임원진과 함께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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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한국방송(KBS) 사장이 취임 이틀째인 14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추가 인사 조처와 편성 변경 등을 예고하고 나섰다. 취임 첫날부터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해온 시사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저녁 간판 뉴스의 앵커를 교체한 데 이어 공영방송 장악에 가속페달을 밟은 셈이다. 야당은 “점령 작전” “쿠데타”란 표현으로 강하게 비판했고, 언론 전문가들은 대통령실 눈치 보기에 급급해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내팽개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 사장은 이날 오전 ‘대국민 기자회견’을 자처해 “공영방송으로서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해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정중히 사과한다”며 “불공정 방송의 경위와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관련 백서를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불공정 편파보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자나 피디(PD)에 대해서도 “엄정한 징계” 방침을 밝혔다.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아트홀에서 박민 한국방송(KBS) 사장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한 방송카메라 기자가 기자회견을 취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언론노조 한국방송(KBS)본부 조합원들이 14일 오전 박민 신임 한국방송 (KBS)사장의 대국민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아트홀 앞에서 박 사장의 출연자 교체와 프로그램 폐지를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박 사장이 이례적인 강도와 속도로 ‘한국방송 지우기’를 밀어붙이자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박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케이비에스 점령 작전’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아홉시 뉴스와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등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앵커와 진행자가 시청자에게 인사도 남기지 못한 채 교체됐다”며 “과거 5·16 쿠데타처럼 군사 쿠데타를 방불케 한다”고 비판했다. 또 “진행자가 불법 행위를 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아니면 이런 사례는 없었다”며 “박 사장 취임 첫날 보도·시사·교양·라디오 총괄책임자 5명이 물갈이돼 지금 공석이다. 박 사장 취임 첫날부터 편성규약과 단체협약 위반 행위가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파성 논란을 극복해야 할 것은 여당 지도부를 ‘저희 지도부’라고 운운하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언론 쿠데타’에 앞장서고 있는 박 사장”이라고 지적했다.
박 사장의 행태는 과거 종합편성채널 설립 근거를 마련한 ‘미디어법’을 밀어붙이고 정권 입맛에 맞는 인물들을 공영방송 이사회·경영진에 앉혔던 이명박 정부 때와 비교해 봐도 유례없는 속도전이다. 2010년 당시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이 밀려난 자리에 앉은 이병순 사장은 같은 해 8월27일 취임 이래 9월4일 본부장 6명의 인사를 시작으로 팀장급 42명(9월8일), 팀원 97명(9월17일) 등 순차적으로 인사를 냈다. 이 전 사장 역시 권력에 비판적인 구성원들을 대규모로 발령 내며 ‘보복 인사’ 논란을 빚었지만 이번처럼 ‘전격전’ 양상은 아니었다. 이에 언론 전문가들은 박 사장의 인사 조처는 한국방송 자체 판단이 아니라 총선을 앞두고 마음이 급한 대통령실 및 여당의 의중에 따른 비정상적인 결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방송 이사를 지낸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하루아침에 방송 진행자가 퇴출되는 지금의 상황은 비상식적이다. 특정 정당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목한 진행자를 바꾸는 것은 외압 때문이라고밖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방송학회 회장을 지낸 강상현 연세대 명예교수는 “박 사장의 무리한 조처들은 하루라도 빨리 한국방송을 장악해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겠다는 속셈”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1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윤석열 정권 언론장악 규탄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당 언론자유대책특별위원회와 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이날부터 29일까지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오전 11시 30분부터 2시간씩 릴레이 피켓 시위를 진행한다. 연합뉴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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