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은 지난달 25일 <뉴스데스크>에서 ‘보수 단일화 기대…‘통합정부’ 가능성’이란 제목의 꼭지를 통해, 후보자들의 지지율을 단순 합산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문화방송 화면 갈무리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준비된 언론’은 없었다. 일부 언론들은 이전 선거에서처럼 ‘정당 네거티브 캠페인 확성기’ 보도, ‘종북몰이’ 보도, 후보 단일화 등을 요구하는 ‘선거 컨설팅’ 보도 등을 시도했지만, 유권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겨레>는 이번 대선 보도를 평가하고자, ‘2017 대선미디어감시연대’의 언론 모니터 보고서,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거기사심의위원회 회의록, 언론학자 인터뷰 등을 종합 검토했다. 3월20일 출범한 대선미디어감시연대는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시민사회단체 89곳이 참여했으며, 신문·방송 선거 보도를 매일 양적·질적으로 모니터했다. 이들은 선거 50일 전인 이날부터 선거 하루 전날인 5월8일까지, 7개 방송채널(<한국방송1>, <문화방송>, <에스비에스>, <티브이조선>, <제이티비시>, <채널에이>, <엠비엔>)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과 일간지 6곳(<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의 선거 관련 보도 7209건(방송 2771건, 신문 4438건)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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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검증 부실한 ‘따옴표 저널리즘’ 관행 여전 언론학계에서 꾸준히 지적해온 ‘따옴표(인용) 저널리즘’, ‘경마 저널리즘’ 등 기존 선거 보도 관행은 이번에도 되풀이됐다. 따옴표 저널리즘이란 정당 등이 제기하는 의혹을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검증하지 않은 채 그대로 옮겨 ‘받아쓰기’한 보도를 말한다. 이런 보도 관행은 의혹을 제기한 쪽의 의도에 맞게 의혹만 부풀려 시민들의 공적 숙의를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문화방송은 당사자 반론조차 배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4월3일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는 ‘“마 고마해!” 문 아들 특혜 의혹 공방’, ‘문 아들, 의혹 내용은?’이란 꼭지를 연달아 내보냈다. 첫 번째 보도는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의혹 제기를 각 정당 인터뷰 3개로 배치했고, 문 당시 후보의 해명을 한 문장으로 덧붙였다. 이어진 보도는 의혹을 일곱 가지로 정리해 나열했는데, 각 의혹의 사실 여부 확인이나 문 후보 쪽, 정부기관의 해명은 배제됐다.
한국방송 노조도 4월5일 낸 감시단 보고서에서, <뉴스9>의 ‘문재인 후보 아들 채용 의혹’ 보도가 정당의 폭로를 받아쓰기한 수준인데다가, 반론에 할애한 시간이 의혹 제기보다 편파적으로 짧다고 지적했다. 한국방송·문화방송 선거방송 준칙은 특정 후보의 폭로성 의혹을 제기할 때는 철저한 사실 확인을 거치고, 사실 확인이 불가능할 경우 폭로 대상에게 충분한 반론 기회를 보장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대선미디어감시연대는 제목을 의혹 제기 따옴표로 처리한 보도를, 경마성·가십성·선정성·연고주의·전투형·정치혐오성·익명·파편·이벤트 보도, 오보 등과 함께 ‘유해 보도’로 분류한다. 대선미디어감시연대 보고서를 보면, 전체 선거 보도에서 따옴표 보도는 2114건(방송 880건, 신문 1234건), 29%를 차지했다. 따옴표 보도를 포함한 ‘유해 보도’가 전체 선거 보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89건(방송 1304건, 신문 1785건), 43%였다. 반면 정책 제공, 사실 검증, 시민사회 여론을 소개한 ‘유익 보도’는 2717건(방송 770건, 신문 1947건), 37%였다.
다수 언론은 언론학계에서 꾸준히 지적해온 ‘따옴표(인용) 저널리즘’ 등 기존 선거 보도 관행을 되풀이했다.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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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눈높이 맞춰 보도 품질 높여야 강력한 유권자 감시로 인해, 저널리즘의 기본조건을 채우지 못한 보도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권자들에게 크게 질타받았던 에스비에스의 ‘세월호 늑장 인양 의혹’ 보도는 언론시민단체, 학계에서도 ‘최악의 보도’로 꼽혔다. 보도 자체가 부실 검증, 반론 없음 등 저널리즘의 기본 요건을 채우지 못한 것은 물론 게이트키핑 과정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세월호 참사의 아픔만 키우고 불필요한 정쟁의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한국방송은 ‘대선후보 검증’이라는 문패를 달고 ‘문 후보 부인 가구 매입’과 관련한 함량 미달의 의혹을 제기해, 대선미디어감시연대가 꼽은 ‘최악의 선거 보도’ 공동 3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언론이 유권자 눈높이에 맞춰 보도 품질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언론이 객관성을 기계적 균형성과 동일시하는 관행은 ‘특정 정치세력 편들기’라는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언론 신뢰도를 회복하려면 보도 관행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기레기’란 용어는 세월호 사태를 겪은 시민들이 사회적 책임 없이 ‘기득권 언론 관료’처럼 일하는 기자들을 부르는 말이다. 기자와 언론사의 오랜 부정적 행태에 대한 비판이 누적되어 형성된 역사적 용어이기도 하다. 이런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기자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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