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상 몬시뇰의 분향소가 인천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에 마련됐다. 사진 천주교인천교구청 제공
유신 독재정권 치하에서 신음하던 이들을 위해 온 몸을 던졌던 인천지역 민주화운동의 대부이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 대표인 김병상(필립보) 몬시뇰이 25일 오전 0시5분 선종했다. 향년 88.
정부는 26일 김병상 몬시뇰에게 ‘국민훈장 모란장’(2등급)을 추서하고,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인천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가 훈장을 전달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통해 "김병상 몬시뇰 신부님의 선종을 슬퍼한다"며 "또 한 분의 어른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애도했다. 문 대통령은 "(김 몬시뇰) 신부님은 사목 활동에 늘 따뜻했던 사제이면서 유신 시기부터 길고 긴 민주화의 여정 내내 길잡이가 되어준 민주화운동의 대부였다"며 "민주화를 위해 애쓰며 때로는 희생을 치르기도 했던 많은 이들이 신부님에게서 힘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제가 국회에 있을 때 국회에 와서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국미사'를 주재해 주기도 했고, 청와대에 입주할 때 와서 작은 미사와 축복을 해주기도 했다"고 김 몬시뇰과의 개인적 인연을 소개한 뒤 "이제 하늘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리라 믿는다"며 "오랫동안 병고를 겪으셨는데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박양우 문화체육부 장관이 26일 김병상 몬시뇰의 빈소를 찾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하고 있다. 사진 문화체육부
김 몬시뇰은 2006년 11월 38년간의 사목 일선에서 은퇴한 이후 2008~13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을 맡으며 사회선교 활동을 계속했다. 지난 2018년 3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요양시설에서 머물러왔다.
고인은 1932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1961년 홍익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63년 서울가톨릭신학대에 다시 입학해 69년 38살 늦은 나이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1974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창립되자 회원으로 참여해 89~95년 공동대표로 활약했다. 1976~80년 인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대책위원장를 비롯, ‘굴업도 핵폐기장 철회를 위한 인천시민모임’ 상임대표,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 상임대표, 인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았고, 2004년 학교법인 인천가톨릭학원 이사장 대리도 지냈다.
고인은 인천 만수동성당 시절 신자교육을 통한 ‘새로운 양찾기 운동’을 시작해 가톨릭 교세가 크게 성장하게 하는 동력을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평소 “사제로서도, 민주화운동에도 헌신적으로 투신하지 못해 하느님 앞에 부끄럽다”며 겸손한 자세로 일관했다.그는 “사회 정의에 투신하고 앞장섰다고해서 후방에 있던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며 “뒤에서 욕해 가면서도 지켜주고 후원해준 이들이 있었기에 앞에 선 사람들이 민주화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천교구청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고 김병상 몬시뇰의 분향소를 대강당에 마련해사회적 거리두기 준칙에 맞게 진행하고 있다. 사진 인천교구청
장례미사는 27일 오전 10시 인천시 답동 주교좌 성당에서 봉헌된다. (032)564-4131.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