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 동국대 WISE(경주)캠퍼스 불교학부 명예교수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67살.
고인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및 명상심리상담학과 교수, 동국대 불교문화대학장, 불교문화대학원장, 불교사회문화연구원장, 한국불교학회장,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등을 지냈다. 지난 2월28일 퇴임하고, 3월 일자로 명예교수로 위촉됐다.
고인은 평소 심장병이 있었지만,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별세하자 불교계 안팎에서는 ‘다시 보기 어려운 인재’를 잃었다는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나오고 있다.
고인은 가산학술상(1996), 불이상(2004), 올해의 논문상(2007), 청송학술상(2012), 반야학술상(2020), 탄허학술상(2021) 등을 불교계 학술상을 휩쓸었을 정도로 연구자로서 큰 평가를 받았고, ‘살아있는 유마거사’란 평을 받을 만큼 남다른 인격으로 주위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고인은 원효보다 150년이 앞서 우리나라 최초의 사상가로 꼽히는 고구려 승랑 스님에 대한 연구로 ‘한국연구재단 10년 대표연구성과’로 선정되는, 기념비적인 연구 업적을 남겼다.
그는 서울대 사범대 학장과 서울대 불교학생회 지도교수를 지낸 선친 김종서 교수가 가끔 모시고 온 탄허 스님을 어린 시절 집에서 만나곤 했다. 성인의 풍모지만 겸손하기 그지없이 ‘하심’(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으로 일관했던 탄허 스님의 모습은 어린 그에게 깊게 각인됐다고 한다. 선친이 탄허 스님을 모시고 올 때, 여러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만 어른들 틈에 끼여서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마음공부와 불교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고교 2학년 때까지 그림에 심취해 미술반 활동에 열심이었던 예술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려서는 밥 먹고 살기 어렵다. 치과의사는 몇 시간만 일하면 나머지는 원하는 불교책도 원 없이 읽고, 참선도 할 수 있다”는 어른들 말에 치대에 진학했다. 그래서 치대를 다닐 때도, 치과의사로 일 할 때도 틈만 나면 불교책을 보고 참선을 했다. 그렇게 열망했던 공부이기에 그는 삶을 위한 ‘불교학’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제2의 붓다’로 불리는 용수의 중관학으로 석·박사를 했다. 용수는 그에게 직업인으로서 불교학자가 되기에 앞서 삶의 길을 제시해줬다고 밝혔다.
고인은 “처음엔 나도 불교 공부를 하면 일부 선승처럼 막행막식을 해도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술도 많이 마셨다. 그런데 용수의 ‘대지도론’을 6개월간 필기를 해가며 읽다 보니, 불법엔 진제만이 아니라 속제, 즉 절대불변의 진리인 진제와 세속적 진리인 속제 둘 다 놓쳐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을 알았다. 진제만 추구하면 사견에 빠져 가치판단을 상실하기 쉽고, 속제만 추구해 계만 지키고 착한 일에만 집착하면 성불할 수 없다.”고 고백하며, “육바라밀 수행을 통해 둘 다 챙겨 이웃도 내 자식을 보살피 듯 보듬고, 공(空)에 대해서도 자각해야 한다는 게 용수 보살의 안내였다”고 말했다.
고인은 분노와 탐욕, 교만과 같은 감성적 번뇌를 치료하는 데도 붓다의 가르침을 최고의 처방으로 제시했다. 그는 금강경에서 강조하는 ‘반야’(깨달음의 지혜)를 절대부정으로, 화엄경의 화엄을 절대긍정으로 비교하곤했는데, “만약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부정의 반야사상’으로는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조언하고, ‘절대긍정의 화엄사상’으로는 ‘실은 누구나 다 그래’라고 말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출가자들에 대한 각별한 공경심을 보이며 말을 삼갔지만, 한번의 깨달음으로 만병통치약이 된다면서도 행실이 뒷받침되지 않아 신뢰감을 얻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일침을 놓았다. 그는 인지적 깨달음 즉 머리로만 깨달은 것은 반쪽의 깨달음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인지만의 깨달음은 완성된 것이 아니며, 아직 감성과 정서의 문제가 남아있기에, 인지적 해체만이 아니라 식욕과 성욕, 재물욕, 명예욕, 교만, 분노, 질투, 원한 등의 버릇과 습관에 대한 감성적 해체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인은 “인지적 번뇌인 ‘견혹’(見惑)만이 아니라 감정적 번뇌인 ‘수혹’(修惑)까지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불경과 논서에 근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수행자가 감성의 정화 없이 인지의 해체에서 멈출 때 모든 가치판단이 상실된 폐인이 될 수 있고, 선과 악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났다는 자만심에서 악을 행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며, 감성적 정서적 정화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머리로만 이성적으로 깨달았다고 할 경우 구제불능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수행을 하는 것은 부처님처럼 되기 위해서이기에 부처님을 닮으려 할 때 두가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보리수 아래서 얻은 지적인 깨달음만 보기 쉽지만, 부처님은 12살 어린 나이에 밭에서 벌레를 새가 먹고 새는 더 힘센 존재에 잡아 먹히는 것을 보고 고통을 느낄 만큼 모든 생명체에 대한 자비심이 있었고, 화려한 왕궁을 버릴 만큼 세속적 쾌락을 싫어하는 염리심이 수행 전에 있었다”며 “그처럼 감성이 정화되지 않은 상태라면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탐심을 없애는 부정관, 분노심을 없애는 자비관, 교만심을 낮추는 하심 등의 수행을 선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간화선이 최상승의 수행법이긴 하지만, 인지적 수행에 그치는 한계도 있다”고 지적하며, 이분법적인 인지와 애증(애착하고 증오함)의 감성을 모두 해체한 깨달음의 증거로 그는 자비와 지혜를 들었다. 즉 남을 내 몸과 같이 여기는 ‘이타의 감정’인 자비와 ‘절묘한 분별’을 하는 지혜가 없다면 깨달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 발인은 26일 오전 10시,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선원, 아들 김용석, 김용범, 며느리 박소연, 유지희 등이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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