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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필진] 도올에게 묻다 - ④ 삼위일체 논쟁에 대하여

등록 2007-03-23 20:26

선생님! 오늘은 선생님의 책 <기독교 성서의 이해>의 제5장 삼위일체 논쟁에 나타난 기독교 신학과 역사 이해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이전에 제안드렸던 <로고스 기독론과 역사적 예수> 논의를 보다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삼위일체는 기독교 교리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교리입니다. 기독교가 체계를 확립하고 신학적 기초를 가져야 하고, 또 정경을 마련해야 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논의되고 정립된 교리가 바로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이 교리가 콘스탄티누스의 중재 하에서 교부들의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통해서 성립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유니테리언주의를 강조하는 부류에 의해서는 철저하게 비판받는 교리인 것을 선생님도 잘 아십니다.

종교개혁의 한 부류였던 재세례파는 회복주의(restorationism) 신앙운동을 기치로 가톨릭교회의 권위로 결정된 일체의 신앙신념을 거부하고 오직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 운동을 추진하였습니다. 멘노 시몬스로 대표되는 메노나이트와 같은 건전한 재세례파 운동은 어쩌면 루터나 칼뱅이 실패한 개혁적 요소들을 더욱 더 분명하게 제시하면서 제 4의 종교개혁 운동을 창출했습니다. 저들에 의해서 강조된 회복주의는 그 후 합리성을 추구하는 서구 교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로 19세기 미국의 회중주의를 중심으로 유니테리어니즘(Unitarianism)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니테리언주의는 성경의 사상으로 돌아가자는 이 회복주의 사상에 의거해 삼위일체 교리가 성경의 진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종교회의를 통해 결정한 교리이기 때문에 비정통적이고, 따라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 한 분만을 믿으며 예수와 성령의 신성을 부인하는 반삼위일체(anti-trinitarianism) 사상을 널리 전파하였습니다.

물론 선생님은 이런 유니테리언 전통에서 삼위일체 논쟁을 설명하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선생님은 삼위일체든, 유니테리언적 유일신론이든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를 이런 식의 논의로 끌고 가는 것 자체가 기독교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과 예수가 가르치고자 하는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고백하는 신앙은 헬라철학적 사유의 표방일 뿐 기독교 성서의 계시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기독교의 삼위일체 정식의 무용성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견해는 교회 역사에서 첫 번째로 나타난 신학적 정식에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고백하는 기독교신앙에 큰 파장을 주고 계십니다. 이런 파격적인 사유의 전환을 두고 김경재교수가 선생님을 한국의 루터와 칼뱅이 될 수 있다고 소개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의 당당하신 주장은 정말로 한국교회가 선생님을 한국 기독교의 개혁자로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그 입장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제시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실존적 결단의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진술들은 지금까지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한 우리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선생님을 21세기 종교개혁자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면 무언가 그에 대한 변증을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그 실존적 계기 앞에 다소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삼위일체 논쟁에 대한 기독교 신학적 변증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도올의 삼위일체 논쟁 이해


선생님의 책, <기독교 성서의 이해>를 읽으면서 느낀 첫 느낌은 “역사 거꾸로 보기”를 시도한 포스트모던 사학의 한 유형을 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포스트모던 사학이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줌으로써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사의 주관화에 처해질 위험을 가지고 있음을 역사학자들은 지적합니다. 역사는 역사가의 해석에 의해 기술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올바른 역사는 역사가의 양심에 의해서 구축될 수밖에 없다고 콜링우드는 강조했습니다. 그 만큼 역사를 다루는 것은 종교에의 숭고를 추구하는 것만큼이나 엄숙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추후 역사관과 역사 이해라는 항목으로 좀 더 깊이 다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다루는데 있어서 학자로서의 양심을 거스르셨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역사는 항상 양면이 있게 마련인데 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에서 드러난 모든 사실들의 이면으로 돌아가서 기독교의 독선을 비판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아서 기독교 역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 하고 계십니다. 토머스 쿤의 통찰력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것이 패러다임 전이(paradigm shift)의 한 유형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새로운 패러다임은 완전한 귀납적 증명을 통해서 보편화됨으로서 비로소 바뀌게 되는 것이지요. 선생님의 기독교 역사 이해가 기독교 신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사유에 대한 논의의 과정과 광범위한 인식적 합의를 거쳐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과 더불어 선생님께서 설명하신 삼위일체 논쟁의 요점들을 점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선생님께서는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하여 오늘의 기독교 모습이 결정되었으며, 그로 인해 기독교의 진실한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을 지도 모른다고 설명하셨습니다(90-91). 이는 광의적으로는 콘스탄티누스의 영향에 의한 기독교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삼위일체 교리로 인한 기독교의 헬라화를 지적하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처럼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니케아 종교회의는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된 본질(homoousios)이 아닌 다른 본질(heteroousios)을 가졌다는 아리우스의 주장으로 인해 알렉산드리아 사회에 파생된 신학적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였습니다. 이 회의의 역사를 조명하면서 선생님은 특별히 아리우스의 주장의 본질을 설명하고자 애쓰셨습니다. 선생님은 아리우스를 철저한 신플라톤주의자로 보고, 그의 신론은 “인간 예수의 리얼한 모습과 인간과 신의 합일을 꾀하는 신비주의와 하나님의 절대유일한 초월성이 종합된 매우 포괄적인 체계”로부터 나온 것임을 역설하시면서, 이런 아리우스의 주장은 반기독교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아리우스의 사상이 니케아 신경과 그 후 아타나시우스의 활동으로 인해 이단으로 정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상은 유세비우스를 포함하여 동방교회의 보편적인 사상이었으며, 나중에 유니테리언주의의 사상으로까지 발전하여 오늘날에도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음을 설명하셨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마도 선생님께서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지목되고 그 후 기독교사상에서부터 멀어졌지만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앙이 가지는 이론적인 문제점을 간직한 사상으로서 아리우스의 사상과 그 영향들을 강조하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진술한 내용들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고자 하는 본질은 그 후에 설명하신 삼위일체론의 무의미성에 대한 논지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성경의 내러티브는 삼위일체와 상관이 없으며, 그 교리가 보여주는 헬라철학적 존재론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삼위일체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우시아’(ousia, 본질), ‘하이포타시스’(hypostasis, 위체) 등의 용어는 기독교와 무관한 헬라철학적 사유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구약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철학적 유일신도 아니고 삼위로 계시는 삼위일체적 존재일 수도 없으며, 단지 유대인들과의 계약적 관계, 예수와의 관계적 존재로 계시는 절대적인 하나님일 뿐이라는 것이 선생님의 궁극적 이해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런 설명을 토대로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앙의 문제를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이해

삼위일체의 정식은 니케아 종교회의(325년)를 거쳐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381년)에서 공식적으로 확립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어느 한 시점에서 기독교사상의 헬라철학화를 위한 과정 속에서 불쑥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의 종교회의들은 기독교 사상 속에서 300년 이상 지속되어져 오던 신(神) 존재론적 논점들을 하나의 통일체로 묶어내고자 했던 최종적인 종합의 결과였을 뿐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 사상은 사도들의 시대로부터 계속된 신 존재에 대한 고백들을 학문적이고 이론적 형태로 구체화하는 과정 속에서 정립된 매우 학문적이고 신학적인 결과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도 잘 아시듯이 삼위일체 사상의 원형은 마태복음 28:19과 고린도후서 13:13에서 나타납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세 개념의 병치가 삼위일체 논쟁을 불러일으킬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109). 그러나 그렇게만 말할 수 없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삼위일체적 개념들의 병치가 삼위일체라는 철학적 사유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에도 역사적으로 계속 존재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명 속사도교부로 일컫는 초기교회의 교부들의 글에서도 이런 삼위일체적 개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클레멘스(“우리가 한 분 하나님, 한 분 그리스도, 우리에게 부어진 은혜의 한 성령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Mart. Polyc. 46:6), 바르나바스(“성부 하나님, 영이셨다가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 성령...”), 이그나티우스(“창세전에 성부와 함께 계셨고,” “유일무이하신 성부로부터 와서 성부와 함께 있다가 성부에게로 돌아갔다.” Magn. 6:1; 7:2)) 등의 기록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삼위일체적 정식에 가까운 내용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그나티우스와 같은 경우 경세적 삼위일체적 개념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쨌든 성경의 저자들과 그 직후의 속사도들의 신학적 인식 속에서 삼위의 개념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특히 이런 진술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선재성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빌립보서나 골로새서에서 예수의 동등본질(빌 2:6-8) 및 선재성(골 1:15-17)을 설명하는 문맥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 역사적 인식이 가능한 내용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과 속사도들의 시대로부터 이미 예수의 선재성을 받아들이고, 삼위의 개념을 병치시키는 기독교 신학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것들이 당시에는 신학적 사상으로 확립되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 사회에서 서서히 뿌리를 내리면서 그레코-로망 사회와 충돌을 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 교부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앙 신념들에 대해서 변증할 필요를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런 변증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몇 가지 분야에서 신학적인 틀을 마련해야만 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선재하시는 분으로서의 예수를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로고스 기독론은 이렇게 해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기독교 변증가들은 요한복음의 사상을 통해서 그것을 더 구체화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스티누스, 타티아누스, 테오필루스 등은 로고스 기독론을 통해서 예수의 선재성을 설명하였으며, 이런 사상은 아테나고라스에 의해서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신적인 영의 일체성과 관능으로 말미암아 성자는 성부 안에 있고 성부는 성자 안에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은 성부의 지성이자 말씀(νους κὰι λογος)이다.”라는 표현으로 로고스 기독론의 의미를 구체화했습니다. 이것은 유일신을 신앙하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진리를 훼손시키지 않은 채 예수 그리스도와 성부 하나님의 관계를 지적으로 만족스럽게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기인한 신학적 결과였습니다. 아테나고라스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을 인정하고 그들의 권능이 하나이고 질서에 있어서 구별되어 있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을 비닌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Supplic. 10:3). 이러한 삼위일체적 신앙은 이레네우스에 의해서 매우 구체화됩니다. 사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가 로고스 기독론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이전에 이레네우스는 삼위일체에 대한 경륜적 개념을 확립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존재와 본질과 본성에 있어서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 계시지만 … 우리의 구속의 경륜에 따르면 성부와 성자가 계신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여기에 성령을 넣으면 완전한 삼위일체적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Dem. 47).

이레네우스는 헬라적 사유를 좋아하지 않았던 기독교 교부였습니다. 그는 헬라철학적 사유에 대항해서 기독교사상을 철저하게 확립하고자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테르툴리아누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 사상을 확립하는데 있어서 이레네우스와 테르툴리아누스의 사상적 체계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삼위일체 교리는 단지 헬라철학적 사고 체계를 반영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신플라톤주의가 편만했던 사회에서 그 이론에 대항하고 기독교사상을 변증하고자 했던 기독교 사상가들에 의해 서서히 확립되었던 매우 중대한 사유였다는 것입니다. 이레네우스는 그런 과정에서 삼위일체가 기독교 신학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교부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이 계시하는 유일신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성에 대한 신학적 딜레마를 후에 경륜적 삼위일체로 불리는 개념을 통해서 해결함으로써 삼위일체론 신학의 한 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경륜적 삼위일체의 개념으로부터 삼위일체를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작업이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최초로 삼위일체(trinitas)란 말을 사용한 그는 하나님은 한 본질(substance)속 세 위격(personae)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그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 용어들은 결국 양태론자들로부터 하나님을 세 분으로 설명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고, 많은 신학적 논란을 야기시켜 군주론(monarchianism), 양태론(modalism, 하나의 군주론이지만 후에는 삼위일체 사상의 중요한 이론이 됨, 칼 바르트도 여기에 속함) 등에 의해 한 분 하나님을 강조하는 사상을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테르툴리아누스 이래로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 삼위의 문제 등과 관련된 삼위일체론 논쟁은 기독교 신학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요한 신학적 과제로 남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기독교 성서의 이해>에서 다루신 삼위일체론 논쟁에는 이런 1-3세기의 과정들이 생략된 채 4세기 알렌산드리아에서 아리우스에 의해서 제기된 논쟁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의 논쟁으로 인해 니케아 종교회의가 진행되었고 니케아 신경(325년)이 작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논의의 출발이 아리우스의 새로운 신앙적 노력의 결과가 아닌 것은 선생님께서도 잘 아십니다. 제가 1-3세기의 역사를 간단하게나마 진술한 이유는 4세기의 니케아 신경이 나오게 되는 역사신학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리우스가 질문한 예수의 ‘다른 본질’(heteroousios)에 대한 주장은 성경과 속사도시대의 원형적 삼위일체 고백과 변증시대에 변증가들에 의해 제기된 로고스 기독론, 그리고 이레네우스와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해서 설명한 초기 삼위일체 정식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역사속에서 제기되었던 여러 문제들 중에서 예수의 선재성에 대한 철저한 질문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기독교 신학은 예수와 하나님의 동등한 본질을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아리우스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유일성이 훼손되기 때문에 예수의 본질이 하나님의 본질과 동등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이러한 아리우스의 주장은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알렉산더와의 논쟁을 통해서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성부와 성자의 동일 본성이 강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우스가 성자의 피조성을 강조하게 된 것은 기독교사상을 철저하게 헬라철학으로 승화시킨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가 강조한 종속설에 대한 사상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오리게네스의 신과 로고스에 대한 이해는 삼위일체론 사상에 있어서 매우 독특합니다. 그에 따르면 신은 존재 자체이고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특별히 신은 그 속에 로고스를 가지고 있는데 신은 그 로고스를 영원으로부터 방출하여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부와 로고스는 동일하게 영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부만이 근원을 갖지 않은 존재, 곧 자존의 신이며, 로고스는 그에 의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신 자체는 아닌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오리게네스에 따르면 로고스는 신의 본질이지만 신 자체는 아닌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성부만이 유일자로서 나뉠 수 없는 단자(monad)가 되셨습니다. 따라서 로고스, 혹은 성자는 홀로 자존하시고 시작이 없는 존재인 성부와 동등될 수 없다는 사유가 생겨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게네스는 로고스 역시 영원하며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고 상상할 수는 없다고 말함으로써 로고스의 영원성을 아울러 강조했습니다.

이런 매우 심오한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적 사상으로 인해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신학적으로 두 파가 형성되었습니다. 그 하나가 알렉산더와 그의 부제였던 아타나시우스였으며, 다른 한 파가 아리우스였습니다. 오리게네스의 우파에서는 신과 로고스의 동등한 영원성을 강조하였고, 한편 좌파는 로고스 곧 선재한 아들은 신에 의해 피조되었다고 하여 로고스가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오리게네스의 신학을 넘어섰습니다. 이 두 진영 간의 치열한 논쟁이 결국 니케아에 이르게 되었고, 니케아에서는 그 두 진영 간의 논쟁을 포함해 삼위일체 논쟁이 품고 있던 1-4세기의 모든 쟁점들을 검토한 후에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동등본질)로 결론을 내리고 니케아 신경을 작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독교의 삼위일체 논쟁사는 이 주제가 성경의 시대로부터 제기되어져 온 중요한 주제였으며, 헬라철학화된 그레코-로망 사회에서 기독교사상의 변증적 필요에 의해 발전된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많은 신학적 사색과 논의를 거쳐 니케아 신경과 그 후 결정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결론이 난 것임을 알려줍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상존하는 쟁점들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 논의는 계속되고 있으며 해석학적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대신학에 이르러서도 이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계속되어지고 있으며, 그래서 칼 바르트의 삼위일체론, 몰트만의 삼위일체론, 판넨베르크의 삼위일체론 등으로 이론적 분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학은 한 가지 분명한 개념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시대 이래로 기독교 신학이 견지해 온 이 삼위일체 신학을 당대에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이 난해한 형이상학적 담론을 아우르고 있는 교리를 백성들에게 제시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관련된 것입니다.

물론 삼위일체 교리와 같은 것을 백성들에게 제시해야 할 당위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이 존재론적인 개념이 아닌데 신플라톤주의 시대도 아닌 오늘날 그것을 굳이 그렇게 제시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선생님의 말씀이나, 삼위일체 신학은 이미 살이 있는 신의 의미를 해석하는 힘을 잃어버렸다고 역설하는 파울 틸리히의 주장이나, 나름대로 의미는 있는 제안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삼위일체 신학을 단순하게 무의미화 시킬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초기 기독교 사상 전통 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신적 실체의 삼위적 원형에 대한 하나의 신학 사상으로 여전히 역사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제거해 버리는 순간 성경으로부터 속사도시대와 변증적 교부들의 시대를 통해 일관되게 흐르고 있던 기독교 신앙 정신은 상실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기독교의 변질로 또 다시 질타의 대상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3-4세기의 기독교 사상가들이 그렇게 했듯이 오늘 21세기 신학자들은 그 사상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더욱 더 구체화시키려는 신학적 작업을 해야만 하며 그것을 통해 현실적 의미 전달이 가능한 삼위일체 사상을 창출해야만 할 것입니다. 20세기의 신학적 거장들이 그 시대에 그 작업들을 추진했고, 오늘 우리 시대에는 이 시대의 신학자들이 그 작업을 해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특별히 아타나시우스가 강조했듯이 삼위일체 신학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이라는 기독교적 구속론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포괄적인 논의의 틀에서 결정되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선생님께서도 삼위일체 신학을 단지 헬라철학화된 의미 없는 교의로만 제시하지 않으실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돌프 폰 하르낙은 에서 기독교 교의들을 비헬라화 작업을 통해서 철저하게 해부했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 교의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과 사랑의 윤리적 교훈에 있으며, 그 나머지 교리들은 다 껍데기(husk)일 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기독교의 헬라화는 사상에 대한 변증적 과정의 산물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사상가들은 반드시 헬라화시킨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역동적이고 치열했던 고대사의 흔적들이 보다 더 폭넓은 관점에서 제기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삼위일체 신학에 나타난 기독교 신앙 고백의 의미도 헤아릴 수 있는 계기가 창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선생님이 지적하는 것처럼 삼위일체 신학은 비성서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에 어렴풋하게 계시된 신의 존재성에 대한 철저한 물음과 성찰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성경적 논의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학의 입장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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