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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군인’을 소명, ‘연대’를 힘이라 여겼던 고 변희수 하사

등록 2021-10-07 22:39수정 2021-10-08 12:38

군인 더 일찍 되고 싶어 특성화고 진학
성과 출중했으나 성확정 수술 뒤 강제전역
지난 3월 ‘트랜스젠더 최초 군인’ 극단적 선택
당시 외신 “한국, 주변국보다 성소수자에 인색”
차별금지법도 재공론화…사회변화 ‘가교’ 구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3월2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연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공동행동’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이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파랑·하양 3색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3월2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연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공동행동’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이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파랑·하양 3색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끝까지 싸울 겁니다.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를 쟁취하고, 차별 없는 군을 만들기 위해서 기갑부대의 모토인 ‘기갑 선봉’답게 선봉에 나가서 싸울 거예요.” 

성전환 수술 뒤 2020년 1월22일 군에서 강제 전역당한 고 변희수 전 하사는 같은 해 3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에 다시 돌아가기 위한 소송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지난해 8월 전역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기갑의 돌파력’으로도 차별의 벽을 뚫긴 어려웠다. “끝까지 싸우겠다”던 변 전 하사는 지난 3월3일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19일, 강제 전역한 지 624일 만에 법원은 육군의 변 전 하사 전역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변 전 하사는 군인의 삶을 자신의 소명이라 여겼다. 더 빨리 군인이 되는 방법을 찾다 고교 진학도 부사관 양성 특성화고(삼계고교)를 택할 정도였다. 2016년 9월 입대해 훈련소와 육군부사관학교, 기계화학교를 거치고 2017년 3월 육군 하사관으로 꿈에 그리던 군인이 됐다. 의지만큼 기량도 뛰어났다. 그의 주특기는 전차 조종이었다. 변 전 하사는 소속 대대 하사 중 유일하게 전차 조종 에이(A)등급을 받았다. 참모부서 담당으로 보직이 변경된 뒤에도 공군참모총장상을 받는 등 성과를 냈다.

그러나 군에 적응할수록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위화감)로 인한 우울증 증세는 더 깊어져갔다. 그가 성전환 수술(성확정 수술)을 해야만 했던 이유다. 변 전 하사는 상관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 2019년 11월 타이에서 성확정 수술을 했다. 그 뒤 육군은 변 전 하사에게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내리고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했다. 군인으로 사는 삶을 포기할 수 없던 그는 전역심사 연기를 요청했고, 변 전 하사의 긴급 구제신청을 받아들인 국가인권위원회도 심사를 3개월 연기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군은 지난해 1월22일 전역심사위를 열어 변 전 하사의 강제 전역을 결정했다. 폭력에 가까운 군의 결정에도 변 전 하사는 군인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는 강제 전역이 결정된 당일 기자회견에서 “성별 정체성을 떠나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눈물을 보이며 호소했다.

변 전 하사는 ‘연대의 힘’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숙명여대 법학부에 2020년 신입생으로 합격했다가 반대 여론에 밀려 입학을 포기한 트랜스젠더 한주연(가명·23)씨에게 쓴 편지에서 “우리와 연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을 것이라 믿는다”며 뒤에 걸어오는 이들의 희망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복직 이후, 언젠가 시간이 흘러 전역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면 저를 도와주시고 계신 분들처럼 사회활동가가 되어 제2, 제3의 변희수 또는 한주연을 지원해주고 싶은 새로운 꿈이 생겼다”고 했다. “죽지 맙시다. 꼭 살아남아서 이 사회가 바뀌는 것을 같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변 전 하사가 한씨에게 건넨 말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지난 3월 떠났고, 대신 “한국은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보다 성소수자 공동체에 훨씬 인색하다, 종종 장애나 죄악으로 여겨지고 (있는데도) 차별금지법이 없다”(<비비시(BBC)>)와 같은 외신 평가를 들어야 했다. 사회 변화는 그의 소망을 이어받은 이들이 지켜봐야 할 몫으로 남아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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