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소수자부모모임 등 성소수자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1월1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성별정정 요건과 절차 국가인권위 진정’에 앞서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수술요건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30대 트랜스젠더 남성(출생시 여성으로 지정됐으나 스스로 남성으로 인식) ㄱ씨에게 집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는 가족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어 커밍아웃했지만 가족들은 그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가족들은 그의 사생활 공간을 자주 침범했으며, 그가 호르몬 치료를 할까 봐 지속해서 감시했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직장에서 자는 날이 늘어났다. 결국 그는 가족과의 갈등으로 야반도주하듯이 고시원에 들어가 살게 됐다.
얼굴을 모르는 타인과 계속해 마주치는 고시원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슴 압박 조끼나 남성용 속옷을 걸어놓는 것도 눈치가 보여 방 안에 걸어놓느라 곰팡이가 핀 방에 살아야 했다. 다행히 현재는 다른 성소수자들과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으나 언제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갈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
23일 민달팽이유니온,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등이 참여한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가 공개한 연구보고서 <불안한 삶과 집: 성소수자 집을 말하다>에는 주거 불안을 겪는 트랜스젠더 9명을 비롯한 성소수자 15명의 목소리가 담겼다.
보고서에서 ㄱ씨와 같은 트랜스젠더 남성 9명을 비롯한 성소수자 15명은 안심하고 쉴 집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털어놓았다. 지우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2020∼2021년 성소수자 9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여러 성소수자 중에서도 특히 트랜스젠더가 극심한 주거 불안을 겪는다는 점에 착안해 트랜스젠더를 중심으로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원가족과 함께 사는 트랜스젠더에게 집은 불안하고 불편한 장소다. 이들은 집에서 자신이 태어난 성별에 맞게 살 것을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트렌스젠더 남성 ㄴ씨는 “엄마가 분홍색이나 치마, 레이스, 스타킹 이런 걸 입히고 싶어 하셨는데 저는 너무 싫었던 거예요. 나와 맞지 않는 옷을 계속 입고, 맞지 않는 행동하기를 강요받았으니까…”라고 말했다. 성정체성을 밝힌 뒤로 집에 감금당해 외출을 금지당한 성소수자도 있었다.
‘생존’을 위해 가족과의 공간에서 독립했음에도 주거 불안은 계속됐다. ㄱ씨처럼 고시원은 물론 대학교 열람실에서 노숙에 가까운 생활을 몇 개월간 지속한 경우도 있었다. 특히 성확정 수술(성전환 수술)과 법적 성별정정을 마칠 때까지 트랜스젠더의 ‘집 찾기’는 유예될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 성별이 불일치하는 트랜스젠더들은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수술에도 많은 돈이 들다 보니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할 돈을 모으는데 이중고를 겪었다.
돈을 모아서 집을 계약하려 해도 문제가 생겼다. 계약서에 적은 주민등록번호상 성별과 외양의 성별이 달라 트랜스젠더인 것을 알아차린 집주인이 계약을 파기한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성별정정 이전에 월세를 계약했던 트랜스젠더 남성 ㄷ씨는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도 ‘신분증 내’라고 먼저 하니 집 구하는 것도 무서웠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는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집을 구하는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상담자를 대하는 주거상담센터를 위한 ‘성소수자 주거지원 매뉴얼’을 발간했다. 지우 위원장은 “최근 법원이 동성 부부의 배우자를 국민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로 인정했지만, 성소수자는 여전히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설계된 복지제도나 주거정책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성소수자의 주거권 보장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했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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