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을 접고 국내에 정착한 혼혈인 앤드류 하트레즈가 지난 7일 근무처인 서울 종로구 한국스탠다드차타드제일은행 본점 8층 수신상품팀에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혼혈, 이젠 웃을래요] ④ 하버드대 출신 은행원 하트레즈
서울 종로구 공평동 한국 스탠다드차타드 제일은행 본점 8층 수신상품팀. 깔끔한 정장 차림의 한국인 직원들 사이에서 면바지와 편안한 셔츠를 입은 갈색머리의 앤드류 하트레즈(27) 차장이 눈에 띈다. 그는 미국에서 자라 4년 전 한국에 온 혼혈인이다.
앤드류는 주한미군방송(AFKN) 스포츠뉴스 아나운서였던 미군 아버지와 당시 대학생이던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 남부 테네시주에서 스스로 백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자라온 그가 어머니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하버드 대학에서 처음으로 한국인 유학생 친구들을 만나면서부터다. “너는 절반은 한국인인데 어떻게 한국을 전혀 모르냐?”는 물음에 “그러게!” 하고 답한 그는, 이후 한국어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방학 때마다 한국에 있는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외가 친척들과 가깝게 지내고 한국을 더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는 결국 졸업 뒤 이땅에서 직장을 구하게 했다. 앤드류는 “아직 한국인들이 말하는 ‘의리’라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정’은 뭔지 알겠다”며 “해고되지 않는 한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한국계 혼혈인 친구들을 많이 만났지만 앤드류처럼 한국에서 살려는 친구는 없었다. 그는 가장 큰 이유로 언어장벽을 꼽았다. 미국에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드물고, 집에서 배운 ‘생활 한국어’로는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앤드류도 처음 은행일을 시작했을 때 끊임없이 쏟아지는 어려운 한자말들에 기겁을 했다고 한다.
그는 또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꼬집었다. 2년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와 밤에 같이 다니다 보면 술취한 아저씨들이 여자친구한테 “한국 여자가 왜 ‘양놈’하고 사귀느냐”며 시비를 거는 일이 잦다고 한다. 그는 “한국사람과 똑같이 생긴 재미동포가 한국말을 조금만 어색하게 해도 탐탁지 않게 보는 사람이 많은데 생김새까지 다른 혼혈인들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더 힘들 것”이라며 “축구나 야구 응원 때 다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이야 좋지만 그런 정서가 혼혈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문제”라고 말했다.
앤드류는 앞으로 한국에서 혼혈인이 뜰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에서 시작된 혼혈인의 인기 열풍이 이제 막 한국에 상륙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서는 5년여 전부터 혼혈 연예인들이 인기를 누리면서 혼혈 일반인들을 대하는 태도도 굉장히 좋아졌다”며 “그래서 처음 한국에 왔을 때에는 주위에서 일본에 가서 여자친구를 사귀라고 조언하기도 했는데, 이제 한국도 바뀌는 것 같아 반갑다”고 말했다. “하인스 워드 선수 덕분에 혼혈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단체들도 새로 알게 됐다”는 앤드류는 “일단 혼혈 어린이들과 놀아주는 것부터 시작해 그들을 돕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글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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