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6일 이주노조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코로나19로 드러난 인종차별과 이주노동자를 배제한 재난지원정책 등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다중노출로 찍은 장면. 대구/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바이러스는 평등하다. 바이러스는 인종,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만들어놓은 재난 위에서의 삶은 다르다. 코로나19 대응의 모범사례로 여겨지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39만여명(추정)에 이르는 국내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마스크 5부제 한달여 만인 4월20일에야 공적마스크를 구입할 자격을 얻었다. 코로나19 진단검사 중 단속을 유예하겠다는 정부 발표(5월4일)는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뒤 나왔다. 긴급재난지원금 논의 대상엔 끼지도 못했다. 대구시는 5월19일부터 전국 최초로 관내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단검사소를 열었다. 같은 시기 대구 성서공단 노동조합은 국내 코로나19 확산 4개월 만에 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 업무를 재개했다. 인적 드문 코로나 진단검사소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려울 정도로 붐비는 무료진료소의 모습이 3㎞ 거리를 사이에 두고 대조됐다. 그 서로 다른 풍경 안에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 있다.
지금, 코로나19의 시간표는 제각각이다. 확진자 곡선이 여전히 가파른 미국의 반대편에는 코로나19의 종식을 준비하는 뉴질랜드가 있다. 우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서울 이태원 클럽발 확진에 이어 삼성서울병원 간호사 4명 확진 등 수도권의 지역감염이 심상치 않은 5월 <한겨레>는 다시 대구를 찾았다.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지난 5월19일부터 6월4일까지 관내에 사는 이주노동자 1만2천여명 가운데 유증상자와 접촉 우려 검사 희망자 등 1370명의 진단검사를 목표로 했는데, 실제 진단검사에 참여한 이는 500여명, 확진자는 0이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 숫자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방역 성공을 의미하는 것일까. 케이(K) 방역은 다시 한번 승전보를 울린 것일까. 신천지의 트라우마를 딛고 대구가 다시 ‘메디시티’(의료도시)로 거듭났음을 의미할까. <한겨레>는 대구에 사는 잠발, 다와, 찬디마, 뚜라, 차민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겪고 있는 코로나19 100여일의 위기를 들었다. 차민다를 제외한 모든 이름은 가명이다.
5월20일 대구시 이주노동자 진단검사
찬디마: 30대 중반. 스리랑카
뚜라: 35살. 방글라데시
이날 저녁 7시30분부터 문을 연 성서공단 노동조합 진료소에 찬디마가 도착한 것은 8시가 넘어서다. 해가 진 뒤 조심스럽게 문밖을 나섰다. ‘평등마스크’를 썼다. 며칠 전부터 두통이 몰려오더니 몸살까지 겹쳤다. 열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코로나면 어쩌나 무서웠다. 찬디마를 걱정하는 동료가 “단속을 안 한다니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불이익이 없다는 정부의 발표를 모르진 않았으나 혹시 모를 불이익이 역시 두려웠다
. 늘 쫓기며 살았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가야 한다. 하는 수 없다. 찬디마의 고향은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차로 한시간 반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다. 고심하던 찬디마는 결국 일반 병원 대신 노조의 무료진료소를 찾았다.
5월4일 법무부는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집중방역 기간 동안은 단속을 유예하기로 발표했다. 정부는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0여일 뒤인 1월31일 “(미등록 외국인의 경우) 코로나19 사례에 해당되면 무료 선별검사를 받을 수 있고, 확진 시에도 치료는 무료로 이뤄진다. 특히 출입국·외국인 관련 당국에 대한 통보의무를 면제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정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확산 위기가 심화되자 결국 5월 법무부가 재차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법무부의 발표에도 ‘보건소, 선별진료소, 이동형 진료소 등 운영 지역과 진료를 위한 이동 과정에서의 단속을 유예할 수 있다’는 단서가 달려 있어 일부 이주노동자의 경계심은 여전했다. 이동 과정이 아니라고 파악되면 단속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미등록 노동자들은 경계했다. 4년째 미등록 상태인 찬디마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몸살쯤은 참고 넘어가야지 싶었다. 한국공공사회학회에서 2019년 펴낸 ‘미등록 이주민의 건강 현황 분석과 보건의료서비스 접근성 향상을 위한 제언’에는, 미등록 외국인 117명 중 69명(59%)이 “몸이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유는 “신분 노출에 대한 두려움”(59%), “비싼 의료비”(55.6%) 차례였다. 제도적·경제적 이유 등으로 병원을 기피하던 차에 코로나19가 빗장을 덧씌운 셈이다.
스리랑카 출신인 성서공단 노조 차민다 부위원장은 “코로나19 초기부터 미등록 외국인들은 건강보험이 없어 코로나 진단검사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확진되면 추방된다는 말이 돌았고, 이를 믿는 사람들은 지금도 많다”고 했다. 이어 “특히 확진자는 개인이 다녔던 곳까지 공개되는 것을 보면서 나중에라도 알려진 동선에서 단속당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불안해한다”고 했다. 평소 이주민에 대한 단속 위주의 정책이 코로나 방역에서 진단검사를 회피하는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신천지 교인 확진자 발생을 시발점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했던 대구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그들의 신분 탓에 가장 기본적인 검사와 진단 영역에서도 사각지대에 처해 있었다. 대구지역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20일 대구 성서공단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와 자원봉사자들에게 진료를 받고 있다. 대구/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8시가 넘어서자 잔업을 마친 이주노동자가 몰리면서 무료진료소는 무좀부터 디스크, 감기 환자까지 진료과목을 가리지 않고 붐볐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뚜라처럼 진료가 아니라 200만원이 넘는 진료비 청구서를 들고 도움을 구하러 온 경우도 있었다. 며칠 전 “갑자기 호흡이 안 돼 병원에 찾아갔더니 시티(CT·컴퓨터단층촬영) 등 이것저것 검사한 뒤 돌려보내면서 약도 주지 않고 검사비만 100만원이 넘게 나왔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뻐근한 상태가 꽤 오래됐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참다가 병을 키운 셈이다. 그는 미등록 신세라 건강보험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응급 상황이 발생하자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예상치 못한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됐다. 그는 이제부터라도 대구의료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뚜라의 부탁처럼 성서공단 노조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오면 인적사항과 함께 진료지원 요청서를 대구의료원에 제출해 ‘미등록 이주근로자 건강증진을 위한 진료지원 협약’ 제2조 2항에 따라 건강보험에 준하는 혜택을 받도록 도와줬다(이 또한 대구의료원 내 책정된 예산이 조기에 소진되어 매년 하반기로 갈수록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하지만 뚜라는 이미 비용을 지불한 경우여서 노조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찬디마와 뚜라처럼 대구 지역 미등록 외국인 중에는 지난 석달 동안 아파도 어찌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이들이 상당수 있었다. 이는 통계로도 엿보인다. 성서공단 노조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 1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노조를 통해 진료지원을 요청한 건수는 137건이었다(2019년 1월 165건). 2월에 107건으로 줄었고, 코로나19가 창궐한 3월 27건, 4월 30건, 5월 33건(5월20일 기준) 등으로 30건 내외를 유지했다. 산술적으로 볼 때 이 기간 동안 최소 200여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막대한 치료비를 떠안거나 어딘가에서 병을 안고 그 고통을 감내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문제는 의료서비스만이 아니다. 방역도 마찬가지다. 같은 날 노조 무료진료소 사무실에서 3㎞ 떨어진 공단 다목적 체육관 앞에는 대구시의 코로나19 이주노동자 진단검사소가 설치돼 있었다. 분위기는 노조의 무료진료소와 대조적이다. 자원봉사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이 물리적 거리두기에 애를 쓰며 북적이는 무료진료소와 달리 검사소는 방역 인력을 제외하고 진단검사를 위해 찾은 이주노동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날까지 이틀 동안 진단검사를 받은 이주노동자는 70명 남짓이었다. 1차 마감인 24일까지 270명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치인 1370명에는 한참 모자랐다. 결국 6월4일까지 한차례 연장했다. 결과적으로 진단검사를 받은 이주노동자의 수는 500여명으로 집계됐다.
진단검사에 관여한 한 의사는 지난 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우선은 홍보가 부족해 보였다. 현실적으로는 교통이 불편한 곳에 진단검사소가 위치해서인지 평일에는 열 중 여덟은 모두 업체에서 업주가 차로 데리고 온 게 확연히 보였다”며 “말하자면 이들은 사장을 잘 만난, 운이 좋은 사람들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이는 ‘내 친구가 불법(체류)인데 와도 되느냐’ 묻기도 할 정도로 여전히 찾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했다. 김용철 노조 상담소장은 “그나마 500명에 가까운 숫자가 된 것은 더 이상 일을 구할 수 없거나 휴업이 길어진 이주노동자들이 귀국을 서두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일부 국가에서는 귀국 조건의 하나로 코로나19 검사필증을 필수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대구시가 시행한 진단검사에서 참여자 500여명 가운데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이와 관련한 분석은 진행 중이다. 이번 진단검사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대구 집단감염은 신천지 교인의 수가 압도적인데 대구 지역에서 해당 종교와 외국인의 관련성이 적어 다행히 이주노동자 커뮤니티로 옮아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종교가 아니라도 시민들과의 접점이 별로 없다는 점 또한 고려돼야 한다”며 “이 밖에도 개별적으로 공단 내 기숙사의 통제가 자체적으로 이뤄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좀 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대구의 이주노동자가 1만2853명(미등록 5천명 추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진단검사가 목표치(1370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점도 아쉽다. 일부 전문가 중에는 목표치 자체가 과학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단검사 또한 ‘1만2800’이라는 숫자가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철 소장은 “대구 성서공단 및 인근 지역 이주노동자들이 5인 이상 기숙사나 원룸에 살아 밀집도가 높다는 점은 앞으로의 방역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며 “국내 이주노동자 거주 환경은 이주노동자 집단감염이 발생한 싱가포르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운이 따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기회에 방역과 최소한의 인권을 위해서라도 건강보험과 고용보험에 비자(등록) 유무에 관계없이 원하는 대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2월21일 대구 특별관리지역 지정
다와: 42살. 네팔 출신 미등록 외국인. 15년차. 대구 인근 소재 2차 하청업체 현장 반장역
“지금 대구 얼마나 위험한 거야?”
동료들이 묻는다.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기숙사에는 10여명의 네팔인 동료가 같이 지낸다. 모두 다와를 형처럼 따른다. 그들은 모두 한국어에 서툴다.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지 이틀째, 오늘만 100명이 확진됐다. 공장 안 각자의 휴대전화에서 재난문자 신호가 시도 때도 없이 동시에 울어댄다.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는 “위험하다”는 말뿐이다. 다와는 어젯밤 “무섭다”던 아내가 마음에 걸린다. 공장은 대구에서 한시간 거리, 아내는 대구 시내에서 혼자 지낸다. 주말부부다. 오늘은 잔업이 없으니 끝나자마자 달려가볼 생각이다. 퇴근 무렵, 사장이 네팔 출신들만 따로 집합시켰다.
“오늘부터 너희 모두 나가면 안 돼. 친구가 찾아와도 안 돼. 저기 시시티브이(CCTV·폐회로텔레비전) 보이지? 저걸로 다 보고 있을 거야. 내 방에서 보면 다 보이는 거 알지?”
“어기면 해고하겠다”고 했다. 다와가 그 말을 네팔어로 동료들에게 전했다. 일방적인 통보에 동생들은 당황한 눈치였다. 다와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출입금지라니. 네팔어로 된 정보를 좀처럼 찾을 수 없으니 동료들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 다와는 사실 대구 사정이 더 궁금했다. 사장은 “너희 중 누구라도 걸리면 우리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말뿐이다. 이날부터 다와의 공장은 사실상 외딴섬이 됐다. 의료진 없는 코호트 격리인 셈이었다(사실 외국인종합안내센터 1339로 전화하면 네팔어로 소통할 수 있었지만 이를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어에 능한 다와도 이를 알지 못했다).
2월26일 확진자 1천명
잠발: 45살. 몽골 출신 미등록 이주민. 14년차. 아내와 딸 셋, 아들 하나를 두고 있음
수현: 14살. 잠발의 첫째 딸
“서울로 가야 돼.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아빠(잠발)는 “아는 이모네 집으로 가자”고 했다. 아빠는 어디서 들었는지 “외국인은 확진되고 죽어도 텔레비전에 안 나온다”고 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수현은 아빠가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듯해서 답답했다.
“아빠, 그래도 텔레비전에 나온 것만 믿어야 돼.”
오늘따라 아빠의 목소리가 컸다.
“대구에 벌써 몽골인 감염자가 있대. 우리 가족 중에 누구라도 걸리면 우린 모두 죽어.”
한국어에 서툰 아빠는 인터넷에 빠져 있었다. 몽골어로 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하루 종일 들여다봤다. 아빠가 말하는 가짜뉴스는 다 거기서 나왔다. 아빠의 ‘설레발’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뒤로 대학병원 앞 거리가 순식간에 텅 비었다. 인근 성서공단 노조 무료진료소가 문을 닫았고, 집 근처 노동자 쉼터도 문을 닫는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 커뮤니티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같은 몽골 출신인) 진주네 가족은 아예 몽골로 돌아간다”고 했다. 어젯밤 몽골에 있는 할머니가 인터넷 전화로 “당장 돌아오라”고 한 뒤 아빠의 불안은 더 심해진 듯했다. 할머니는 어디서 들었는지 “(중국) 우한보다 대구가 더 심하다”고 했다.
“일단 이모네로 가자. 우린 마스크도 없잖아.”
결국 엄마를 부축해 차에 태웠다. 5월이면 엄마는 동생을 낳는다. 평일 늦은 밤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한달음에 서울이었다. 이모네 식구 셋은 모두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모네가 건넌방을 비워줬지만 다섯이 자기에는 비좁았다. 가로세로로 잠자리를 펴고 아빠, 엄마, 동생 둘이 누웠다. 수현이는 거실로 나왔다. 잠을 설쳤다.
3월15일 대구 특별재난지역 선포
주말에 외출을 못 한 동료들이 다시 다와 앞에 섰다. 그런데 문제는 시시티브이가 아니라 마스크였다.
“마스크는 우리가 사야 해. 사장도 마스크를 구할 수가 없대.”
동료들은 “작업용 마스크를 더 구해달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그 말이 맞았다. “아껴 쓰면, 빨아 쓰면 되지 않느냐”는 사장의 말은 시너 냄새가 밴 방진 마스크를 쓰지 않아본 사람이나 할 말이었다. 그 말을 동료들에게 전하지는 못했다.
다와의 생각에 더 큰 문제는 월급이었다. 270만원이 찍히던 월급이 이번 달 140만원만 들어왔다. 2월 들어 잔업이 줄고, 주중에도 오후 1시에 일을 끝낸 뒤 텃밭을 가꾸기도 했다. 중국의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는 무심코 받아들였지만 월급을 보니 코로나19라는 게 실감이 난다. 월급 삭감은 시시티브이처럼 일방적이었다. 그런데 동료들은 월급에는 이렇다 대꾸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사실 노조가 없는 2차 하청 소규모 사업장에서 이주노동자가 사장과 월급을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생각해보니 월급보다 마스크를 원하는 동료들 말에도 일리가 있다. 당장 급한 건 안전이다. 살아야 한다. 엿새 전부터 마스크 5부제가 시작됐다. 미등록 외국인인 다와는 마스크를 사지 못한다. 건강보험증과 외국인등록증이 필요하지만 다와는 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다.
다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외국인은 39만여명으로 추정된다. 대구에만 해도 5천명(대구시 추정)이 넘는다. 미등록만 문제가 아니다. 6개월 미만 체류 외국인도 건강보험 가입이 안 돼 마스크를 받기가 어렵다. 등록 외국인도 쉽지는 않다. 동료들은 모두 “E-9비자(비전문 취업 비자)를 가진 ‘합법’들”이다. 건강보험도 꼬박꼬박 내고 있다. 잔업을 마치고 외국인등록증과 건강보험증을 들고 찾아간 약국에는 마스크가 매진되고 없었다. 재고를 알리는 애플리케이션을 보고 찾아간 어떤 곳은 “안 판다”고 했다. 그들이 “사장에게 (작업용 마스크를 더 달라고) 말해보자”고 한 이유일 것이다.
대구에 ‘평등마스크’가 등장한 것은 “참다못해서”였다. “돈이 없어서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닌데,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으니 그것만이라도 뚫어달라는 건데.” 김용철 상담소장은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한다.
마스크 부족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이주노동자 마스크 공급에 방역당국은 나서지 않았다. 그럴 여력도 없어 보였다. 노조가 에스엔에스에 에스오에스를 쳤다. 반응은 예상을 넘었다. 열흘 만에 5천장이 모였다. 4.16연대부터 서울시 도봉구의 한 교회까지 마스크의 종류만큼 보낸 이들도 다양했다(4월20일 정부는 건강보험 미가입 외국인을 대상으로 공적마스크 구입을 허용했다. 5부제 실시 한달 만이었다). 보내준 이들의 뜻을 담아 마스크에 ‘평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차별 없이 나눠 준다는 뜻과 이주노동자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정부 방역당국을 비판하는 의미를 함께 담았다. 인적이 드물던 대구 성서공단 사거리에 일요일인데도 평등마스크를 받으려고 외국인들이 줄을 섰다. 반나절 만에 1500장이 소진됐다.
세금 내지만 재난지원금 못 받고
등록이주민도 마스크 잘 못 구해
한국인과 결이 다른 불안과 공포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노조와 시민사회 십시일반 보내온
‘평등마스크’로 그나마 위기 견뎌
이름에는 차별 없이 나눠 준다는 뜻
이주노동자 고려치 않는 정부 비판
이주공동행동, 난민인권네트워크, 이주인권연대 등 이주민 단체 회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긴급재난지원금을 이주민에게도 평등하게 지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5월12일 정부재난지원금 지급 이틀째
잠발이 수현을 흔들어 깨웠다. 이날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엄마랑 일하러 가니까, 동생들 밥 좀 챙겨.”
양파를 수확하는 아르바이트라고 했다. 아빠가 일을 나가는 건 석달 만이었다. 어젯밤 인력소에서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했다. 서울 생활 보름 만인 3월 중순쯤 가족들은 대구로 돌아왔다. 돌아온 이유는 절박했다. 엄마가 막내 동생을 낳을 때가 다가오는데, 서울에서 알아본 수술 비용이 1700만원이었다. 미등록 신분이라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된 탓이었다. 물론 대구에 내려와도 별수는 없었다. 미등록 외국인을 취약계층으로 분류해 지원하는 대구의료원도 코로나19 거점병원으로 지정돼 신규 환자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출산에 임박한 5월이 다 돼서야 300만원에 수술을 해주겠다는 병원이 나왔다. 사실 그 돈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몽골 가족들에게 손을 벌렸다. 동생을 나은 지 열흘 남짓 된 엄마가 양파밭 아르바이트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기까지다. 동생들과 하루를 보내고 나니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아빠와 엄마가 흙투성이가 된 채 문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아빠는 수현에게 말없이 1만원짜리 하나를 쥐여줬다(수현에겐 올해 첫 용돈이었다).
잠발은 이날을 “오랜만에 일감이 있어 고마웠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고마움을 전해야 할 쪽은 따로 있다. 이는 자료로 확인됐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최근 내놓은 ‘코로나19 대응 종합보고서’를 보면, 잠발 부부의 갑작스러운 아르바이트가 어떤 사정으로 성사된 것인지 짐작할 만하다. 보고서에는 “(지금처럼) 작물이 제때 수확되지 못한다면 향후 작황을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정부의 인력중개센터 추가 설치 대책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쓰여 있다. 보고서는 ‘식량위기’까지 전망하며 “농촌 현장의 외국인 근로자의 수급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요청된다”고 했다. “기존 출입국 관리 차원 이상의 역할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잠발 같은 미등록 외국인이 반길 만한 내용도 담겼다. 이탈리아의 경우 최근 농업, 돌봄 영역에서 ‘한시적으로’ 미등록 외국인에 대한 체류자격을 발급하기도 했다.
인력이 필요해진 곳은 농촌만이 아니다. 대구 시내도 변화의 조짐이 있다.
진주네 엄마(몽골에 간다고 말만 했을 뿐 보증금을 떼일까 싶어 결국 가지 못했다) 둘람은 2월 그만둔 대구 중앙로의 한 모텔 청소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는 2월 말 코로나19로 투숙객의 수가 줄면서 누군가 일을 그만둬야 했을 때 제일 먼저 쫓겨났다. 그리고 그는 내리 석달을 쉬었다.
둘람에게 사장이 전화를 한 것은 대구 신규 확진자가 0명을 기록했다고 떠들썩했던 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모텔 손님이 갑자기 늘었다고 했다. 쫓아낼 때와 달리 부탁하는 투였다. 출근해보니 사정을 알 만했다. 돌아가보니 모텔 청소는 힘든 일이 아니라 위험한 일이 돼 있었다. 약간의 각오가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신기한 건 손님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사장은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이날 둘람씨는 수현네 엄마 다시마에게도 함께 일하자고 권했다. 여름 무렵 아이 셋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고 나면 다시마는 둘람과 같이 모텔 청소를 하게 될 것이다(물론 이 사례가 코로나19 상황의 외국인 노동자 취업 현황을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성서공단 노조에는 요즘 들어 “일자리를 알아봐줄 수 없느냐”는 조합원들의 전화가 종종 걸려온다. 그들도 노조가 일을 알선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만큼 일자리가 없다는 방증이다).
두 사람도 코로나19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안다. 출산한 지 열흘 만에 일에 나서고, 위험을 감수하며 모텔 청소를 하는 것은 돈 때문이다. 밀린 월세는 둘째다. 당장 아이들 먹거리가 걱정일 정도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사치에 가까운 말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사람, 하루하루가 살기 어려운 사람을 기준으로 준다고 하면 두 사람 가족이 1순위일 것이다. 국적이 없어 지원 대상이 될 수 없을 뿐이다. 다시마도 15년 전, 1년 차이로 한국에 들어온 둘람처럼 등록 외국인(E-9)으로 일하면서 몇년 동안 소득세, 주민세 등을 꼬박꼬박 내며 열심히 살았다(체류 외국인의 기여를 세금으로 따지면 2018년 기준으로 57만여명이 7836억원의 근로소득세를 냈고, 종합소득세를 낸 것도 8만여명(3815억원)이다. 경제적 효과도 만만찮다. 미등록을 포함해 이주노동자 전체의 경제기여 효과는 86조원(2018년 이민정책연구원 보고서)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나라 밖에서는 대다수의 나라가 국적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고 있다. 미국은 시민권자(영주권자)의 사회보장번호에 따라 1200달러를 지급한다. 캘리포니아주는 미등록 외국인에게도 1인당 500달러(가구당 1천달러) 현금을 지원하다. 독일은 세금번호를 받아 수익활동을 하는 외국인에게 5천유로를, 일본은 3개월 이상 체류 외국인에게 1인당 10만엔을 지급한다.
6월8일 중1·초5~6 등교로 순차개학 마무리
경북 김천의 한 양파밭. 잠발의 목장갑 붉은색 코팅이 너덜너덜해졌다. 10여년 해온 일로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한데, 20㎏짜리 양파망 ‘까대기’(물건을 몸으로 지고 나르는 일) 반나절 만에 어깨가 깨질 듯하다. 밭 한마지기를 네명이 끝내면 일당 13만원을 받을 것이다. 이른바 ‘돈내기’다. 일주일을 양파밭에서 구르고 나서, 2월부터 밀린 집세부터 갚을 생각이다. 태어난 지 한달 남짓인 막내의 황달부터 나아져야 할 텐데…, 그나마 수현이 덕분에 웃는다. 오늘부터 수현이가 학교에 나갔다. 중학생이 되고 첫 등교다. “열난다고 집에 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코로나는 언제 끝나나. 수현이는 “괜찮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세상 모르는 소리다. 미등록 신세에 코로나든 단속이든 걸리면…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몽골은 ‘외국’이다. 한국에 사는 우리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구/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신천지 교인 확진자 발생을 시발점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했던 대구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그들의 신분 탓에 가장 기본적인 검사와 진단 영역에서도 사각지대에 처해 있었다. 지난 20일 대구 성서공단 노동조합 차민다 부위원장이 사무실을 찾아온 이주노동자에게 코로나19로 겪는 어려움을 물어보고 있다. 대구/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신천지 교인 확진자 발생을 시발점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했던 대구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그들의 신분 탓에 가장 기본적인 검사와 진단 영역에서도 사각지대에 처해 있었다. 지난 20일 대구 성서공단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 김동은씨가 진료를 마치고 돌아가는 이주노동자에게 마스크를 전하고 있다. 대구/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