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인권·복지

[2020 마음 한 장] 함께 ,우리

등록 2020-12-28 10:33수정 2020-12-28 10:35

노숙인 윤아무개씨를 만났던 서울 용산역 철도 정비창 노숙인 텐트촌. 이정아 기자
노숙인 윤아무개씨를 만났던 서울 용산역 철도 정비창 노숙인 텐트촌. 이정아 기자

사진부 수습기자 시절, 한 선배는 제게 노숙인들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작업들을 보여주며 서울역 노숙인들에 관해 취재해보라고 권했다. 한동안 야근을 마친 새벽마다 서울역으로 퇴근해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카메라를 들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이들의 삶을 이해해야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업은 더뎠고 오래가지 못했다. 끝내 헤아리지 못한 사람들의 삶은 마음 속 무거운 빚으로 남았다. 그리고 2020년 여름 윤아무개씨를 만났다.

그는 서울 용산 텐트촌의 오랜 주민이다. 어려서부터 가난을 경험한 그가 살 길을 찾아 이 도시에 들어온 건 열 살 때. 소년의 첫 직업은 ‘구두닦이’였고, 그 뒤로도 쉽지 않은 삶과 노동이 이어졌고 2005년 이곳에 자리잡았다. 또 다른 주민 투성이씨는 과거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으나 척추를 다치며 정상적인 노동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급격히 경제 사정이 나빠졌다. 위기의 순간 도와줄 가족이나 개인적인 안전망이 그에게는 없었다. 전세, 월세, 고시원 등으로 밀려나다 2014년 구로동 여인숙 시절을 끝으로 사우나, 찜질방을 거쳐 그는 영등포에서 거리 생활을 시작한다. 노숙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일을 했지만 요행히 그 기간을 연장해도 1년 중 최장 6개월만 일할 수 있는 현 상황에서 이를 토대로 재기를 도모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노숙인들의 삶에도 저마다의 까닭이 있다.

코로나19로 더욱 절박해진 노숙인들의 주거문제와 급식 등 현안들을 보도할 때마다 "차라리 나가서 일을 하라"는 날선 댓글과 메일이 이어졌다. 누구하나 수월한 사람 없이 저마다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시기,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이의 입장에서 이미 절벽 아래 선 이들이 어쩌면 나태해보일 수도 있으리라 이해했다. 그 마음에 실린 삶의 무게도 가볍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런 이들의 마음을 다시 불편하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죄스러웠다. 그러나... 누군들 그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싶었을까. 설령 그리 되었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계층간 사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약육강식의 논리만 통용되는 야만의 시대와 무엇이 다를까.

밤하늘의 별처럼 많고 많은 새해 소원 가운데 나의 것 하나도 보태본다. 새해에는 우리의 문제에 대해 조금 더 마음을 나눠줄 수 있도록 수많은 나들의 하루가 평안해지기를, 덧붙여 그 마음을 이어야 하는 나에게도 조금 더 성숙한 능력이 더해지기를. 2021년에도 따로일 수 없는 ‘우리’의 안녕을 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디올백 사과 의향’ 질문했다더니…박장범 “기억 오류” 말 바꾸기 1.

‘디올백 사과 의향’ 질문했다더니…박장범 “기억 오류” 말 바꾸기

‘미정산 사태’ 구영배 큐텐 대표·티메프 경영진 구속영장 모두 기각 2.

‘미정산 사태’ 구영배 큐텐 대표·티메프 경영진 구속영장 모두 기각

‘입틀막’ 경호처, 윤 골프 취재하던 기자 폰 강제로 뺏어 3.

‘입틀막’ 경호처, 윤 골프 취재하던 기자 폰 강제로 뺏어

[단독] KBS 박장범, 최순실 딸 ‘이대 특혜입학’ 의혹 보도 막았다 4.

[단독] KBS 박장범, 최순실 딸 ‘이대 특혜입학’ 의혹 보도 막았다

이재명 산 넘어 산…‘의원직 상실형’ 이어 재판 3개 더 남았다 5.

이재명 산 넘어 산…‘의원직 상실형’ 이어 재판 3개 더 남았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