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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가르칠 때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해

등록 2022-04-25 16:01수정 2022-04-26 02:07

연재ㅣ강원국의 ‘공부하면 뭐 하니’

공부에는 다섯가지 마음이 필요하다. 관심, 호기심, 욕심, 의심, 변심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도 필요하다. 배우는 사람의 처지나 심정에 공감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참여할 공간을 열어주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끼리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공부에는 다섯가지 마음이 필요하다. 관심, 호기심, 욕심, 의심, 변심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도 필요하다. 배우는 사람의 처지나 심정에 공감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참여할 공간을 열어주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끼리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선생님을 꿈꾼 적이 있다. 대학에서 교직과정을 이수한 후 2급 정교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노무현 대통령 연설비서관을 하던 중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교 교사에 지원해보기도 했다. 대통령께 구두로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고 말았다. 지원한 사립고에서 채용 조건으로, 자신들이 지정한 학원에서 6개월간 강사 활동을 할 것을 제시했고, 나는 자신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8년 전부터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글쓰기, 말하기에 관해 강의한다. 처음에는 ‘강의’를 베푸는 행위로 착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내 것을 써먹는 일이었다. 나는 써먹기 위해 공부한다. 그런 공부는 재밌다. 가르치지 않았다면 공부할 일도, 공부한 것을 써먹는 즐거움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가르칠 때 가장 많이 배웠다. 가르치면서 문득 깨닫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전에도 그랬다. 학창 시절 공부할 때 눈으로 읽기보다는 친구에게 입으로 설명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교회에서 청소년부 교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성경을 가르치면서 내 신앙심이 쑥쑥 자랐다. 자신이 성장하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있을까. 그런 점에서 ‘공부해서 남 주지 않는다’. 공부하는 자신이 즐겁다.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좋은 말을 들으면 바로 행동에 옮겨야 합니까?” 공자는 “신중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또 다른 제자가 묻자 “곧장 실행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어찌하여 같은 질문에 다른 답을 주시느냐?”고 묻자, 한 사람은 너무 성급하고, 또 다른 사람은 너무 소심해서 그랬다고 했다.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얘기다. ‘인재시교’(因材施敎), 일률적이 아니라 적성과 소질에 맞춰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가르치는 방법엔 왕도가 없다. 질문으로 가르칠 수도 있고, 토론을 통해 일깨울 수도 있다. 혹은 실습으로, 또 어떤 이는 모범을 보여 가르친다. 글쓰기만 하더라도 자신이 경험으로 깨달은 방법을 소개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원론적인 모범 답안을 알려주기도 하고, 수강생이 쓴 글을 첨삭 지도하거나, 수강생끼리 합평하는 방식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교육 효과는 배우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자명한 것도 있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적 경험했던 방식으로 가르쳐선 안 된다는 점이다. 1등부터 꼴등까지 등수대로 앉히거나, 공부 잘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을 차별하는 교육, 일방적으로 주입할 뿐 학생이 참여하지 않는 교육. 그리하여 저마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하는 교육. 이 모두가 배움의 적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 또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 실력이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 글을 쓸 때다. 내가 쓴 글을 대통령이 매번 지적하고 꾸짖었다. 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통령이 내게 글 한편을 써서 보냈다. “한일관계에 관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란 연설문이었다. 그 글을 읽고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이분을 도와드린 게 아니고 배우고 있었구나. 이 정도 실력 있는 분이 나를 데리고 쓰려니 얼마나 갑갑했을꼬.’ 그랬다. 그의 글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가 숨겨뒀던 한 칼을 본 것이다. 그 이후 나는 고분고분해졌다. 아니 많이 혼날수록 수지맞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단지 실력만은 아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가르치는 일을 사랑하고, 잘하고 싶은 열의가 있어야 한다. 어떻게 가르쳐야 배우는 사람이 공부의 재미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지 궁리해야 한다. 가르치는 일을 잘하고 싶어 부단히 공부해야 한다. 공부를 게을리하고 배움을 즐거워하지 않는 이가 어찌 잘 가르칠 수 있겠는가. 내가 모신 분들은 하나같이 일에 진심이었다. 매사에 열과 성을 다했다. 일을 잘하고 싶어 스스로 공부 중독자가 되어, 함께 일하는 사람을 가르쳤다.

공부에는 다섯가지 마음이 필요하다. 관심, 호기심, 욕심, 의심, 변심이다. 먼저, 공부에 관심을 갖고 흥미를 느껴야 한다. 그러면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궁금해진다. 탐구욕이 타오르게 된다. 의문이 생기고 반문하게 된다.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생각이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변화 발전한다. 공부하기 전과 후의 생각이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진다.

사람에 대한 애정도 필요하다. 배우는 사람의 처지나 심정에 공감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참여할 공간을 열어주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끼리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이해하고, 그런 내용 사이사이의 빈칸을 채우고 맥락을 파악한 후, 그 내용에 관해 비판적으로 사고해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만들고, 그것을 설명하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교학상장(敎學相長)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사람을 아끼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사람이 성장하는 데서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선생님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 ‘강원국의 공부하면 뭐 하니’ 연재를 마칩니다. 강원국 선생님과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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