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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일제고사 살리고, 미달 땐 AI 지원? 구태·미래 섞인 ‘짬뽕 교육’

등록 2022-10-11 21:03수정 2022-10-12 10:58

2011년 7월12일 인천시 남구 문학초등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이 ‘2011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치르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7월12일 인천시 남구 문학초등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이 ‘2011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치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표집평가인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원하는 모든 학교가 참여하는 전수평가로 치를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혀 ‘일제고사’ 부활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부는 이 평가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찾아 인공지능(AI) 학습 프로그램, 디지털교과서 등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교육 전문가들은 일제고사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가려내기가 더 어렵고 기술에 치우친 방법으로는 기초학력 미달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 “전 정부 폐지한 전수평가 원하는 모든 학교 참여”

윤 대통령은 1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기초학력보장법이 제정된 이후 처음으로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이 보고된다. 지난해 고등학생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수학·영어 수준이 미달되는 학생이 2017년 대비 40% 이상 급등했다”며 “지난 정부에서 폐지한 학업성취도 전수평가를 원하는 모든 학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학생별로 밀착 맞춤형 교육을 해서 국가가 책임지고 기초학력 안전망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월14일 교육 공약을 발표하면서 “학업 성취도와 격차 파악을 위해 주기적 전수 학력 검증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표집방식에서 전수평가로 바꿨다가 학교 줄세우기 경쟁과 사교육 유발 등 폐해를 낳았다. 당시 교육 현장에서는 일제고사를 대비한 모의고사가 성행하고, 일제고사에 포함되지 않은 과목의 수업시수를 축소하는 파행이 잇따랐다. 일제고사를 앞두고 밤 9시까지 초등학생들에게 보충수업을 시키거나, 상위권 학생에게 상품권을 지급하는 성적 줄세우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일제고사를 보는 날 기초학력 미달인 학생들은 가급적 등교하지 않도록 하는 학교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 때 초등생 보충수업 등 줄세우기 부작용

이에 문재인 정부는 2017년부터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약 3%만을 대상으로 표집평가를 실시해왔다. 다만 코로나19 이후 학력 저하로 올해부터는 표집평가는 유지하되, 원하는 학교는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를 치를 수 있도록 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를 ‘전수평가’ 방식으로 치를테니 참여하라는 압박이어서, 교육계에서는 일제고사 부활로 받아들이고 있다. 전경원 경기도 교육정책자문관은 “원하는 학교만 본다면 일제고사가 아니겠지만 윤 대통령은 그보다 전수평가라는 모순된 표현을 앞세웠다”며 “실무자 차원에서 해야 할 발언을 대통령이 함으로써 일제고사를 시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도 이날 논평을 내고 “기초학력보장법은 지필평가, 관찰, 면담 등 다양한 진단도구를 보장하고 있다”며 “향후 평가 권한과 실시 여부를 두고 중앙정부, 시도교육청, 학교장, 교사, 학생 등 여러 곳에서 마찰이 생길 경우 초중등교육법 제9조의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학업성취도 측정을 위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조항을 강제하면 일제고사 실시 논란이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사들 “일제고사로 기초학력 미달 가리기 더 어려워”

현장 교사들은 일제고사로 인한 기초학력 미달 비율 등 데이터 왜곡 현상을 우려한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일제고사로 학교 간 경쟁이 붙게 되면 학생들에게 문제풀이를 시켜 20점 맞을 학생이 25점을 맞아 기초학력 미달에서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학습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어 결국 다음 학년에 또 미달이 되고 만다”며 “데이터가 왜곡되면서 오히려 학습 장애 등을 가진 학생들은 수치 속에 가려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초학력보장법을 대표발의한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윤 대통령이 학생별 맞춤형 진단·지원을 하자는 법의 취지를 완전히 왜곡했다”며 “일제고사는 개개인의 잠재적 능력을 끌어내야 하는 새 시대 교육과 거리가 먼 구시대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교육계에서는 기초학력 보장을 위해서는 ‘누구’를 가려내는 진단 도구를 늘리는 것보다 이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미 일선 학교에서는 학기 초에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과 교사의 관찰·상담 등을 통해 기초학력 미달 여부를 가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학력미달일수록 교사 손길 필요한데 AI 지원이라니…”

문제는 이날 교육부가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2023~2027)에 담은 지원 방안들조차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에듀테크 기반 개별 학습을 지원하겠다며 인공지능 학습 프로그램, 디지털교과서 등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대원 실천교육교사모임 대변인은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의 경우 자기주도 학습이 되지 않고, 학습에 대한 의지부터 가지게 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며 “누구보다 교사 등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을 인공지능으로 교육시킨다는 것은 기초학력 미달에 대한 고민 자체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이날 논평을 내고 “인공지능을 통한 맞춤형 지원을 한다지만 교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기초학력의 핵심은 진단이 아니라 학생 한 명 한 명을 돌볼 수 있는 지원 체계가 핵심”이라며 에이아이에 매몰된 기초학력보장 정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이날 “학력진단을 ‘일제고사’로 폄훼해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면서도 “학생 기초학력 보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가 학생교육에 전념할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최선의 지원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일제고사 부활 아니다”

대통령실은 ‘일제고사 부활’ 논란이 거세자 이날 저녁 “과거 정부에서 시행하던 학업성취도 전수평가가 지난 정부에서 폐지됐는데, 앞으로 원하는 학교는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라며 “학업성취도 전수평가를 부활할 것이란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일제고사를 부활하겠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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