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11월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2022 개정 교육과정 철회 요구 의견서 공동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가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에 2022 개정 교육과정 심의를 맡기면서, 연구진 동의없이 역사과 교육과정에 추가한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끝내 유지하기로 했다. 교육부가 교육과정을 심의하는 법정기구인 교육과정심의회를 ‘들러리’ 취급했다는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국교위 심의마저 형식적인 절차에 그칠 거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6일 국교위는 오후 4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제4차 회의를 열고 2022 개정 교육과정 심의본을 심의했다. 앞서 교육부는 행정예고 기간(11월9~29일) 동안 접수된 국민 의견 1574건을 바탕으로 심의본을 마련해 이날 국교위에 상정했는데, 역사과의 경우 ‘자유민주주의’, ‘민주주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함께 사용하는 행정예고안이 그대로 유지됐다. 반면 역사 관련 학회들의 요구에 따라 행정예고안과 달리 심의본에선 고교 ‘한국사’ 전근대사 비율이 늘었다. 이를 요구한 학회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교육부는 지난 2일 열린 역사과 교육과정심의회에서, 심의위원 14명 가운데 13명이 ‘자유민주주의’에 반대한 표결 결과에 대해 그 의미를 축소했다. 대통령령인 교육과정심의회 규정 제8조(의결정족수)는 ‘교육과정심의회 (교과별·학교별) 소위원회, 운영위원회, 참여위원회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써 의결한다’고 되어 있다. 장홍재 교육부 학교교육지원관은 “규정에 의결정족수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지만 심의회는 의결권을 가진 기구가 아니며 자문기구 성격”이라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전날인 5일 열린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원회에서는 정성식 운영위원(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의 표결 요구가 거절되기도 했다. 위원장인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의결정족수는 회의 성원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지 반드시 의결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정성식 위원은 “장 차관이 말한 것은 ‘의사정족수’로, 규정에는 안건을 의결하기 위한 정족수인 ‘의결정족수’라고 돼 있다”며 “장 차관의 말은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교육부가 심의회 결과를 입맛대로 골라쓴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래훈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한겨레>에 “교육부가 (심의회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론이 나오면 ‘절차적 정당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유민주주의’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면 단순 자문기구인 것처럼 깎아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박 회장은 전근대사 비율 확대에 대해 “연구진이 동의하지 않은 내용인데다 2일 역사과 교육과정심의회에서도 위원들의 의견이 나뉘어졌었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학회의 의견만을 수용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국교위가 교육부의 심의본을 심의·의결하면 교육부 장관이 이달 31일까지 고시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관련 법에 구체적인 심의·의결 방식이 규정돼 있지 않아 국교위가 심의본을 수정할 권한이 있는지조차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만약 표결에 붙인다면 친정부 성향 위원이 더 많기 때문에 심의본은 그냥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김용일 한국교육정책연구원 이사장은 “국교위의 권한, 국교위와 교육부와의 관계 설정 등 명료하지 않은 부분은 향후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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