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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교폭력 상처를 극복하고 용서와 용기를 배우다

등록 2023-03-20 17:30수정 2023-03-21 02:34

연재 ㅣ 너와 함께 읽고 싶은 책
벤 마이켈슨 ‘스피릿베어’ - 스에노부 게이코 ‘라이프’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폭’(학교폭력)으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했다. 이어 오디션 프로그램 <불타는 트롯맨>에서 줄곧 1위를 지켜오던 황영웅마저 학폭 논란으로 하차하면서 학폭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거세다.

여기에 잔혹한 학교 폭력에 대한 사적 복수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가 흥행몰이를 하면서 현실의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사이버 폭력 대응 강화부터 피해 학생 보호까지 포함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 수십 건이 계류돼 심사를 기다리는 중이다.

학폭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너와 함께 읽고 싶은 책’ 특집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각각 학폭을 진지하게 고찰할 수 있는 책을 추천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직면해야 한다

벤 마이켈슨 ‘스피릿베어’

<더 글로리>는 끝났다. 톡 쏘는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시고 난 후의 느낌이다. 시원한데 갈증은 더 심하다. “동은아,~”, “연진아,~”로 시작하는 말 잔치를 읽을 때면 학교 현장에서 학교폭력 업무를 맡고 있는 교사로서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다. <더 글로리>가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시청자에게 환기한 것은 맞다. 그런데 피해자가 소외되지 않는 갈등 전환의 해법을 시민들이 깊이 고민할 수 있게 했는지 의문이다.

벤 마이켈슨의 소설 <스피릿베어>에는 콜 매슈스라는 중학교 3학년 비행청소년이 등장한다. 철물점을 턴 걸 자랑으로 여기고 동급생 피터 드리스칼을 만신창이가 되게 한다. 이 일로 피터는 충격이 깊어 자살 충동에 시달릴 만큼 후유증을 심하게 앓는다. 결국 콜은 소년원에서 지내게 된다. 보호관찰관 가비가 콜에게 성인 법정으로 양도하는 절차 과정에서 원형 평결 심사라는 재판 방식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이 제도 때문에 콜은 변화의 기회를 얻는다. 소설은 가비의 헌신으로 콜이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진정으로 알아차리고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려는 지난한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에는 피터에게 용서하고 화해와 치유의 길을 밟는다.

만약 원형 평결 심사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콜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뻔하다. 콜은 형사 재판을 받고 몇 년 감옥에 갇혀 있다가 출소하는, 범죄자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나는 죗값을 다 치렀어.”

피해자 피터는 어떨까? 피해 회복과 치유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피터는 재판부로부터 판결의 결과만을 통보받을 것이다. 콜은 법적 책임을 다 졌기에 피터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원망할 것이다. 결국 사건의 피해자임에도 피터는 더욱 소외를 당하게 된다.

<더 글로리>로 다시 가보자. 동은은 왜 폭력의 가해자가 돼야만 했을까? 동은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와 절차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은은 연진에게 이러한 진심이 전달되길 원하지 않았을까? “연진아, 나도 너처럼 존엄한 존재야. 네가 내 존엄함을 침해했으니 진심 어린 사과를 해 줬으면 해.” 연진은 왜 폭력의 가해자로만 남아야 했을까? 동은의 호소를 진심으로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부도덕성과 학교의 무능이 피해자 동은과 가해자 연진의 목소리가 전달되는 것을 막았다. 연진은 동은과 진정으로 직면했어야 했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가정폭력, 학교폭력, 국가폭력 등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법조인에게 의존하는 응보적 사법 시스템에는 판결은 있으나 피해자의 진심이 들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갈등과 폭력 문제는 해결되며 가해자에 대한 용서, 근본적인 치유와 화해는 이루어질 수 있다. <스피릿베어>는 그러한 혜안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래서 학교폭력 해결 방안으로 처벌 위주의 강한 법 마련에만 의식이 머물러 있는 정치인과 교육부의 대처가 아쉽다. 3월 둘째 주에 학교폭력 1호를 접수했다. 나는 당사자 학생들에게 물었다. “갈등 전환을 위한 회복적 대화모임을 가질 생각이 있니?” “네, 한 번 해볼게요.” 학생들에게 지지와 격려를 보낸다.

소도후(필명) 경기도교육청 소속 중등교사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스에노부 게이코 ‘라이프’

스에노부 게이코 작가의 대표작인 <라이프>는 어찌보면 단순한 구성의 만화다. 평범한 소녀가 오해로 인해 왕따를 당하지만 결국 그것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작품의 전부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결코 폭력의 무게를 그 나이대라면 누구나 겪는 성장통 수준으로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그 참혹한 모습을 때로는 독자를 질리게 할 정도로 자세히 묘사한다. 그럼으로써 왕따는 반드시 단죄되어야 할 심각한 범죄이며 어떤 이유로도 (심지어는 피해자가 예전에 왕따를 주도했던 적이 있더라도)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행동임을 보여준다.

꿈도 없고 성적도 평범한 소녀 아유무는 중학생 때 그토록 가고 싶었던 니시다테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계속 겉돌기만 하고 입학한 이후에 처음으로 사귀게 된 친구 마나미의 남자친구인 카츠미에게 성폭력을 당하지만 억지로 찍힌 사진을 폭로하겠다는 카츠미의 협박 때문에 이 일을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마나미를 비롯한 반 여학생들에게는 자신이 마나미의 남자친구를 빼앗으려 했다는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으며 바늘 삼킬 것을 강요받는 등 극심한 괴롭힘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작품은 단순히 학교폭력의 참상을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중반 이후부터 아유무는 정신적으로 성장하며 적극적으로 반격하고 그 덕분에 차츰 괴롭힘에서 벗어나게 된다. 결국 최후에는 모두가 아유무를 괴롭힌 주범이 마나미임을 알아차린다. 학생들은 이제 마나미를 왕따시키려 하고 궁지에 몰린 마나미는 자살하는 것으로 왕따의 책임에서 도망치려고 한다. 그때 아유무가 유일하게 그녀의 자살 시도를 제지하며, 이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 “살아…!”를 외친다.

포기하지 말고 살아가는 것, 그것은 <라이프>를 비롯한 스에노부 게이코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그의 작품 배경은 하나같이 비관적이고 암울하게만 보이지만, 이는 작품을 피상적으로 바라본 것에 불과하다. 그의 작품 속에서 정신적 성장을 이룬 주인공은 더이상 암울한 세계에서 도피하려 들지도 않고 자신을 둘러싼 불합리를 애써 외면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히지도 않는다. 자신을 둘러싼 불합리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스에노부 케이코 작가가 말하는 성숙한 삶의 방식이다.

이성현씨
이성현씨

아쉽게도 작가는 작품의 결정적인 장면에서조차 삶을 지속할 이유에 대해서는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는다. 그저 ‘포기하지 말고 살아라’는 인상적인 메시지만 전달할 뿐이다. 이는 작가의 철학적 사유가 아직 빈약하다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단순히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문학을 탐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품 속에서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며 독자는 자신의 삶을 등장인물에 대입하며 반성하게 된다. 잘 쓰인 문학작품은 독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작품이다. <라이프>가 괴롭힘을 주도하였거나 방관한 독자에게 자신의 과오를 부끄럽게 만들었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독자에게 포기하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면 이미 이 작품은 그 역할을 다한 셈이다.

이성현 충남대학교 철학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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