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일 방송된 <문화방송>(MBC) ‘실화탐사대’에 나온 표예림씨. 방송 갈무리
“월화수목금 다 (당했어요).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거라면 전 그 이유가 궁금해요. 정말”.
초·중·고 12년 동안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표예림(27)씨의 ‘학폭 미투’ 여파가 한달여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2일에는 학폭 주동자로 지목된 이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직접 글을 올려 누리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는데요. 그는 글에서 “저는 소위 ‘노는 무리’가 맞았고 중학교 시절 (표씨의) 휴대전화를 보고 이를 돌려달라는 표씨를 발로 찬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표씨가) 큰 거짓에 약간의 진실을 섞어 억울해 미칠 지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학폭 주동자로 지목된 이의 주장을 보면서 최근 발표된 통계가 떠올랐습니다. 교육부가 지난해 9월 낸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입니다. 조사에 참여한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3학년 학생 321만명 가운데 피해 응답률은 1.7%(5만4천명), 가해 응답률은 0.6%(1만9천명)이었습니다. 통계를 들여다보면 제2의, 제3의 ‘표예림씨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조사에서 가해학생에게 ‘왜 괴롭혔냐’고 물어봤더니 가장 많이 돌아온 답은 ‘장난이나 특별한 이유가 없다’(34.5%)였습니다. 가해학생들의 ‘가벼운’ 생각과 달리, 피해학생들이 겪는 고통은 길었고, 도움의 손길은 멀리 있습니다. 교육부의 실태조사를 분석한 한국교육개발원의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분석보고서’를 보면, ‘거의 매일 피해를 당했다’는 응답이 21.8%, ‘1주일에 1~2번’이 25.8%로, 둘을 합치면 절반에 가깝습니다. “월화수목금 다 (당했다)”는 표씨의 말이 과장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언어폭력, 강요, 금품갈취, 신체폭력, 사이버폭력, 집단따돌림 등 피해 유형이 중복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피해학생의 55.5%가 한 가지 유형의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고, 2가지 유형은 25.9%, 3가지 유형은 11.9%, 4가지 유형도 4%였습니다. 지난달 2일 방송된 <문화방송>(MBC) ‘실화탐사대’에 나온 표씨의 동창은 “그 친구(표예림)한테 욕설을 한다든지, 폭력 같은 건 계속 목격했던 것 같다”고 표씨가 여러 유형의 폭력에 노출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피해학생 3명 중 1명 “주변에 알려도 도움 안돼”
방송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대목은 표씨가 학창시절 담임 선생님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표씨는 “담임 선생님한테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담임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나를 좀 탓했다”며 “큰 용기를 내서 말을 한 것이었는데, 그게 묵살이 되어 버렸고 그 다음부터는 (알릴) 시도조차 해볼 생각이 안 났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 분석 결과를 봐도, 피해학생 가운데 초등학교에서 89.9%, 중학교에서 93%, 고등학교에서 95%의 비율로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렸습니다.
문제는 피해 사실을 알린 학생에게 알린 후에 도움이 되었는지를 물었더니 3명 가운데 1명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답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으로 언어폭력의 경우 신고한 학생(3만9396명) 가운데 35.3%(1만3889명)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고, 이밖에 금품 갈취(33%), 성폭력(32.8%), 사이버폭력(31.6%), 집단 따돌림(29.4%), 신체 폭력(28.9%), 강요(27.2%) 등 다른 유형의 학폭 피해에서도 비슷한 비율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응답했습니다.
지난달 2일 방송된 <문화방송>(MBC) ‘실화탐사대’에 나온 표예림씨 동창생. 방송 갈무리
전문가들은 학창 시절 해소되지 못한 문제로 인해 학폭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신체적 후유증에 주목합니다.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우울, 위축·불안, 낮은 자아존중감, 자살행동 등을 겪는데 이 후유증을 오롯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짊어져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침 정부는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의 자녀 학폭 사태를 계기로 지난 12일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의 핵심은 학폭 가해 학생의 대입 정시는 물론 취업까지 불이익을 주는 방안으로, ‘엄벌주의’에 초점을 맞춰져 있습니다. 가해자는 학교 밖으로 떠밀고, 피해자는 보호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처벌 강화도 필요하지만, 피해자가 조기에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