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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대안학교 ‘쌩얼’을 엿보다

등록 2007-07-01 17:15수정 2007-07-01 17:48

이우고의 학생들은 토론과 탐구를 중심으로 하는 시끌벅적한 수업에서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능력을 기른다. 사진은 이우고 학생들의 영어 수업 시간. 김명진 기자 <A href="mailto:"littleprince@hani.co.kr">littleprince@hani.co.kr</a>
이우고의 학생들은 토론과 탐구를 중심으로 하는 시끌벅적한 수업에서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능력을 기른다. 사진은 이우고 학생들의 영어 수업 시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커버스토리 / 대안학교 ‘쌩얼’을 엿보다

선배는 후배의 학습 도우미

사교육 없이도 스스로 터득하게

“영어공부는 단어가 기본이니까 암기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보자.” 지난 25일 저녁 8시, 경기도 성남 이우고등학교의 한 교실에서 학생들만의 공부가 끝났다. 2회 졸업생 이해원(19)씨가 재학생 5명과 함께하는 공부모임이다. 3학년이 된 재학생들이 본격적인 수능 준비에 들어가면서 공부모임이 꾸려졌고 방학을 맞은 이씨가 지난주부터 공부 도우미로 나섰다. 이 학교 이수광 교감은 “선배한테 도움을 받고 다시 후배한테 도움을 주는 식으로 공부모임이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이 학교에서는 윗학년이 아랫학년과 함께 공부모임을 꾸리는 게 보편화 돼있다. 사교육에 기대지 않고서도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학생들 스스로 찾은 결과다.

고교 선택을 놓고 대안고교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이 높다. 널리 알려진 대안고교들은 대개 교육부의 인가를 받은 특성화고교로 운영되기 때문에 학력인정을 받지 못하는 미인가 대안학교에 보내는 부담을 한결 덜 수 있다. 특히 이런 대안고교의 ‘대학 진학률’이 일반계 고교에 뒤지지 않으면서 ‘대안적 교육’과 ‘대학 진학’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기대도 한몫을 한다. 실제로 2004년의 한 조사를 보면 10개 대안학교 졸업생 291명 중 269명이 대학에 진학해 92.44%의 진학률을 보였다. 입시를 목표로 하지 않고도, 입시와 관련없는 과목을 공부하면서도 대학에 가는 아이들의 비결은 뭘까?


섬세한 진로교육

대학보다 직업부터 탐색하도록

이우학교 이 교감은 “대안학교 아이들은 대학을 보는 ‘렌즈’가 다르다”고 했다. 체계적인 진로교육을 통해 ‘대학’보다 ‘직업’을 먼저 선택한다는 얘기다. 이우학교 고1 학생들은 매달 열리는 진로특강을 필수로 듣는다. 로봇 전공 공대 교수부터 영화사 대표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고 진로를 탐색한다. 고2가 되면 방학 때마다 관심있는 분야의 직업을 직접 체험하는 ‘인턴십 연구’에 참여한다. 인턴십을 통해 만나야 할 전문가와 방문할 장소, 체험프로그램 등 모든 과정을 학생 스스로 기획하고 섭외하고 수행한다. 고3 졸업생들은 그동안 체험했던 직업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켜 논문을 쓴다.


모교 공부모임을 지도하는 이씨도 고2 ‘인턴십 연구’로 한 대학의 심리학과 수업을 청강했고, 그 대학 부설 심리상담센터 일을 도왔다. 지금은 그 대학 인문학부에 다니고 있다. 이씨는 “인턴십 경험 등을 활용해 만든 포트폴리오로 수시합격을 할 수 있었다”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노력한 결과가 대학 진학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했다.

진로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을 갖고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다 보니, 입시공부도 ‘자기주도적’으로 한다. 가장 보편화된 방법은 ‘학습동아리’를 꾸리는 것이다. 순수한 학문적 욕구에서 운영되기도 하지만, 고3 학생들은 주로 입시 공부를 하는 동아리를 만든다. 또 평소 토론과 주제탐구를 중심의 수업으로 사고력을 다진 대안고교의 학생들은 수능이라는 시험에 적응하기도 쉽다고 한다.

학교는 최소한의 지원을 할 뿐이다. 경남 산청의 간디고 박기원 교장은 “학습관을 지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외에 학교는 따로 해 주는 게 없다”고 했다. 전남 담양의 한빛고도 방과후 학교를 통한 교과보충 외에 별도의 대입지원은 없다. 한빛고는 정규 취침시간인 11시을 넘어 하는 공부를 ‘올빼미학습’이라고 부르는데, 이도 새벽 1시까지만 허용한다. 입시 준비에 쓸 수 있는 작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대안고교 학생들은 자기주도적 학습의 ‘달인’이 되어 있는 셈이다.

90% 넘어선 대학진학률

지나친 입시경쟁 우려도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뾰족한 진로를 찾지 못하는 학생이나 부모들은 대학 진학을 놓고 조급해지기도 한다. 대안고교 2학년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아이는 경영 쪽을 전공하려고 하는데, 인기학과라 진학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했다. 대학 진학에 대한 학부모의 이런 요구를 대안고교들도 무조건 외면할 수도 없다. 영산성지고의 경우 골프나 당구, 볼링 등으로 대학을 가고자 하는 학생들을 외부기관에 위탁해 교육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대안고교 졸업생 가운데 명문대에 진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학생들 사이에 ‘좋은 대학’에 대한 욕구도 생기고 있다. 간디고 박 교장은 “선배들이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을 보고 학생들의 학구열이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대학 진학을 반대하지도, 좋은 대학에 가는 걸 싫어하지도 않지만 학생들이 입시 경쟁에 몰두할까 봐 우려된다”고 했다. 그는 대안학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입시 공부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학생들에 대한 학교 차원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우학교 1회 졸업생 윤준혁(19)씨는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 대학 철학과에 입학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자퇴를 했다. “철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대학을 가야한다고 믿었지만, 우리 대학은 내가 생각했던 진보적이고 진중한 문화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실존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 유학을 준비중이다. 대개 대안고교 아이들에게 대학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고, 그렇게 아이들은 고교 생활을 보내고 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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