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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헝그리 정신” 가르치기 전에…

등록 2007-08-19 15:27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대표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대표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 헝그리 정신

다른 부모들처럼 나도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 더 많은 체험을 주려고 애써왔는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풍족한 환경이 아니라 결핍의 경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 부족한 게 있어야 갖고 싶은 욕구도 샘솟고 갖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겠냐는 거다.

그래야 얻었을 때의 기쁨도 클 것이다. 우리가 수학여행에 그렇게 흥분했던 것은 여행경험이 거의 없었던 탓, 혹은 수학 여행비를 쉽게 내줄 수 없어 애를 태운 부모님 덕분이기 쉽다. 도서관과 친구 집을 기웃거려 손에 잡은 그 책을 밤새워 읽은 이유도 책장에 꽂아두고 아무 때나 뽑아 읽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른바 ‘헝그리 정신’이 좀 필요한 거 아냐? 이 환경이 애들 탓도 아니건만 이런 생각에 괜히 아이를 한 번 째려보게도 된다.

어떤 스포츠종목들은 헝그리 정신이 사라져 인기를 잃었다고도 하지만, 헝그리한 환경을 억지로 조성할 수도 없는 일. 결국 새로운 동기부여책이 필요하다. 요즘 아이들은 부족함 없이 자라 버릇 없고 나른하다고 혀를 차는 어른들도, 사실은 그 아이들에게 먹히는 접근법을 모른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는 경영자도 종종 있다. 몸소 근검 절약을 실천함으로써 모델이 되는 경우는 그래도 좋은 영향을 준다. 반면 상대방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고, 긴 근무시간을 요구하며, 결점을 지적하는 식으로 헝그리 정신을 요구한다면 결과는 어떨까?

직원들은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때문에 회사를 옮기고 싶다는 마음만 생길 것이다. 아이들을 자꾸 칭찬해주면 ‘자기 주제 파악 못하고 잘난 줄 알까 봐’ 칭찬을 아낀다는 부모도 있다. 역지사지, 본인에게 대입해보면 오히려 상대가 인정해 줄 때 자신의 부족한 면을 돌아볼 수 있다는 걸 깨달을텐데 말이다.

아이에게 결핍이 필요한 것 같다는 내 생각은 일견 맞는 듯했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인 후배와 얘길 나누다가 아이들이 겪는 정서적 결핍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을 들었다. 어릴 적에 부모의 애정이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면 아이들은 식탐이나 도벽 등으로 보상하려 하기도 한단다. 부모의 사랑을 상징하는 게 음식이나 돈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자니 가슴이 아파왔다.

무슨 기준으로 결핍과 풍요를 나눌 것인가? 따지고 보면 우리 아이들도, 부모가 집에 오지 않은 이른 저녁시간의 결핍을 이미 충분히 겪고 있지 않나 말이다. 주관적인 잣대로 헝그리한 환경을 만들려다 보면 더 중요한 사랑과 믿음에 흠집을 가져올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이전 시대의 궁핍을 강요할 수는 없다. 애플컴퓨터의 스티브 잡스는 한 연설에서 “늘 배고프고, 늘 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고 했다. 지금 누리는 게 다이고, 내가 아는 게 다인 것처럼 생각하는 어른들이야말로 헝그리 정신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한국코칭센터 대표 Helen@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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