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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여백’있는 인간관계로 더 큰 꿈과 희망 키우길

등록 2007-09-16 15:23수정 2007-09-16 15:38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대표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대표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

나의 막내 이모는 낭만파였다. 초등학교 5학년인 내 생일날 내 친구들까지 초대해서 시내 레스토랑에서 돈까스를 사주었던- 내 유년시절의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막내 이모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기타를 쳤으며, 가끔은 시집에나 나옴직한 멋진 말을 해주는 20대 처녀였다. 어린 내 눈에도 다른 어른들과는 다르게 보였던 이모의 이미지는 알게 모르게 내가 이상을 추구하는 경향을 갖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나보다 아홉 살이 많았던 언니는 성인들의 세상을 보여주는 모든 이야기의 보고였다. 언니의 친구와 직장 동료들, 그들의 각종 사연, 나중에는 회사에 맞서 법정투쟁까지 갔던 극적인 사건 등. 언니는 어린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연결되는 하나의 창이었다. 언니뿐이 아니었다. 두 집 살림을 하다가 발각이 되어 아주 집안 전체가 난리가 났던 친척 아저씨는 누구에게나 점잖고 친절한 분이어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중국집을 하던 이웃의 장남인 동네 오빠는 부스스한 추리닝 차림으로 어눌하게 나에게 몇 마디 말을 걸곤 했는데, 나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까마득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같은 성당에 다니던 한 오빠는 나중에 신학교를 거쳐 신부님이 되었는데 나에게 많은 도전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정말 신이 있느냐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게 미사에 참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 아니냐고,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나는 그 오빠에게 묻고 또 물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부모님과 선생님이 아닌 다른 성인들도 우리에게 꽤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것을 부모와 선생님, 친구가 아닌 ‘제3지대의 인간관계’라고 하고 싶다. 제3지대 관계는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떨어져 있어서 여백이 있는 관계이며, 그 여백을 우리는 나름의 상상과 해석으로 채운다. 서로 이해관계가 별로 없으니 오히려 더 독립적으로 볼 수 있고 하나의 인간으로 다가오는 그런 관계다.

내 친구는 아들 하나를 키우는데, 사정이 있어 그 아들이 크는 동안 아이 아버지가 옆에 있지 못했다. 대신 아이는 엄마의 친구, 후배들인 이모 삼촌들과 무척 친하게 지냈다. 이 삼촌 이모들은 자주 나타났고, 어떨 때는 아이와 단 둘이 구경을 가거나 선물을 주기도 했다. 친구는 그 관계가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고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암, 내 경험으로 봐도 분명 그럴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형제가 많아야 한 둘이다. 너무나 구획이 분명한 핵가족 생활에다, 세상과의 소통은 컴퓨터 사이버 공간이 대신해준다. 이런 아이들에게 제3지대의 인간관계를 경험하게 해줄 수는 없을까? 다양한 개성이 있는, 직접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어른들을 통해 모순덩어리이면서 동시에 희망과 풍부한 가능성이 있는 이 세상을 자기 나름대로 느끼고 배웠으면 좋겠다. 내가 아이들에게 다른 어른들 얘기를 종종 해주는 것도, 제3지대 관계의 풍부함을 겪지 못하는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고현숙 / 한국코칭센터 대표/Helen@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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