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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제자 삶 바꾸는 ‘선생님 채찍효과’

등록 2008-06-29 15:38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

어렸을 적 나는 가끔 지어내서 일기를 쓰곤 했다. 일상은 심심할 정도로 너무 평이해서 일기에 쓸 만한 ‘흥미 있는 사건’이 안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거짓말이 딱 걸렸다. 언니 생일날 내가 일찍 일어나서 밥을 지었다고 꾸며 썼는데 그걸 기특하게 여긴 담임선생님께서 가정 방문을 와서 그 얘기를 하신 것이다. 당사자인 우리 언니가 “예? 쟤가 밥을 했대요?” 하고 황당한 표정을 짓자 선생님도 얼른 알아차렸다. 순간적으로 나를 흘겨보긴 하였으나, “얼마나 그럴듯하게 썼는지, 진짠 줄 알았네요”라며 웃으셨을 뿐 혼내진 않으셨다.

선생님은 나중에 나를 부르셔서 글을 더 잘 쓰려면 ‘다독, 다작, 다상량’의 삼다, 즉 ‘많이 읽고 많이 써보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얼마나 멋진 말인지, 그것은 나에게 글 쓰는 일에 관한 최초의 각인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 연필로 눌러 쓴 짧은 편지를 보내면 선생님은 아름다운 글씨에 유려한 문장으로 두세 장이나 되는 긴 답장을 우편으로 보내주셨다.

내가 존경하는 교육학자 한 분은 거의 정반대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를 써 내라는 숙제에 나름대로 한 편을 써 냈다고 한다. ‘구름’이라는 시였다. 그런데 다음 날 선생님이 교무실로 부르시더니, “너, 이 시 어디서 베꼈냐? 사실대로 말해!”라고 호되게 추궁을 하더라는 것이다. 정말로 베껴 쓴 것은 아니었다. 약간 상투적인 듯한 표현이 있어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을 준 것이었는데, 선생님은 그걸 의도적으로 베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어디서 선생님을 속이려 하느냐”는 강한 질책을 당하면서, 이 어린 학생은 ‘다시는 글을 쓰지 않으리라’, ‘나는 글을 쓸 자질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

60이 다 된 지금도 이분은 이 얘길 하면서 약간 흥분을 하신다. 젊은 시절 글과는 담을 쌓게 만들었던 그 경험이 아직도 억울한 것이다. 만약 선생님이 “이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 어디서 참고했니?”라고만 하셨어도 그렇게까지 충격이 크진 않았을 거라고 한다.

선생님들은 아셨을까? 자신의 말이 그렇게나 크게 제자의 인생에 영향을 줄 거라는 사실을. 조직에서는 업무 초기 단계의 작은 판단 차이가 나중에 말단의 실행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는 영향력을 끼치는 현상이 생기는데, 경영학에서 이를 ‘채찍효과’라고 부른다. 마치 손목을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채찍은 크게 휘둘러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영향도 그 정도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대표 Helen@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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