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우치 보육원의 만 2~3살 반 어린이들이 급식에 쓸 채소를 캐러 텃밭으로 가려고 교실을 나서고 있다.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제공
[아이랑 부모랑]
건강-매일 동네 한바퀴 달리고 텃밭채소 급식 활용
환경-보육원 건축때 천연재료 쓰고 태양열로 난방
공동체-“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육아” 아버지회 활성화
건강-매일 동네 한바퀴 달리고 텃밭채소 급식 활용
환경-보육원 건축때 천연재료 쓰고 태양열로 난방
공동체-“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육아” 아버지회 활성화
염지숙 교수의 ‘일본 자유보육’ 탐방기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회장 임재택 부산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지난 3~6일 일본 기타큐슈 지역의 자유보육 현장을 둘러보는 동계 국외연수를 실시했다. 자유보육은 ‘아이들은 밖에서 바람 맞고 햇볕을 받으며 뛰어놀아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데, 일본 전체 유치원·어린이집의 80% 이상이 자유보육을 실천한다고 한다. 이번 연수에는 국내 유아교육기관 교사와 원장 등 20여명이 참여했다. 연수를 다녀온 염지숙 건국대 유아교육과 교수의 탐방기를 싣는다.
일본의 유아교육을 자유보육, 자연보육, 또는 생활보육이라고도 일컫는데, 이틀에 걸쳐 둘러본 네 군데의 유아교육기관에서도 철저하게 아이 중심, 생명 중심의 교육을 하고 있었다.
처음 가본 곳은 기타큐슈의 시이유치원이었다. 200여명의 아이들이 넓은 잔디 운동장에서 편을 나누어 축구를 하거나 자유롭게 줄넘기나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만 3살 어린이들도 줄넘기를 ‘즐기고’ 있었는데, 언니·오빠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어린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따라하게 된다고 했다. “시이유치원의 가장 중요한 교육 방침은 강하고 건강한 아이로 키우는 것”이라는 원장의 설명은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 일행은 좀 쌀쌀한 날씨 때문에 겉옷을 입고도 어깨를 움츠릴 정도였으나, 아이들은 모두 짧은 양말을 신고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이들이 건강하다는 증거였다. 시이유치원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고려해 자그마한 옥상에 잔디를 심어 녹색지대를 만들고 있었다. 이는 유치원에서 생명교육을 함께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할 수 있다.
두 번째 방문지 시토쿠유치원에 들어서자, 오래된 은행나무와 벚나무가 자태를 뽐내고 있는 넓은 운동장과 모래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교사는 최소한으로만 개입하고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보였다. 잠시 뒤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3살부터 5살까지의 아이들 300여명이 동네를 한 바퀴 돌아오는 마라톤을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동네 아저씨도,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할아버지도 아이들의 마라톤에 방해되지 않게 모두 멈춰 서서 응원했다. 달리는 아이들이나 응원하는 어른들 모두 절로 신명이 났다. 시토쿠 유치원에서는 마라톤을 날마다 하고 있었다. “일본의 거의 모든 유치원에서 마라톤을 하고 있으며, 비만아가 없기 때문에 비만아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원장의 설명에 10년 또는 20년 뒤의 일본 청소년과 우리나라 청소년의 모습이 교차했다.
이튿날에 방문한 야마우치 보육원은 0살에서 5살까지의 아이들을 위한 환경보육을 실천하고 있는 곳이었다. 보육원 건축에 해초, 조개류, 한지 등의 천연재료를 사용하고 난방에는 태양열을 이용하고 있었다. 텃밭에서 먹을거리를 직접 길러 먹는 것은 이번에 방문한 유아교육기관 네 곳의 공통점이었다. 야마우치 보육원 아이들도 보육원에서 가까운 텃밭에 직접 씨앗을 심고, 가꾸고, 거두는 체험을 한다. 이때 모종을 사서 심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받아 심는데, 이는 1년 동안 식물의 순환과정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 급식 준비 모습을 보려고 주방으로 가는 길에, 고사리손에 파를 한 줌씩 쥐고 있는 2살 아이들과 마주쳤다. 내일 급식에 쓸 식재료라고 했다. 지속 가능한 사회의 주체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야마우치 보육원의 원장은 “자연은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제공하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이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자연을 느끼고 자연과 노는 것을 통해 아이들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체험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고바토노이에 보육원은 원장의 철학이 담긴 목조 건물이 참 인상적이었다. 일본은 습도가 높아, 기후에 따라 습기를 흡수하고 뿜어주는 목재가 아이들을 위한 건물에 가장 적절한 재료라는 것이다. “녹음과 빛 속에서 바람의 아이를 키우자”는 고바토노이에 보육원의 보육 취지는 자연만이 유일한 놀잇감이었던 원장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보육원은 자연 체험과 농사 체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보육을 지향한다. 이곳에서는 급식 잔반과 정원의 낙엽 등을 밭의 유기비료로 활용하고 거기서 생산되는 채소를 급식에 사용한다. 또한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운동’으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확보하고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 해결하고자 한다.
이 보육원의 가장 큰 목표는 각종 산업문명 때문에 보육원, 가정, 지역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현재의 육아 환경을 자연을 통해 다시 연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지역사회가 같이 하는 일이라는 의식을 갖도록 하려고 ‘아버지회’, ‘아버지의 아버지회(할아버지 할머니)’를 운영함으로써 보육원, 가정, 지역사회의 연계를 모색하고 있다. 이는 유아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사람, 공간, 시간을 함께 묶고 진정한 통합을 이루려는 일본 자유보육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러한 일련의 실천들은 우리나라의 생태유아교육과 맥을 같이한다. 1995년 발족한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생태유아교육 운동은 ‘아이살림’과 ‘생명살림’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살리자는 것이다. 2002년에는 생태유아공동체가 설립돼 유아교육기관에 유기농 식재료를 공급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생태유아교육이 추구하는 이념은 아이들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키우는 것이다.
이번에 방문한 일본의 유아교육기관 네 곳도 이와 같은 이념을 추구하고 있었다. 고바토노이에 보육원의 원장은 “요즈음 아이들이 텔레비전이나 게임을 많이 보아서 예전의 아이들과 다르게 바뀐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아이들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자연활동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생명을 느끼고 경험하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본성을 그대로 따르는 삶의 교육,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이은 먹을거리 파동과 아토피 등 알레르기성 질환의 증가로 생태유아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유아교육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생태유아교육이 아니라 아이의 생활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아이의 삶 자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염지숙 건국대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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