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숙의 학부모코칭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 정규 과정으로 편성되었을 때 2년이 걸리는 MBA 과정을 똑같은 커리큘럼과 시간을 투입하되 1년 만에 끝내는 속성 코스가 있다면, 즉 일주일에 6시간 공부할 것을 12시간씩 가르치며 빨리 끝낸다면 학생들의 학업 성취는 정규 과정과 같을까, 다를까? 결과는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정규 과정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같은 자원을 투입하되, 시간 요소를 더 빨리 하면 효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봐야 하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가르치는 속도를 높인다고 해서 배우는 속도도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배우는 것은 익히는 과정, 즉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영학자들은 이것을 시간 압축의 비경제성(Time Compression Diseconomies)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어린아기를 키우며 다들 힘들어할 때, “애들은 왜 속성재배가 안 되냐?”며 푸념해서 주위를 웃게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단기 완성이 안 되는 것은 아기들이 자라서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자연의 시간표대로’라는 성숙의 표현이 사람에게도 적용된다고 할까. 시간 압축의 비경제성이라는 개념을 배우면서, 시험 임박해서 며칠간 밤 새워 공부하는 벼락치기가 실제로 지식 습득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당연한 진리를 생각해보게 된다. 단기적으로 투입 대비 산출을 극대화하는 것, 즉 같은 노력을 기울여서 최대한의 성과를 올리는 것이 효율성(Efficiency)의 개념이라면, 장기적으로 목적하는 것을 얼마나 잘 이루는지를 따지는 개념은 효과성(Effectiveness)이라고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가진 농부가 더 많은 황금알을 한꺼번에 얻으려고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 효율성 추구라면, 거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돌보는 것은 장기 효과성을 위한 활동이라고 할 것이다. 영국의 어느 지주가 가진 거대한 장원의 잔디가 엄청 훌륭하고 멋져 보였던 모양이다. 이에 감탄한 미국인 친구가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멋진 잔디를 가꿀 수가 있었나?” 영국인은 대답했다. “글쎄… 아무래도 토양이 비옥한 게 중요하겠지.” “물론, 그것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당연히 잔디를 잘 돌봐야지. 때 되면 물도 뿌리고 잔디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곳은 옮겨주면서 말이야….” “정말 그것뿐이라고?” 이때 영국인이 무심한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그걸 우리는 지난 5세기 동안 계속해 왔다네….”
1960년대에 태어나 압축적인 경제 고도 성장을 이루는 동안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나는, 뭐든 ‘빨리빨리’ 이루는 것이 미덕이 되고 사람들의 조급함이 하늘을 찌르는 그런 사회의 관점을 나도 모르게 내면화했을 것이다. 그래서 저 영국인의 ‘5세기 동안’이라는 무심한 발언이 시샘이 날 정도로 부러운 거다. 정원의 잔디는커녕, 조금이라도 손이 안 가는 편리한 아파트로 옮겨 다니기 바쁘고, 시간 절약형 각종 제품과 서비스에 기대고 살면서, 아이들 어렸을 적 사진들을 정리하며 추억에 잠길 시간조차 내지 않으면서 늘 새로운 사진만 디카로 찍어대는 이런 삶이 갑자기 되게 서글퍼진다고나 할까. 뭔가 나름의 전통을 지닌 집안을 만들고 싶다면 우선 ‘빨리빨리’라는 단기 효율의 관점에서 벗어나 볼 일이다. 길게 보면서, 당대에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면서, 부모의 정신을 물려줄 일이다. 우리가 시작해서 5세기 동안 유지하게 할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지만. 고현숙 한국리더십센터 대표 helenko@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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