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칼럼] 수능, 학교폭력, 사회적 분위기 때문
임태혁 기자는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청소년 기자입니다. - 편집자 주
지난 13일 수능날, 원주에 살던 한 학생이 죽었다. 영광에 살던 한 학생도 죽었다. 이날뿐이 아니더라도 많은 학생들이 죽음을 선택했다.
왜 그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선택한 것일까?
그 첫번째 이유는 수험생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험생이라는 압박감과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인한, 학생들의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2009년의 청소년자살의 원인中 성적문제로 자살한 학생의 수의 학생 수는 2004년의 학생 수와 비교할 때 4배나 증가하였다.
청소년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가져야 하는 점도 있지만, 아무런 보호체계 없이 과도한 입시경쟁에 떠밀린 청소년들은 말 그대로 무방비상태와 다를 바 없다. 더욱이, 현 정부는 학생들의 경쟁을 더 심화 시키고 우수한 인재들을 육성하겠단 슬로건아래 학습 성취 수준별 이동수업 등을 실시하면서 학생들 간의 격차를 더 크게 만들었다.
물론,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자는 슬로건이 이번 정권에서만 내 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슬로건아래 하위 학생들에 대한 구체적 대비책도 마련되지 않은 마당에 너무 급진적으로 상위의 학생들을 위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느낄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 것이 자살로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둘째, 집단 따돌림이나 폭력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의 수가 많은데. 특히 11월 28일 날 동반자살한 13세 여중생들의 사건은 다시금 자살에 대해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자살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 밝혀지는 ‘자살 이유’와 ‘처한 상황’은 더욱 많은 관심과 대책이 필요함을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다.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아동의 자살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의 자살의 추세 때문이다. 최진실 사건부터 터져나오기 시작한 자살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연이어 유명인사를 모방해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렇게 ‘자살’ 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너무도 가까이 와있었다.
옆의 표는 2009년OECD 국가들의 자살비율과 삶의 만족도를 보여주는 통계이다.[한국 : x=0.4, y=20지점]
이러한 상황은 청소년이나 아동들의 자살을 견인하는 요인 중 사회의 문제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동 자살률도 10대 자살률과 함게 꾸준히 상승해오고 있다. 판단력이 정립되지 않은 아동의 자살은 우리의 인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 suicide rates and subject life satisfaction ⓒ OECD 비단 이번의 문제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이전과는 다르게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더욱더 실효성 있는 대안이 필요한 것이다. 청소년 우울증, 왕따, 입시로 인한 심리적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학생들의 상담, 교내 긍정적인 활동과 같은 추상적인 대비보다는 전국단위 혹은 도 단위로 학교에 심리테스트를 의무 시행하여, 이에 나온 결과를 교육청 - 학교 - 심리치료시설 3자간의 협의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해결해야한다. 그 중 특히 청소년들의 심리적 부담요인은 입시에 관련된 부분이다. 고등학교의 궁극적 목표는 소위 명문대를 보내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또한 명문대에 들어간 숫자에 따라 학교 평판도 결정된다. 입시경쟁의 과열화는 놓고 생각해보면, 하위의 학생들 예를 들어 학습부진아 등의 학생들은 다른 진로를 위한 직업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 대학교나 다른 기관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형태도 좋은 방법이다. (종래의 실시하고 있는 진로탐색설문은 실질적으로 이용되지 않아 문제) 청소년들의 심리치료 명목으로 학교에 심리치료사를 지정해 담당하는 것도 좋다. 사회적인 ‘자살’에 대한 문제는 실제로 대안을 마련하기 어렵다. 우리 청소년들의 자살엔 사회의 역할이 적지 않다. 모범이 되어야 할 사회는 오히려 바르지 못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자면, 사회에서 진정한 공인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자살을 유발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공인들의 자살이었다.도덕적, 윤리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인사들을 공인으로써 대접하는 것을 지양해야하며, 네티즌들 역시 그들을 자살이라는 상황에 처하지 않게 윤리적인 태도를 갖추어야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자살’이 힘든 삶을, 잠시 외면하는 숙면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살’이 끝나지 않는 숙면임을 알아야 한다. 임태혁 기자 ith1992@naver.com
ⓒ2007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 suicide rates and subject life satisfaction ⓒ OECD 비단 이번의 문제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이전과는 다르게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더욱더 실효성 있는 대안이 필요한 것이다. 청소년 우울증, 왕따, 입시로 인한 심리적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학생들의 상담, 교내 긍정적인 활동과 같은 추상적인 대비보다는 전국단위 혹은 도 단위로 학교에 심리테스트를 의무 시행하여, 이에 나온 결과를 교육청 - 학교 - 심리치료시설 3자간의 협의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해결해야한다. 그 중 특히 청소년들의 심리적 부담요인은 입시에 관련된 부분이다. 고등학교의 궁극적 목표는 소위 명문대를 보내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또한 명문대에 들어간 숫자에 따라 학교 평판도 결정된다. 입시경쟁의 과열화는 놓고 생각해보면, 하위의 학생들 예를 들어 학습부진아 등의 학생들은 다른 진로를 위한 직업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 대학교나 다른 기관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형태도 좋은 방법이다. (종래의 실시하고 있는 진로탐색설문은 실질적으로 이용되지 않아 문제) 청소년들의 심리치료 명목으로 학교에 심리치료사를 지정해 담당하는 것도 좋다. 사회적인 ‘자살’에 대한 문제는 실제로 대안을 마련하기 어렵다. 우리 청소년들의 자살엔 사회의 역할이 적지 않다. 모범이 되어야 할 사회는 오히려 바르지 못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자면, 사회에서 진정한 공인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자살을 유발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공인들의 자살이었다.도덕적, 윤리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인사들을 공인으로써 대접하는 것을 지양해야하며, 네티즌들 역시 그들을 자살이라는 상황에 처하지 않게 윤리적인 태도를 갖추어야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자살’이 힘든 삶을, 잠시 외면하는 숙면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살’이 끝나지 않는 숙면임을 알아야 한다. 임태혁 기자 ith1992@naver.com
ⓒ2007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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