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방송평가 규칙 개정, 표현의 자유는 없다
방송평가 규칙 개정 시도, MBC 압박하나
지난해 12월, 인기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해리의 ‘빵꾸똥꾸’가 권고조치를 받았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방송평가 규칙을 바꿔 방송사 재허가 심사에 영향을 미치겠다고 한다. 지금은 보류상태지만, 이것이 개정되면 방송 환경은 급변한다.
방통위는 지금 지상파 방송평가 총점 900점 중에서 최대 600점까지 감정을 받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구체적인 주요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방송평가 규칙은 3년마다 이루어지는 방송사 재허가 심사 방식과 배점 등을 규정하고 있다. 방송평가 결과는 재허가 심사에서 50%가 반영된다. 방통위 측은 이번 개정안을 두고 “규제 강화가 아니라 자체 심의를 강화하는 차원”이라며 “현 방송 수준이라면 마이너스 점수는 10∼20점 정도가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개정안에 따르면 그간 방송사 재허가에서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방통심의위 등 ‘심의 기구’의 영향력이 대폭 커질 수밖에 없다.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방송사는 사업권을 반납하고 문을 닫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권고 조치를 받은 해리의 ‘빵꾸똥꾸’도 점수로 환산돼 MBC를 압박할 수 있다. 권고 또는 의견 제시는 위반 정도가 경미해 제재 조치의 필요성이 없다고 인정해왔으나, 앞으로는 평가 점수에까지 들어가는 것이다. ‘국민화합 관련 공익 프로그램’과 같은 모호한 규정은 자칫 정권에 유리한 방송 편성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돌아온 상실의 시대
일찍이 방통위는 <무한도전>의 ‘돌+I’를 ‘성격이나 외모를 부정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권고한 바 있다. 정권 풍자적인 자막, 폭력묘사 등도 권고의 대상이 되었고, PD수첩은 광우병 보도 관련 시청자 사과에 이어 2월 1일 방영된 ‘4대강과 민생 예산’ 방송에선 경징계를 받았다. 엄기영 MBC사장은 사퇴했고 방통위의 심의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회적 발언을 했던 방송인들(윤도현, 손석희 교수, 김제동)은 전부 떠났고 <파스타> 등 갖가지 드라마들은 온통 선정성, 폭력성 등을 이유로 여기저기 경징계 조치를 받았다. 복고다. 아이돌그룹의 무대 위 말고도, 심의와 언론에 복고 바람이 불고 있다.
방송평가 규칙이 저대로 개정된다면 MBC는 당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또한 심의기구의 눈치를 보며 같은 프로그램은 점차 브라운관에서 사라지고, 가산점을 부여받을 수 있는, 현 정권에 유리한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그 자리를 메울 지도 모른다. 설마, 정말 7080시대도 아니고 방송이 심사 기구들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될까 싶긴 하다만은, 자고 일어난 사이 통과됐던 미디어법을 생각하면 아주 가능성이 없진 않다.
빵꾸똥꾸같은 방송통신위원회
21세기다.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과서에선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표현의 자유와 다원화 사회를 강조하고, 인터넷에서는 매의 눈을 가진 네티즌들이 오늘도 포털 사이트를 뒤지고 있다. 그런데 방통위는 방송과 언론을 옛날로 회귀시키려 하고 있다. ‘돼지 눈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엔 부처님만 보인다’고 했다. 방통위는 오늘도 ‘당신 음식이 섹스보다 낫다’는 대사에서 한 단어만 주의깊게 보고, ‘빵꾸똥꾸’를 부르짖는 해리가 왜 빵꾸똥꾸를 부르짖고 관심을 받고 싶어했는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버릇없다고 권고 조치를 내린다. 유치찬란하다. 어쩌면 해리의 눈에 제일 빵꾸똥꾸인 어른들은 방통위가 아닐까.
편지수 기자 chick714@naver.com
ⓒ2007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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