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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히틀러의 주먹과 간디의 가슴

등록 2010-02-28 15:38수정 2010-02-28 15:45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22. 왕자와 거지, 가난의 두 얼굴
23. 폭력과 비폭력, 과연 가슴은 주먹보다 힘이 셀까?
24. 논쟁에서 이기는 39가지 방법

<간디자서전>간디 지음, 함석헌 옮김/한길사
<히틀러 여비서와 함께한 마지막 3년>트라우들 융에 지음, 문은숙 옮김/한국경제신문사

〈간디자서전〉, 〈히틀러 여비서와 함께한 마지막 3년〉
〈간디자서전〉, 〈히틀러 여비서와 함께한 마지막 3년〉

간디와 히틀러는 둘 다 채식주의자였다. ‘초식남’들이 그렇듯, 둘은 친절하고 배려 깊었다. 적어도 비서들이 떠올리는 히틀러는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채식을 했던 이유는 달랐다. 히틀러는 ‘속이 불편해서’ 채소만 먹기를 고집했다.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다. 당시에는 고기를 먹지 않으면 허약해진다고 믿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요리사는 히틀러의 건강을 걱정해서 몰래 채소수프에 고깃국물을 부어넣기도 했다.

간디가 채식을 했던 까닭은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쓸데없는 욕심과 격한 감정은 육식에서부터 온다고 믿었다. 마음을 다스리려면 식탐부터 누르고 길들일 줄 알아야 한다. 채식은 간디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힌두교도들은 원래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오래 공부한 간디가 고기를 입에 대지 않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그의 시대에는 서양인들처럼 고기를 먹어야 ‘문명개화’할 수 있다고 믿던 때였다. 그럼에도 간디는 힌두교도의 식습관을 더욱더 철저하게 지켰다.

히틀러는 ‘속이 안 좋아 어쩔 수 없이 채식남이 된 육식남’이라 하겠다. 반면, 간디는 ‘육식남을 거부한 채식남’이라 할 만하다. 이런 차이는 그들이 펼친 정치 활동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히틀러는 육식동물처럼 세상을 바라보았다. 자연 속에서는 강한 놈이 약한 놈들을 잡아먹게 되어 있다. 이는 자연의 법칙이라 할 만하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 세상도 마찬가지여야 옳다. 그렇다면 약한 것들이 강한 놈을 누르고 있는 모습을 정상이라 할 수 있을까? 인간 세상에서는 덜떨어진 약자들이 뛰어난 사람들의 멱살을 쥐고 흔든다. 왜 그럴까? ‘민주주의’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힘 약한 이들이 머릿수만 믿고 목청을 높이며 뛰어난 사람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히틀러는 ‘힘이 곧 정의’가 되는 세상을 꿈꿨다. 독일인들은 누구보다도 강한 민족이어야 했다. 그래야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독일인들은 ‘생활공간’(lebensraum)을 넓혀야 했다. 남들보다 너른 땅과 자원을 차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들이 가진 것을 순순하게 독일인들에게 내줄 리는 없다. 그러니 어서 힘을 길러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한다. 죄책감은 가질 필요가 없다. 자연 속에서 모든 일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던가.

간디는 정반대의 논리를 따랐다. 그는 숱한 모욕을 견뎠던 사람이다. 잘나가는 변호사였음에도, 그는 기차 1등칸에서 쫓겨났다. 심지어는 따귀를 맞기까지 했다. 백인인 마부의 발밑에 앉으라는 말을 듣지 않았던 탓이었다.

간디는 묵묵히 맞으며 견딜 뿐이었다. 심지어 자기를 괴롭힌 이들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간디는 폭력을 휘두른 이들은 ‘아직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라며 되레 상대방 편을 든다. 모르고 잘못을 했다면 무조건 다그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먼저 힘으로 남을 누르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일깨워줘야 한다.

묵묵히 매를 맞는 간디를 편들어준 사람들은 오히려 인도를 억누르고 있던 영국인들이었다. 깬 사람들은 간디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옳지 않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는 전혀 이상한 모습이 아니다. 우리의 양심은 약자를 잔인하게 다루는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 이러한 진리를 일깨우기만 하면 인간 세상에서 사랑과 용서는 폭력을 이기게 되어 있다.

간디가 평생 펼친 ‘아힘사’(ahimsa)는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아힘사란 ‘비폭력 저항 운동’을 말한다. 그는 옳지 않은 세금은 내지 않았고 몽둥이로 때려도 묵묵하게 맞기만 했으며 감옥에 집어넣어도 맞서지 않고 조용히 끌려갔다. 간디는 늘 “수모를 견디고 필요할 때는 적을 도울 준비까지 되어 있었다.”

물론, 당하다 보면 우리 마음속 짐승은 으르렁대기 시작할 테다. 상대를 물어뜯으라고 말이다. 그러나 짐승의 목소리를 따르면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고 폭력과 상처는 끊임없이 되풀이될 뿐이다.

그는 “집요하게 거부하되 폭력 없이 공개적으로 하라.”고 충고한다. 맞서지 않는다면 괴롭히던 상대방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게 되어 있다. 억울하게 당하는 이들은 사람들의 공분(公憤)과 동정을 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폭력을 휘두름으로써 내게 축복을 내린 셈이다. 그들 스스로 정의를 알린 셈이다.”

간디의 비폭력은 결국 지배자인 영국인들마저도 감동시켰다. 1931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간디는 국빈(國賓) 같은 대접을 받았다. 영국인들은 그를 존경했다. 왕이 간디를 초대하여 차를 나눌 정도였다. 간디는 자신의 자서전 제목을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라고 붙였다. 그는 ‘진리 실험’은 성공을 거두었다. 비폭력이 폭력보다도 더 설득력 있고 효과적인 승리의 방법임을 보여준 셈이다.

그렇다면 히틀러는 왜 질 수밖에 없었을까? 간디의 성공은 영혼의 승리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욕망을 북돋기는 쉽다. 그러나 이를 이겨내기는 어렵다. 히틀러는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겼다. 힘을 키우면 더 많은 땅과 재산을 움켜쥘 수 있다며 설득했다. 간디는 거꾸로 욕망을 줄이고 철저하게 다스리라고 충고한다.

탐욕에 휘둘린 마음은 앞뒤 안 가리고 욕심을 채우려 내달린다. 그러나 욕망을 줄이면 세상을 보는 눈은 더 정확해진다. 우리의 경제는 욕심을 키워야 굴러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소비심리’가 살아나야 살림살이가 나아진다지 않던가. 광고문구들은 더 좋은 물건, 더 나은 생활을 하라며 바람을 불어넣는다. 이렇게 부풀어진 욕망은 나에게 이익만 준다면 폭력을 보고서도 눈을 감게 만든다. 힘없는 나라에서 자원을 빼앗기 위해 벌어지고 있는 다툼들이 관심을 끈 적이 얼마나 되는지 떠올려 보라.

역사에서 욕심이 금욕을 이긴 적은 없었다. 간디가 ‘진리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는 여전히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진리’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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