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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논쟁 이겼다고 진리 아니다

등록 2010-03-07 15:54수정 2010-03-07 15:55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23. 폭력과 비폭력, 과연 가슴은 주먹보다 힘이 셀까?
24. 논쟁에서 이기는 39가지 방법
25. 나는 고발한다. 생각의 함정들을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600쪽이 넘는다. 게다가 정교한 논리로 짜여 있어 읽기도 버겁다. 유명한 학자들은 이 점을 요긴하게 이용했다. 그들은 칸트의 주장에 맞서려 하지 않았다. 그냥 “무슨 소리인지 도저히 못 알아듣겠다.”고만 했을 뿐이었다. 이 말은 그대로 ‘칸트에 대한 비판’이 되었다. 가장 뛰어나다는 학자도 못 알아듣는 주장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믿고 칸트의 책을 덮어버렸다. <순수이성비판>이 한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이유다.

하지만 잘 알려진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를 제대로 아는 경우는 드물다. ‘자기 일을 철저하게 연구하는 이들은 남을 가르칠 시간이 없는’ 탓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스스로 궁리하기보다 그냥 믿으려고만 하며 생각하기보다 죽기가 더 쉬울 만큼’ 남의 말을 넙죽 받아들인다. 설익은 전문가들이 설레발치는 이유다.

게다가 사람들에게는 논리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말들이 더 잘 먹혀든다. 증기 기관차에 열광하는 농장 주인한테는 이렇게 설득해 보라. “증기 기관차가 많아지면 당신이 기르는 말들이 모두 쓸모없어질 거요.” 주인의 태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바뀌어 버릴 테다. “근거를 들어 지성에 호소하지 말고 욕심이 뭔지 알아내어 의지에 호소하라.”는 말은 이런 의미다.

설득하다 보면 입심이 달릴 때도 있다. 그래도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야 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짐짓 물러서기 마련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논리를 펴건 그 속에 뭔가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 믿는 탓이다.

이마저도 통하지 않으면 상대를 화나게 하라. 인신공격, 모독, 무례 등으로 말이다. 화가 나면 마음속 짐승이 날뛰기 시작한다. 판단은 흐려지고 논리는 흐트러진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끝까지 밀어붙어야 한다. 자살한 사람을 이해해주려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그러면 왜 당신은 지금 당장 목을 매달지 않소?”라며 내질러 버리는 식으로 말이다. 강하게 말을 잘라 버리면 상대의 말문은 막히고 만다.


그래도 버거운 상태라면 아예 주제를 바꿔 버려라. 나에게 불리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새로운 논쟁거리를 찾아보라.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일러주는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들이다.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쇼펜하우어 지음, 김재혁 옮김 
고려대학교 출판부
<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
안광복 풀어씀
사계절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쇼펜하우어 지음, 김재혁 옮김 고려대학교 출판부 <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 안광복 풀어씀 사계절
그는 자신의 방법을 ‘논쟁적 토론술'(Eristic Dialectic)이라 부른다. 논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검투사들이 싸울 때 누가 옳은지가 중요하던가. 겨루기에서는 칼로 찌르고 방패로 막는 기술이 필요할 뿐이다. 논쟁은 말로 하는 검투사 시합과 같다. 그러니 잘잘못을 가린다는 마음으로 토론에 나섰다가는 낭패 보기 일쑤다. 상대를 이기는 기술은 진리를 밝히는 방법과는 다르다.

하긴, 목소리 클수록 큰 몫을 챙기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대부분 꼼꼼하게 이치를 따지며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가뜩이나 머리 복잡한 세상을 사는 우리로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의 판단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늘 여론에 떠밀려 다닌다. 쇼펜하우어의 억지논리(?)를 뿌리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면 쇼펜하우어의 방법을 가장 요긴하게 쓸 사람은 누구일까? 훨씬 전에 살았던 소크라테스가 쇼펜하우어의 기술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소크라테스는 논리가 통하기 어려운 처지에서 재판을 받았다. 재판관은 무려 501명. 게다가 재판소는 시장 옆에 있었다. 조근조근 논리를 펼친다 해도 재판관들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쇼펜하우어 식으로 권위를 앞세워 보면 어땠을까? 소크라테스의 친구 가운데는 부자도, 권력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치들도 있었다. 아니면 고발한 사람들의 감정을 긁어놓아 말을 꼬이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웅성거리는 분위기에서 판단은 항상 막연한 느낌 이상을 넘지 못한다. 고발자들이 당황하는 모습만 이끌어내도 효과가 있었을 테다. 고발자들의 논리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전혀 술수를 부리지 않았다. 그는 아예 처음부터 “재판관의 역할은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고, 법정의 연설자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곤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고발자들에게 맞섰다.

그는 자신이 사형으로 몰린 이유를 당시에 잘나가던 정치가, 시인, 장인(匠人)들을 화나게 했다는 데서 찾았다. 소크라테스는 쇼펜하우어처럼 논쟁에서 이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이들에게 뭐가 진짜 옳고 현명한지를 물었을 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권위 있는 이들 앞에서는 알아서 기기 마련이다. 상대가 머뭇거리는 듯싶으면 알아서 질문을 그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어린아이처럼 꼬치꼬치 묻고 또 물었다.

이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쇼펜하우어와 통한다. 알려진 사람들이라 해서 자기 분야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자신의 무식이 드러나는데도 침착하기란 쉽지 않은 법, 소크라테스는 금세 ‘공공의 적’이 되었다. 권력자에게는 이익에 신경 쓰지 않고 진실을 캐묻는 자들이 가장 위험하지 않던가.

법정에서도 그는 되레 재판관들에게 큰소리쳤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제대로 따져보라고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당연히’ 사형을 당했다. 예나 지금이나 진실이 이익을 이기기는 어렵나 보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늘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주변은 늘 친구들로 북적였다. 반면, 쇼펜하우어는 괴팍하기로 이름 높았다. 식당에 갈 때면 늘 두 자리를 예약했단다. 자기 앞자리에 누구도 못 앉도록 하기 위해서라나. 그렇게 논쟁의 달인은 외롭게 세상을 살았다.

무엇이 진리인지를 가리는 일과 논쟁에서 이기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러나 논쟁에서의 승리와 인생의 행복도 다른 문제다. 세상에는 논쟁에서는 이기지만 인생에서는 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쇼펜하우어의 논쟁 기술과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견주어 볼 일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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