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45. 영어는 왜 공용어가 되었을까? - 정글 속 언어들의 생존게임
46. 잡식동물의 딜레마, 튼실한 영혼을 만드는 건강한 식사법
47. 선현들의 독서법으로 진단한 문자문명의 위기 <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다른세상
<패스트푸드의 제국>에릭 슐로서 지음, 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
기독교 <성경>을 보면, 옛 제사장들은 가축을 죽이는 일을 한 사람이 도맡아 하지 않았다. 누가 짐승을 잡을지는 그때그때 제비를 뽑아 정했다. 하지만 도축(屠畜)은 기술이 꽤 필요한 일이다. 솜씨 좋은 이가 가축을 잡도록 맡기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지만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의 생각은 다르다. 뭐든 익숙해지면 고민은 사라지는 법이다. 죽이는 일이 손에 익으면 짐승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옅어진다. 도축장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은 잔인해지기 쉽다. <성경>에서 한 사람이 계속 살생(殺生)을 하지 못하게 한 까닭이다.
하지만 우리는 잔인한 일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닭고기들 대부분은 불행한 닭이었다. 날개를 못 펼 만큼 비좁은 곳에서 햇볕도 쬐지 못하면서 70일을 살 뿐이다. 돼지의 경우는 더하다. 공장식 농장(factory farm)에서는 어린 돼지가 일찍 젖을 떼게 한다. 사료를 먹어야 몸무게가 빨리 불어나기 때문이다. 젖을 충분히 빨지 못한 돼지들은 평생 물고 빨고 싶은 욕구를 품게 된다. 그래서 앞에 있는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으려고 덤빈다고 한다.
더럽고 좁은 곳에 갇힌 돼지들은 꼬리를 물려도 그냥 그대로 있을 뿐이다. 우울증에 빠진 나머지 아예 맞설 생각도 안 하는 탓이다. 그래서 공장식 농장에서는 돼지의 꼬리를 잘라 버린다. 그러나 완전히 밑동까지 자르지는 않는다. 물리면 지독하게 아플 만큼은 남겨 놓는다고 한다. 꼬리에 상처가 나면 병에 걸리기 쉽다. 그러니 아픔을 제대로 느끼도록 만들어 놓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상 식탁이 가장 풍성한 시대에 산다. 하지만 사람들은 먹을거리의 가격에만 신경을 쓸 뿐, 공장식 농장의 잔인함에는 좀처럼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는 값싼 먹을거리를 통해 잔혹함에 익숙해지고 있다. 잔인하기로는 논과 밭에서 나는 먹을거리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자연에서는 한 식물이 너른 벌판 전체를 뒤덮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초원에는 여러 풀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삭을 내는 식물로 초원을 가득 메웠다. 자연에 어긋나게 땅을 이용하면 늘 탈이 나기 마련이다. 병충해는 그래서 무섭다. 벼에 생기는 잎도열병을 예로 들어보자. 자연 상태에서는 잎도열병이 넓게 퍼지기 어렵다. 벼들이 드문드문 있는 탓이다. 그러나 논만 끝없이 펼쳐진 곳이라면 어떨까? 잎도열병은 순식간에 논 전체로 번져 버린다. 그러면 병을 막기 위해 온갖 농약이 등장할 테다. 가축을 키우는 농장도 마찬가지다. 규모가 큰 닭 농장의 직원들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흰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장갑에 입마개까지 한다. 바깥에서 옮겨온 병균이 닭에게 옮겨갈까 두려워서다. 자연 상태의 닭들이 과연 이토록 병에 약한 짐승이었던가? 대규모 농업은 땅과 가축을 점점 황폐하게 만든다. 그러나 ‘산업농업’은 자연과 동떨어진 또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큰 농장에는 농약과 사료를 대어 이익을 내는 회사들이 붙어 있다. 그 뒤에는 농약과 사료 회사에 장비를 파는 기업이 있다. 산업농업의 생태계는 페르시아만에서 공장을 돌릴 석유를 끌어올리는 회사들에까지 나아간다. 농산물 판매에서도 운송업자와 보관업자, 대규모 시장들이 나름의 생태계를 이룬다. 양상추 1파운드는 80칼로리 정도의 에너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채소를 기르고, 냉장고에 보관하고, 도시까지 옮겨오는 데는 4600칼로리의 석유가 필요하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큰 셈이다. 대규모 농장 대신, ‘지역농업’을 키우면 어떨까? 대규모 농장은 석유를 태워야만 굴러갈 수 있다. 멀리 떨어진 시장까지 농산물을 나르고, 비료 등 필요한 물건을 구해 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처 시장에만 물건을 파는 지역농장은 덩치가 커야 할 필요가 없다. 널찍한 땅에 하나의 작물이나 가축만 길렀다가는 되레 망해버릴 테다. 많은 생산물을 팔 곳이 마뜩잖기 때문이다. 지역농장에서는 시장에 맞추어 좁은 땅에 여러 작물과 가축을 옹기종기 가꿔야 한다. 원래 농사란 지혜가 필요한 일이다. 농부는 경험을 통해 자기 땅에 무엇이 잘 자라는지, 어떤 가축이 어울리는지를 알아간다. 그럴수록 땅에는 어울리는 작물과 가축이 늘어간다. 이렇게 농업은 자연 생태계와 균형을 잡아간다. 그러나 지역농장이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다. 자연 생태계가 뿌리를 내릴수록 ‘산업농업의 생태계’는 무너지기 때문이다. 땅이 튼튼해져서 농부가 농약과 비료를 많이 쓰지 않는다면 이를 대던 회사들은 어떻게 될까? 농산품을 파는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로서는 100에이커의 농장 열 개보다, 1000에이커의 농장 하나와 거래하는 편이 낫다. 사고파는 데 드는 비용과 노력이 줄어드는 탓이다. ‘산업 생태계’를 이루는 큰 농장과 기업들로서는 지역농업이 달가울 리 없다. 코알라와 같은 채식동물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유칼립투스 잎처럼 생긴 것만 먹기 때문이다. 육식동물들도 사냥한 짐승을 먹으면 된다. 하지만 인간 같은 잡식동물은 다르다.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으면 무엇을 먹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늘어난다. 이른바 ‘잡식동물의 딜레마’다. 우리가 무엇을 먹을지를 선택할 때마다 농촌의 풍경은 달라질 테다. 지금처럼 싼 가격만 좇아 대규모 농장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고르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언젠가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값싼 가격은 언제나 ‘보다 중요한 것들’을 감추고 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난이도 수준-고2~고3] 45. 영어는 왜 공용어가 되었을까? - 정글 속 언어들의 생존게임
46. 잡식동물의 딜레마, 튼실한 영혼을 만드는 건강한 식사법
47. 선현들의 독서법으로 진단한 문자문명의 위기 <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다른세상
<패스트푸드의 제국>에릭 슐로서 지음, 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
〈잡식동물의 딜레마〉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다른세상,〈패스트푸드의 제국〉에릭 슐로서 지음, 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
우리는 역사상 식탁이 가장 풍성한 시대에 산다. 하지만 사람들은 먹을거리의 가격에만 신경을 쓸 뿐, 공장식 농장의 잔인함에는 좀처럼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는 값싼 먹을거리를 통해 잔혹함에 익숙해지고 있다. 잔인하기로는 논과 밭에서 나는 먹을거리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자연에서는 한 식물이 너른 벌판 전체를 뒤덮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초원에는 여러 풀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삭을 내는 식물로 초원을 가득 메웠다. 자연에 어긋나게 땅을 이용하면 늘 탈이 나기 마련이다. 병충해는 그래서 무섭다. 벼에 생기는 잎도열병을 예로 들어보자. 자연 상태에서는 잎도열병이 넓게 퍼지기 어렵다. 벼들이 드문드문 있는 탓이다. 그러나 논만 끝없이 펼쳐진 곳이라면 어떨까? 잎도열병은 순식간에 논 전체로 번져 버린다. 그러면 병을 막기 위해 온갖 농약이 등장할 테다. 가축을 키우는 농장도 마찬가지다. 규모가 큰 닭 농장의 직원들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흰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장갑에 입마개까지 한다. 바깥에서 옮겨온 병균이 닭에게 옮겨갈까 두려워서다. 자연 상태의 닭들이 과연 이토록 병에 약한 짐승이었던가? 대규모 농업은 땅과 가축을 점점 황폐하게 만든다. 그러나 ‘산업농업’은 자연과 동떨어진 또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큰 농장에는 농약과 사료를 대어 이익을 내는 회사들이 붙어 있다. 그 뒤에는 농약과 사료 회사에 장비를 파는 기업이 있다. 산업농업의 생태계는 페르시아만에서 공장을 돌릴 석유를 끌어올리는 회사들에까지 나아간다. 농산물 판매에서도 운송업자와 보관업자, 대규모 시장들이 나름의 생태계를 이룬다. 양상추 1파운드는 80칼로리 정도의 에너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채소를 기르고, 냉장고에 보관하고, 도시까지 옮겨오는 데는 4600칼로리의 석유가 필요하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큰 셈이다. 대규모 농장 대신, ‘지역농업’을 키우면 어떨까? 대규모 농장은 석유를 태워야만 굴러갈 수 있다. 멀리 떨어진 시장까지 농산물을 나르고, 비료 등 필요한 물건을 구해 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처 시장에만 물건을 파는 지역농장은 덩치가 커야 할 필요가 없다. 널찍한 땅에 하나의 작물이나 가축만 길렀다가는 되레 망해버릴 테다. 많은 생산물을 팔 곳이 마뜩잖기 때문이다. 지역농장에서는 시장에 맞추어 좁은 땅에 여러 작물과 가축을 옹기종기 가꿔야 한다. 원래 농사란 지혜가 필요한 일이다. 농부는 경험을 통해 자기 땅에 무엇이 잘 자라는지, 어떤 가축이 어울리는지를 알아간다. 그럴수록 땅에는 어울리는 작물과 가축이 늘어간다. 이렇게 농업은 자연 생태계와 균형을 잡아간다. 그러나 지역농장이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다. 자연 생태계가 뿌리를 내릴수록 ‘산업농업의 생태계’는 무너지기 때문이다. 땅이 튼튼해져서 농부가 농약과 비료를 많이 쓰지 않는다면 이를 대던 회사들은 어떻게 될까? 농산품을 파는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로서는 100에이커의 농장 열 개보다, 1000에이커의 농장 하나와 거래하는 편이 낫다. 사고파는 데 드는 비용과 노력이 줄어드는 탓이다. ‘산업 생태계’를 이루는 큰 농장과 기업들로서는 지역농업이 달가울 리 없다. 코알라와 같은 채식동물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유칼립투스 잎처럼 생긴 것만 먹기 때문이다. 육식동물들도 사냥한 짐승을 먹으면 된다. 하지만 인간 같은 잡식동물은 다르다.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으면 무엇을 먹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늘어난다. 이른바 ‘잡식동물의 딜레마’다. 우리가 무엇을 먹을지를 선택할 때마다 농촌의 풍경은 달라질 테다. 지금처럼 싼 가격만 좇아 대규모 농장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고르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언젠가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값싼 가격은 언제나 ‘보다 중요한 것들’을 감추고 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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