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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터무니없는 ‘말장난’을 찬양함

등록 2010-10-04 09:52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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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23
[난이도 수준-중2~고1]

“대통령선거의 반대말은?”

밥상머리에서 초딩 은서가 물었다. 생뚱맞은 질문에 어이없어하는데, 중딩 준석이 잽싸게 끼어든다. “대통령 앉은 거.” “딩동댕동~.”

춥다. 썰렁해서다. 그래도 아이들은 좋기만 하단다. 이른바 ‘난센스 퀴즈’다. 두 아이는 서너 달 전 ‘수수께끼 어쩌구’ 하는 제목의 책을 샀다. 수시로 끼고 다니며 정답 맞히기 게임을 했다. “주머니는 주머니인데 걸어다니는 주머니는?” “아주머니.” “사과가 방귀를 뀌면?” “풋사과.” “윗사람에게 아부를 잘하는 사람이 믿는 신은?” “굽신굽신.” 뜯어보면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무시하진 마시라. 오늘은 그 터무니없는 ‘말장난’을 찬양하고자 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글을 갖고 놀아보자. 음절과 낱말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주물럭거리면서 현란한 솜씨로 칼질을 하는 요리사를 상상해 본다. 가장 기본적인 요리방법은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만지작거리는 데 있다. 하나의 낱말엔 오직 하나의 뜻만 있지 않다. 가령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은가. “‘눈’이 내리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좋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 ‘배’에서 멀미를 하면 ‘배’속의 소화물들이 역류하는데 ‘배’를 먹는다고 효과가 있지는 않다. …… ‘말’을 잘 타는 사람들은 놈들과 눈빛만으로도 ‘말’을 한다니 신기하구나.” 이러한 동음이의어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나는 동료들한테 ‘인사’를 잘하는데, 사장님은 ‘인사’철만 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녀의 ‘소원’은 싫어하는 상사와의 관계가 제발 ‘소원’해지는 거란다.” 이렇게 놀다 보면 국어 실력이 쑥쑥 늘 것 같다. 낯선 단어들도 재미있게 익히게 해주는 동음이의어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분명히 음절은 다른데, 발음이 유사한 경우도 많다. “‘가치’를 꼭 ‘같이’ 구현해야 하나? …… 저 ‘바람’ 속에 ‘발암’물질은 없겠지? …… 모든 ‘인류’가 ‘일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외국어와 발음이 같아 기묘한 효과를 주는 말들도 있다. 가령 무당이 ‘굿판 홍보’를 위해 이런 광고문을 쓴다고 가정해 본다. “우리 굿, 아주 Good입니다요.” 그러고 보니 어느 개그프로그램에서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네가 말한 중학교가 로딩중은 아니겠지?”

유치하다고 나무라지 마시라. 말장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다. 누군가는 이를 위해 온종일 머리를 쥐어짜기도 한다. 얼마 전에 잡지에서 본 가구회사 광고를 예로 들어보자. “이민호에게 장인이 생겼다.” 카피에 궁금증이 일었다. “장인? 부인의 아버지? 이민호가 결혼하나?” 그 ‘장인’은 예술가를 이르는 ‘장인’(匠人)이었다. 장인정신으로 만든 가구라는 메시지를 돋보이게 하려는 작전이었다.

말 나온 김에 나도 말장난을 해본다. 한 달 전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보면서 “오리 꽥꽥”이라 외치는 유치원생들의 귀여운 행렬이 생각났다. 고위 공직에 오르는 어른들과 관련해 수많은 ‘오리’들이 스쳐지나간 거다. 음, 각종 의혹에 관해 ‘오리발’을 내밀다니. 강물에 빠져도 가라앉지 않겠군. 청문회 결과 ‘탐관오리’로 밝혀지면 ‘오리’(五里)를 오리걸음으로 걷게 해야 해. 무사히 통과한 양반들은 ‘앗싸가~오리’라고 환호할까?


마냥 이렇게 까불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곧이곧대로 쓰기보다, 넉넉한 여유와 엉뚱한 유머의 기술도 익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쓰는 자에게, 웃음은 중요한 무기다.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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