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우리말 논술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22 /
[난이도 수준-중2~고1] 헐~, 이라는 감탄사는 바람직한가.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한 방송사 프로듀서한테서 “작가들이 ‘헐’이라고 써오는 대사는 무조건 지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저속한 말이 언어문화를 더럽힌다고 보기 때문이다. 쩐다, 는 또 어떤가. 어린이책을 만드는 한 출판 편집자는 학습만화에 실린 “쩐다”라는 대사 때문에 학부모 독자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잘못된 은어와 비속어를 사용해도 좋다고 용인해 주는 꼴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오늘은 ‘비공식 언어’를 변호하고자 한다. 비공식 언어란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다. ‘(언어)파괴자’라는 공격을 당하기도 하지만, 널리 퍼질 경우엔 인터넷 오픈사전에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당근이지”라는 말도 그렇다. 여기서 당근은 채소의 이름이 아니다. “당연하다”는 뜻이다. 내 기억으로는 이 말이 처음 확산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중반이었다. 아직도 너나없이 쓰는 걸 보면 수명이 꽤 길다. ‘당근’은 얌전한 수준이다. 즐, 뷁, 구려, 므훗, 베프, 캐안습, 스겜, 피방, 깜놀, 여병추 등등 파격적인 신조어들이 어느덧 언어공간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용어들에 관대하다. '즐'이나 '뷁'이나 '므훗' 같은 경우엔 어떤 기대감이나 분노, 만족감을 드러내는 상황을 절묘하게 형상화했다. '안습'도 마찬가지다. 발음마저 촉촉한, 기가 막힌 조어다. 문제는 이러한 용어를 공식적인 글에 넣어도 되느냐다. 나는 상관없다는 쪽이다. 다만 어떤 맥락에서 쓰였는지가 중요하다. 영화 속의 야한 장면처럼 말이다. 전체 맥락과 분위기를 설명하는 도구로 등장하는 뽀뽀 장면이라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불쑥불쑥 무작정 튀어나오면 난감하다. 앞에서 예로 든 "헐~"이나 "쩐다"도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 아이들의 문화와 풍경을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면 넣을 수도 있다.
부끄럽지만, 나는 공식적인 글에 '헐~'이나 'ㅋㅋ'처럼 이상한(!) 용어를 쓴 적이 있다. 문체의 자유로움을 허용하는 말랑말랑한 지면이었기에 가능했다. 정색을 하고 시회문제를 비판하는 신문의 칼럼이었다면 시도조차 안 했을 거다. "경박하다"는 욕을 먹을 게 뻔해서다. 아이들 역시 논설문 같은 글에 신조어를 구겨넣는다면 꼴이 우스워지리라. 솔직한 일상을 드러내는 생활글이라면 '베프'나 '깜놀'따위가 무슨 대수랴.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꼭 '국적불명의 언어'라는 비판을 하는 분들이 있다. 그다음에 나오는 대안은 '언어순화교육 시급'이다. 이럴 때 쓰라는 말이 있다. "쩐다~."언어와 관련해 국적을 염불처럼 외우는 일은 촌스럽다. 꼭 '순수국산'만이 아름답고 좋다는 견해를 대할 때마다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헐~."(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 '언어순화교육'이란 말을 접하면 '삼청교육'이라는 말부터 떠오른다. '순화'라는 표현…음…(정말 죄송한데) "구리다 흑흑." 각급 학교에서 '신조어 창작 콘테스트'를 여는 상상을 해본다. 새로운 용어를 창조하려면 창의성이 필요하다. 단어를 빚고 조각할 줄 아는 감수성도 갖춰야 한다. 압축적이면서도 기발하고 재밌는 말을 발명하면서 놀아보자. 세종대왕이 만든 말만 쓰면 허기지다. 한글에 한자어도, 영어도, 일어도, 불어도 섞어보자. 말의 유희다.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한 말도 있다. "즐~."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난이도 수준-중2~고1] 헐~, 이라는 감탄사는 바람직한가.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한 방송사 프로듀서한테서 “작가들이 ‘헐’이라고 써오는 대사는 무조건 지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저속한 말이 언어문화를 더럽힌다고 보기 때문이다. 쩐다, 는 또 어떤가. 어린이책을 만드는 한 출판 편집자는 학습만화에 실린 “쩐다”라는 대사 때문에 학부모 독자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잘못된 은어와 비속어를 사용해도 좋다고 용인해 주는 꼴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오늘은 ‘비공식 언어’를 변호하고자 한다. 비공식 언어란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다. ‘(언어)파괴자’라는 공격을 당하기도 하지만, 널리 퍼질 경우엔 인터넷 오픈사전에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당근이지”라는 말도 그렇다. 여기서 당근은 채소의 이름이 아니다. “당연하다”는 뜻이다. 내 기억으로는 이 말이 처음 확산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중반이었다. 아직도 너나없이 쓰는 걸 보면 수명이 꽤 길다. ‘당근’은 얌전한 수준이다. 즐, 뷁, 구려, 므훗, 베프, 캐안습, 스겜, 피방, 깜놀, 여병추 등등 파격적인 신조어들이 어느덧 언어공간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용어들에 관대하다. '즐'이나 '뷁'이나 '므훗' 같은 경우엔 어떤 기대감이나 분노, 만족감을 드러내는 상황을 절묘하게 형상화했다. '안습'도 마찬가지다. 발음마저 촉촉한, 기가 막힌 조어다. 문제는 이러한 용어를 공식적인 글에 넣어도 되느냐다. 나는 상관없다는 쪽이다. 다만 어떤 맥락에서 쓰였는지가 중요하다. 영화 속의 야한 장면처럼 말이다. 전체 맥락과 분위기를 설명하는 도구로 등장하는 뽀뽀 장면이라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불쑥불쑥 무작정 튀어나오면 난감하다. 앞에서 예로 든 "헐~"이나 "쩐다"도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 아이들의 문화와 풍경을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면 넣을 수도 있다.
부끄럽지만, 나는 공식적인 글에 '헐~'이나 'ㅋㅋ'처럼 이상한(!) 용어를 쓴 적이 있다. 문체의 자유로움을 허용하는 말랑말랑한 지면이었기에 가능했다. 정색을 하고 시회문제를 비판하는 신문의 칼럼이었다면 시도조차 안 했을 거다. "경박하다"는 욕을 먹을 게 뻔해서다. 아이들 역시 논설문 같은 글에 신조어를 구겨넣는다면 꼴이 우스워지리라. 솔직한 일상을 드러내는 생활글이라면 '베프'나 '깜놀'따위가 무슨 대수랴.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꼭 '국적불명의 언어'라는 비판을 하는 분들이 있다. 그다음에 나오는 대안은 '언어순화교육 시급'이다. 이럴 때 쓰라는 말이 있다. "쩐다~."언어와 관련해 국적을 염불처럼 외우는 일은 촌스럽다. 꼭 '순수국산'만이 아름답고 좋다는 견해를 대할 때마다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헐~."(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 '언어순화교육'이란 말을 접하면 '삼청교육'이라는 말부터 떠오른다. '순화'라는 표현…음…(정말 죄송한데) "구리다 흑흑." 각급 학교에서 '신조어 창작 콘테스트'를 여는 상상을 해본다. 새로운 용어를 창조하려면 창의성이 필요하다. 단어를 빚고 조각할 줄 아는 감수성도 갖춰야 한다. 압축적이면서도 기발하고 재밌는 말을 발명하면서 놀아보자. 세종대왕이 만든 말만 쓰면 허기지다. 한글에 한자어도, 영어도, 일어도, 불어도 섞어보자. 말의 유희다.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한 말도 있다. "즐~."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