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린 리. 디베이트 교육 전문가.
[함께하는 교육]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 /
“싸움닭 된다” “흑백논리 빠진다” “웅변 아니냐”
이해 부족에서 생겨난 디베이트에 대한 오해들
“싸움닭 된다” “흑백논리 빠진다” “웅변 아니냐”
이해 부족에서 생겨난 디베이트에 대한 오해들
4. 인터뷰, 리더십, 인성교육, 자원봉사, 시민의식 교육에 대입까지 - 디베이트의 놀라운 효과 2
5. 디베이트를 안 하는 한국 사회, 그 우울한 모습
6. 디베이트, 그렇게 좋다면 왜 지금까지 답보상태인가
한국 사회는 토론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여러 문제가 생긴다. 디베이트를 하지 않아 생기는 몇가지 장면을 생각해봤다.
장면 1. 한국의 한 TV 토론이다. 고명한 분들이 참석했다. 발표자가 주제 발표를 하고 질문자에게 질문하라고 마이크를 넘겼다. 그런데 이 질문자, 자기 생각을 먼저 길게 늘어놓는다. 한참 자기 이야기를 하더니, 끝에 이렇게 질문한다. “자, 이런 제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타까운 일이다. 질문하는 방법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 자주 볼 수 있다. 어려서부터 디베이트를 안 해서 생기는 문제다. 디베이트를 배우면 질문→반박→답변→재반박 등의 형식에 익숙해진다. 이렇게 귀한 TV 토론에 나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장면 2. 철수와 영희가 대화한다. 철수 : 나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봐. 영희 : 왜? 철수 : 우리 형이 서울대 다니거든. 그런데 우리 형이 그랬어. 영희 : 그렇구나. 알다시피 영희의 응답은 적절하지 않다. “너희 형이 서울대 다니는 거랑, 낙태 허용이랑 뭔 상관이야?”라고 했어야 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철수야, 너는 지금 권위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이야기는 왜 낙태를 허용해야 하는지 이유야”라고 말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사회에서 수많은 논리의 오류를 저지르며 자기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훈련을 받아보질 못했기 때문에 자기가 오류를 저지르는지도 모른다. 반박당해 보지 않아서 그렇다. 디베이트를 하다 보면 이런 논리 훈련을 늘 하게 되기 때문에 조리있고 정연한 논리를 펴게 된다.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쉽게 간파한다. 똑똑해지게 되는 것이다. 디베이트를 하면 아이들이 똑똑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장면 3. 진우가 힘겹게 공부해서 미국 명문대에 입학했다. 수업시간이다. 교수님이 진우를 지목하고, 오늘 주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진우는 ‘드디어 내 실력을 발휘할 때’라고 생각해서, 어젯밤 예습한 과제물의 요점을 말한다. 그러고는 칭찬받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또 묻는다. 진우는 교수님이 제대로 이해를 못했나 싶어 다시 말한다. 그런데 교수님은 또 묻는다. “텍스트 말고, 자네 생각 말이야. 자네 생각!” 진우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과제물에 내 생각이란 것은 없던데….” 이상은 한국에서 바로 미국 대학으로 유학온 한국 유학생들이 겪는 가장 전형적인 모습 중의 하나다. 미국 대학에서 한국 학생들은 “조용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는 학생”이란 평가를 받지만, 한편으로는 “수업 시간의 참여도가 낮고, 자기주장이 없는 학생”이란 평가도 받는다. 우리 자녀가 비싼 돈 들여 멀리 유학 가서 이런 취급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디베이트를 배우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자기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 논리를 만드는 훈련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장면 4. 다시 한국의 TV 토론이다. 진행자가 5분만 발언해달라고 한다. 그런데 마이크를 잡은 이 정치가. 흥분된 목소리로 계속 이야기한다. 진행자가 중간에 막아보려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토론회를 망친 뒤 방송국을 나서며 보좌관에게 말한다. “나, 오늘 잘했어?” “그럼요, 유권자들에게 확실하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는데요.” 디베이트에서 이렇게 하면 감점이다. 디베이트 경시대회에서는 심판이 초시계까지 들고 들어간다. 허용된 시간을 어기면 감점이다. 게다가 진행자는 그 토론회의 리더다. 리더 이야기를 무시하고 함부로 처신한 것을 “유권자에게 확실하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계기”로 이해한다면, 이를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의 처신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은 토론회보다는 목청 돋우기 대회에 나가는 게 낫다. 어려서부터 디베이트를 배우면 이런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장면 5. 세상이 나를 알아주는지, 어느 토론회 자리에 초대받았다. 고민한다. 속으로 ‘허술하게 보여서는 안 될 텐데…’라고 중얼거리며 토론회에 참석했다. 상대방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메모지에 말할 논리를 메모한다. 청력에는 이상이 없는데, 실은 듣고 있지 않다. 자기가 할 말 생각에만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진행자가 나를 지목하면서 앞 순서 참가자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당황한다. 대화에서 상대방이 한 이야기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기본이다. 디베이트에서는 이런 훈련을 늘 하게 된다. 잘 들어야 잘 반박할 수 있다. 디베이트에서는 상대방이 발언할 때 다른 상대방은 열심히 메모한다. 듣는 자세를 제대로 배우는 것이다. 장면 6. 미국의 수능시험이라 할 수 있는 에스에이티(SAT)에는 2005년 작문(Writing) 시험이 추가됐다. 작문 시험은 크게 두 부분이다. 첫번째는 다지선다형으로 전체 점수의 약 70%인데 한인 학생들에게 익숙한 문제 유형으로 큰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에세이인데 주어진 주제에 대해 25분 동안 직접 글을 써야 한다. 한인 학생들이 약한 부분이 여기다. 전체 점수에서는 30%밖에 안 되는 에세이가 작문 성적을 좌우한다. 많은 한인 학생들이 이 대목에서 시험지만 멍하니 바라본다. 평소에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을 안 했기 때문이다. 나는 디베이트를 열심히 하면, 이러한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고 보는 편이다. 실제 디베이트 과정에서는 찬반의 한 주장을 골라 그에 걸맞은 근거를 대며 자기주장을 펴는 훈련을 한다. 이를 글로 풀어 쓰면 그것이 바로 SAT의 작문 에세이 연습이다. 이를 매주 하게 되면 실제 시험장에서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기 논리를 전개하게 된다.
이렇게 좋은 교육 프로그램인 디베이트가 아직은 한국에 확산되지 않아서, 이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크게 세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오해의 내용과 내가 생각하는 답을 아래에 정리해봤다.
오해 1. 디베이트를 하다 보면 싸움닭이 된다.
디베이트는 한가지 주제에 대해 편을 갈라, 정해진 형식에 따라 토론하는 과정에서 주제에 대한 깊은 인식을 꾀함과 더불어 서로의 스피치 실력, 논리 실력의 향상을 추구하는 교육 방법이다. 디베이트를 하다 보면 고정적으로 보였던 현상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고, 그 호기심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 싸움이 목적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디베이트를 하면 상대방 이야기를 경청하는 버릇이 생기고, 또 자기 이야기를 할 때 막무가내로 하지 않고 설득력 있게 하는 버릇이 생긴다. 디베이트를 못하는 사람들이 대화가 격해지면 싸움닭처럼 변한다.
오해 2. 디베이트를 하다 보면 흑백논리가 생기게 된다.
디베이트는 어떤 주제에 대해 찬반으로 나눠 토론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를 보고 혹시 나중에 흑백논리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당연히 아니다.
디베이트에서 찬반으로 나눠 토론을 하는 이유는, 이렇게 해야 서로의 논점이 분명해지고, 서로의 토론 기술이 정확하게 비교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디베이트를 하게 되면 고정적으로 보였던 현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학교에 갈 때 교복을 입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학생이 교육에 대한 디베이트를 통해 교복 제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교복에 대해 흑백논리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오해 3. 디베이트, 그거 웅변하고 비슷한 것 아닌가?
디베이트를 웅변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웅변은 자기주장을 효과적으로 대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스피치 기술의 일종이다. 하지만 디베이트는 이보다 근본적인 의미가 있다. 사물을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디베이트를 잘하면 인문계 공부도, 이공계 공부도 잘하게 된다. 모든 공부의 근본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디베이트는 모든 학생들이 모든 공부에 선행해 배워야 하는 것이다. 디베이트를 잘하면 웅변도 조리있게 하는데, 웅변을 잘한다고 해서 디베이트를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Help@TogetherDebateClub.com
장면 1. 한국의 한 TV 토론이다. 고명한 분들이 참석했다. 발표자가 주제 발표를 하고 질문자에게 질문하라고 마이크를 넘겼다. 그런데 이 질문자, 자기 생각을 먼저 길게 늘어놓는다. 한참 자기 이야기를 하더니, 끝에 이렇게 질문한다. “자, 이런 제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타까운 일이다. 질문하는 방법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 자주 볼 수 있다. 어려서부터 디베이트를 안 해서 생기는 문제다. 디베이트를 배우면 질문→반박→답변→재반박 등의 형식에 익숙해진다. 이렇게 귀한 TV 토론에 나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장면 2. 철수와 영희가 대화한다. 철수 : 나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봐. 영희 : 왜? 철수 : 우리 형이 서울대 다니거든. 그런데 우리 형이 그랬어. 영희 : 그렇구나. 알다시피 영희의 응답은 적절하지 않다. “너희 형이 서울대 다니는 거랑, 낙태 허용이랑 뭔 상관이야?”라고 했어야 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철수야, 너는 지금 권위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이야기는 왜 낙태를 허용해야 하는지 이유야”라고 말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사회에서 수많은 논리의 오류를 저지르며 자기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훈련을 받아보질 못했기 때문에 자기가 오류를 저지르는지도 모른다. 반박당해 보지 않아서 그렇다. 디베이트를 하다 보면 이런 논리 훈련을 늘 하게 되기 때문에 조리있고 정연한 논리를 펴게 된다.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쉽게 간파한다. 똑똑해지게 되는 것이다. 디베이트를 하면 아이들이 똑똑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장면 3. 진우가 힘겹게 공부해서 미국 명문대에 입학했다. 수업시간이다. 교수님이 진우를 지목하고, 오늘 주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진우는 ‘드디어 내 실력을 발휘할 때’라고 생각해서, 어젯밤 예습한 과제물의 요점을 말한다. 그러고는 칭찬받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또 묻는다. 진우는 교수님이 제대로 이해를 못했나 싶어 다시 말한다. 그런데 교수님은 또 묻는다. “텍스트 말고, 자네 생각 말이야. 자네 생각!” 진우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과제물에 내 생각이란 것은 없던데….” 이상은 한국에서 바로 미국 대학으로 유학온 한국 유학생들이 겪는 가장 전형적인 모습 중의 하나다. 미국 대학에서 한국 학생들은 “조용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는 학생”이란 평가를 받지만, 한편으로는 “수업 시간의 참여도가 낮고, 자기주장이 없는 학생”이란 평가도 받는다. 우리 자녀가 비싼 돈 들여 멀리 유학 가서 이런 취급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디베이트를 배우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자기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 논리를 만드는 훈련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장면 4. 다시 한국의 TV 토론이다. 진행자가 5분만 발언해달라고 한다. 그런데 마이크를 잡은 이 정치가. 흥분된 목소리로 계속 이야기한다. 진행자가 중간에 막아보려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토론회를 망친 뒤 방송국을 나서며 보좌관에게 말한다. “나, 오늘 잘했어?” “그럼요, 유권자들에게 확실하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는데요.” 디베이트에서 이렇게 하면 감점이다. 디베이트 경시대회에서는 심판이 초시계까지 들고 들어간다. 허용된 시간을 어기면 감점이다. 게다가 진행자는 그 토론회의 리더다. 리더 이야기를 무시하고 함부로 처신한 것을 “유권자에게 확실하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계기”로 이해한다면, 이를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의 처신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은 토론회보다는 목청 돋우기 대회에 나가는 게 낫다. 어려서부터 디베이트를 배우면 이런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장면 5. 세상이 나를 알아주는지, 어느 토론회 자리에 초대받았다. 고민한다. 속으로 ‘허술하게 보여서는 안 될 텐데…’라고 중얼거리며 토론회에 참석했다. 상대방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메모지에 말할 논리를 메모한다. 청력에는 이상이 없는데, 실은 듣고 있지 않다. 자기가 할 말 생각에만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진행자가 나를 지목하면서 앞 순서 참가자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당황한다. 대화에서 상대방이 한 이야기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기본이다. 디베이트에서는 이런 훈련을 늘 하게 된다. 잘 들어야 잘 반박할 수 있다. 디베이트에서는 상대방이 발언할 때 다른 상대방은 열심히 메모한다. 듣는 자세를 제대로 배우는 것이다. 장면 6. 미국의 수능시험이라 할 수 있는 에스에이티(SAT)에는 2005년 작문(Writing) 시험이 추가됐다. 작문 시험은 크게 두 부분이다. 첫번째는 다지선다형으로 전체 점수의 약 70%인데 한인 학생들에게 익숙한 문제 유형으로 큰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에세이인데 주어진 주제에 대해 25분 동안 직접 글을 써야 한다. 한인 학생들이 약한 부분이 여기다. 전체 점수에서는 30%밖에 안 되는 에세이가 작문 성적을 좌우한다. 많은 한인 학생들이 이 대목에서 시험지만 멍하니 바라본다. 평소에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을 안 했기 때문이다. 나는 디베이트를 열심히 하면, 이러한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고 보는 편이다. 실제 디베이트 과정에서는 찬반의 한 주장을 골라 그에 걸맞은 근거를 대며 자기주장을 펴는 훈련을 한다. 이를 글로 풀어 쓰면 그것이 바로 SAT의 작문 에세이 연습이다. 이를 매주 하게 되면 실제 시험장에서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기 논리를 전개하게 된다.
규칙과 절차를 지키지 않는 토론은 진정한 토론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를 들어 한국의 토론 문화는 여전히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은 텔레비전 토론회를 보고 있는 시장 상인들의 모습이다.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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