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교육의 그늘 (상)
‘억’ 소리나는 귀족스포츠…개천에서 ‘연아’ 못 난다
‘억’ 소리나는 귀족스포츠…개천에서 ‘연아’ 못 난다
국가대표 되기까지 연 1억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고” ‘연아 키즈’에 허리휘는 부모들 “아내와 내가 버는 수입의 70~80%를 딸아이한테 쏟고 있는데 너무 버겁네요. 차라리 딸이 그만두겠다고 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김병상(가명)씨의 딸(14)은 7살 때부터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해 현재 대한빙상연맹에 등록된 4급 선수다. 연맹은 심사를 해서 선수들에게 초급부터 8급까지 모두 9단계의 급수를 부여하는데, 7급부터는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 있다. 김씨는 “급수가 올라갈수록 고난도 점프를 하니까 한켤레에 130만~150만원 하는 스케이트화를 매달 갈아주는데 이것만 연간 1000만원”이라며 “딸이 너무 좋아해서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산층 학부모가 혼자 힘으로 국가대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가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뒤 국내에서도 제2의 김연아를 꿈꾸는 ‘연아 키즈’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뒷바라지하는 부모들은 김씨처럼 남모를 속앓이를 해야 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용 탓에 허리가 휠 지경이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시설관리공단 빙상장에서 만난 최영숙(가명)씨의 딸(12살)은 스텝, 트리플, 스핀, 안무, 발레, 연기, 웨이트트레이닝까지 모두 7명의 강사한테 레슨을 받는다. 그는 “급수가 올라갈수록 고난도 동작을 해야 하는데 그때는 따로 코치를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음악에 맞춰 연기를 구성하는 데에도 돈이 든다. 최근에는 김연아 선수처럼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작품’을 공수해 오는 일이 많은데, 이 경우 2000만~3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2009년 여름 미국 뉴욕에서 작품을 받아 왔다는 학부모 홍수현(가명)씨는 “국내엔 안무 코치들이 제한돼 있다 보니 독창적이지 않아 외국 코치한테 가서 짜 왔다”며 “첫째 아이한테 투자하느라 둘째 아이는 수학학원 하나 못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피겨 코치는 “대회 때 입는 옷도 한벌에 150만원 하는데, 쇼트랑 프리 2벌을 해마다 맞춰야 한다”며 “연간 1억원가량 들어가는 것이 예사”라고 말했다. 빙상부가 있는 학교가 있지만 행정적인 지원 말고는 기대할 게 없다. 김연아 선수가 나온 경기 군포 수리고의 관계자는 “대회 출전비나 행정업무를 지원하는 정도”라며 “개인종목인데다 지원이 많지 않아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아니면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겉보기와는 달리 열악한 훈련 환경도 걸림돌이다. 대다수의 빙상장이 낮에는 일반에 개방되는 탓에 선수들은 이른 아침이나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훈련을 해야 한다. 한달에 40만~50만원 하는 대관료도 학부모 부담이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기본 그린피만 연 3천만원
멀기만한 ‘제2 최경주’ 꿈 한숨만 느는 ‘골프 대디’들 부산골프고 3학년 김승진(가명)군은 “최경주나 박세리처럼 유명해지고 싶어서” 이 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지난해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김군의 꿈은 깨지기 시작했다. “장비는 아빠가 할부로 어떻게든 마련해 주시는데, 골프장 비용이 너무 부담돼요. 일주일에 2번만 나가도 한달에 60만원이 넘게 들어요. 두세달에 한번 정도 나가니까 실력도 잘 안 늘고 답답해요.” 그는 졸업한 뒤 캐디로 일하면서 돈을 벌어 어떻게든 선수가 될 작정이다. 막대한 투자와 헌신적인 지원을 업으로 삼는 ‘골프 대디’가 없으면 선수로 성공하기가 힘들다는 게 골프계의 정설이다. 한 골프 국가대표 선수의 아버지는 “국가대표가 되더라도 나라에서 지원하는 건 1년에 70~80일 전지훈련을 하는 동안 하루 3만원 주는 게 전부”라며 “프로가 되고 스폰서가 붙기 전까지 모든 것을 부모가 대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 골프선수들과 학부모에게 가장 큰 부담은 훈련을 위해 골프장에 치르는 ‘그린피’다. 대한골프협회의 ‘국가대표 및 상비군 선발 규정’을 보면, 국가대표가 되려면 협회가 정한 8개 대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 대회가 실내연습장이 아닌 필드에서 열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필드 경험은 선수가 되는 데 필수적이다. 인천 ㅈ고의 골프부 지도교사는 “필드 한번 나가는 데 20만원이 필요하므로, 일주일에 2~3번만 나가도 한달에 200만~300만원, 1년이면 3000만원이 연습장 확보에 들어간다”며 “부모들이 자식 하나 성공시키려고 목숨 걸고 투자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빚을 지거나 망하는 부모들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경기에 출전해도 그린피는 선수 부담이다. 고2 아들이 골프선수로 활동하는 학부모 서상진(가명)씨는 “시합이 열리는 필드의 지형 등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는 해당 골프장 주변 여관에서 지내면서 연습을 하는데 그린피까지 비용이 300만~400만원은 든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선발 포인트가 있는 8개 대회에만 참가해도 비용이 수천만원에 이르는 셈이다. 레슨비의 경우, 수상 경력이 많은 프로한테 지도받으려면 연간 2000만~3000만원이 들어가기도 한다. 한 대학 체육학과 교수는 “유명한 프로선수는 학생 한명을 프로에 입문시키는 조건으로 수억원에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대회에서 우승한 여자선수의 아버지는 “내 직업은 골프 대디”라고 말했다. “시합에 쫓아다니다 보면 1년에 집에 들어가는 날이 50~60일밖에 안 돼요.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요. 이럴 줄 알았으면 시키지 말걸, 후회가 됩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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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와는 달리 열악한 훈련 환경도 걸림돌이다. 대다수의 빙상장이 낮에는 일반에 개방되는 탓에 선수들은 이른 아침이나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훈련을 해야 한다. 한달에 40만~50만원 하는 대관료도 학부모 부담이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기본 그린피만 연 3천만원
멀기만한 ‘제2 최경주’ 꿈 한숨만 느는 ‘골프 대디’들 부산골프고 3학년 김승진(가명)군은 “최경주나 박세리처럼 유명해지고 싶어서” 이 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지난해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김군의 꿈은 깨지기 시작했다. “장비는 아빠가 할부로 어떻게든 마련해 주시는데, 골프장 비용이 너무 부담돼요. 일주일에 2번만 나가도 한달에 60만원이 넘게 들어요. 두세달에 한번 정도 나가니까 실력도 잘 안 늘고 답답해요.” 그는 졸업한 뒤 캐디로 일하면서 돈을 벌어 어떻게든 선수가 될 작정이다. 막대한 투자와 헌신적인 지원을 업으로 삼는 ‘골프 대디’가 없으면 선수로 성공하기가 힘들다는 게 골프계의 정설이다. 한 골프 국가대표 선수의 아버지는 “국가대표가 되더라도 나라에서 지원하는 건 1년에 70~80일 전지훈련을 하는 동안 하루 3만원 주는 게 전부”라며 “프로가 되고 스폰서가 붙기 전까지 모든 것을 부모가 대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 골프선수들과 학부모에게 가장 큰 부담은 훈련을 위해 골프장에 치르는 ‘그린피’다. 대한골프협회의 ‘국가대표 및 상비군 선발 규정’을 보면, 국가대표가 되려면 협회가 정한 8개 대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 대회가 실내연습장이 아닌 필드에서 열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필드 경험은 선수가 되는 데 필수적이다. 인천 ㅈ고의 골프부 지도교사는 “필드 한번 나가는 데 20만원이 필요하므로, 일주일에 2~3번만 나가도 한달에 200만~300만원, 1년이면 3000만원이 연습장 확보에 들어간다”며 “부모들이 자식 하나 성공시키려고 목숨 걸고 투자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빚을 지거나 망하는 부모들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경기에 출전해도 그린피는 선수 부담이다. 고2 아들이 골프선수로 활동하는 학부모 서상진(가명)씨는 “시합이 열리는 필드의 지형 등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는 해당 골프장 주변 여관에서 지내면서 연습을 하는데 그린피까지 비용이 300만~400만원은 든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선발 포인트가 있는 8개 대회에만 참가해도 비용이 수천만원에 이르는 셈이다. 레슨비의 경우, 수상 경력이 많은 프로한테 지도받으려면 연간 2000만~3000만원이 들어가기도 한다. 한 대학 체육학과 교수는 “유명한 프로선수는 학생 한명을 프로에 입문시키는 조건으로 수억원에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대회에서 우승한 여자선수의 아버지는 “내 직업은 골프 대디”라고 말했다. “시합에 쫓아다니다 보면 1년에 집에 들어가는 날이 50~60일밖에 안 돼요.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요. 이럴 줄 알았으면 시키지 말걸, 후회가 됩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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