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연성 교사의 디베이트 정복]
④ 동서양의 디베이트 역사
④ 동서양의 디베이트 역사
[난이도 수준] 초등 고학년~중1
“이번에는 황희 말대로 하라!” 세종실록에 많이 나오는 말이다.
세종대왕이 회의를 진행하는 방식은 간단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라며 문제를 던져 놓고, 토론을 거듭하게 했다. 긴급한 사안은 어전회의를 열어 바로 토론에 들어갔지만, 대부분 ‘왕에게 유학 경서와 사서를 강의하고 논의하는 교육 제도’인 경연에서 말과 일을 엮는 방식으로 회의를 열었다. 찬반 논지가 분명해지면 모든 참석자들에게 ‘계책을 각각 진술’하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회의시간은 길어졌지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이 거의 다 드러났다.
세종은 황희와 최윤덕이 토론 내용을 정리하고 의견을 덧붙이면 “황희 말대로 하라”는 식으로 힘을 실어주어 최상의 결정을 가능케 했다. 현대의 디베이트 판정인이 내린 판정과 같다.
세종대왕은 일반 백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찬반 의견을 묻기도 했다. 세종은 공법(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제도)을 새로 만들기 전에 반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전국의 백성 17만2000명에게 찬반 의견을 물었다. 세금을 변동세제로 거둘 것이냐 정액세제로 거둘 것이냐가 논제였다. 정액세제에 대해 찬성이 9만8000명, 반대가 7만4000명이란 결과가 나온 뒤에도 세종은 장장 17년간 토론을 거친 다음 공법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세종실록은 “백성들은 이러한 공법제도를 스스로 기꺼이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전한다.
당나라 태종과 신하 위징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무려 20여차례나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상대의 의견을 뒤집었다. 한번은 여러 신하가 보는 앞에서 황제가 모욕을 당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위징이 심한 발언을 하자 격노한 태종은 위징을 죽이겠다고 했다. 이러한 위징의 태도를 본 황후는 공직자 입장을 나타내는 황후 옷을 입고 다음과 같이 당 태종을 설득해 위징을 구했다. “위징이 그러한 발언을 한 까닭은 황제의 도량이 그만큼 깊고 넓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오니 절대로 죽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하와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분위기가 일상화돼 있었기 때문에 왕비의 의견도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당 태종이 다스리던 시기는 중국 역사에서 ‘정관의 치’라고 일컬어지는 태평성대였다. 후세 사람들은 그 원인을 ‘반대 견해끼리 대립하며 내려진 현명한 의사결정’을 으뜸으로 꼽는다.
영국, 대학이 도입 뒤 초·중·고로 확산
미국, 2차 대전 이후 연례행사로 정착
서양에서 디베이트는 디베이트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압데라의 프로타고라스(기원전 484~411)에 의해 2400년 전에 아테네의 학생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에 고대의 지식인, 학자들 사이에 퍼졌고 중세의 대학을 경유하여 7대 교양과목 중 하나로까지 높게 간주되었다. 영국에선 1400년대 초기에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 사이에 디베이트가 도입되었다. 그 뒤 디베이트는 정치가가 되기 위한 필수 트레이닝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그 결과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도 디베이트 학습을 열심히 하고 있고, 대회도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식민지시대에 디베이트가 도입되었다. 당시 모든 지도자들이 식민지 대학이나 수많은 모임에서 디베이트를 배웠다. 당시 대회에는 수많은 대학이 참가하여 연간 400회 이상의 학생 디베이트 대회가 개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디베이트 토너먼트가 연례행사로 열렸고, 때로는 3000명 이상의 학생이 참가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내 각 고교와 대학들에서 운영되고 있는 디베이트 클럽은 카운티, 주, 전국 단위로 정기적으로 대회가 진행되고 있으며 현직 연방의원들 중 80%가 디베이트 활동 경험이 있음은 물론이고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버락 오바마 등 대통령들도 디베이트 클럽 활동 경력이 있다. 특히 오프라 윈프리는 고교시절 다수의 포렌식스(forensics, 웅변술, 토론학) 수상경력이 있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인 해럴드 고(고홍주) 예일 법대 학장 또한 디베이트 클럽 출신이다. 주류 사회에서 ‘포렌식스’로 일컬어지고 있는 디베이트 프로그램은 다양한 시사 및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남에게 설득력 있게 발표하는 능력을 키워줌으로써 발표력을 중시하는 대학교육은 물론 능력 있는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특히 ‘오리지널 오러토리’ 종목은 포렌식스 17개 종목 중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국내외 가장 민감한 시사이슈를 소재로 다루며, 이에 대한 개개인의 입장을 토론하는 한편 조리 있고 자신 있게 발표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황연성 서울 예일초등학교 교사·건국대 교육대학원 강사 <한겨레 인기기사>
■ 통합진보당 홈페이지 해킹…북 인공기로 도배
■ 새누리·민주 공천 신청자 경력 키워드는 ‘박근혜·노무현’
■ 구글, 아이폰 사용자 ‘검색 정보’ 몰래 추적
■ 800만원 돈선거 고발하고 1억 포상금
■ 도로 복판이 ‘폭삭’…사람 잡은 지하철공사장
미국, 2차 대전 이후 연례행사로 정착
서양에서 디베이트는 디베이트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압데라의 프로타고라스(기원전 484~411)에 의해 2400년 전에 아테네의 학생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에 고대의 지식인, 학자들 사이에 퍼졌고 중세의 대학을 경유하여 7대 교양과목 중 하나로까지 높게 간주되었다. 영국에선 1400년대 초기에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 사이에 디베이트가 도입되었다. 그 뒤 디베이트는 정치가가 되기 위한 필수 트레이닝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그 결과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도 디베이트 학습을 열심히 하고 있고, 대회도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식민지시대에 디베이트가 도입되었다. 당시 모든 지도자들이 식민지 대학이나 수많은 모임에서 디베이트를 배웠다. 당시 대회에는 수많은 대학이 참가하여 연간 400회 이상의 학생 디베이트 대회가 개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디베이트 토너먼트가 연례행사로 열렸고, 때로는 3000명 이상의 학생이 참가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내 각 고교와 대학들에서 운영되고 있는 디베이트 클럽은 카운티, 주, 전국 단위로 정기적으로 대회가 진행되고 있으며 현직 연방의원들 중 80%가 디베이트 활동 경험이 있음은 물론이고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버락 오바마 등 대통령들도 디베이트 클럽 활동 경력이 있다. 특히 오프라 윈프리는 고교시절 다수의 포렌식스(forensics, 웅변술, 토론학) 수상경력이 있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인 해럴드 고(고홍주) 예일 법대 학장 또한 디베이트 클럽 출신이다. 주류 사회에서 ‘포렌식스’로 일컬어지고 있는 디베이트 프로그램은 다양한 시사 및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남에게 설득력 있게 발표하는 능력을 키워줌으로써 발표력을 중시하는 대학교육은 물론 능력 있는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특히 ‘오리지널 오러토리’ 종목은 포렌식스 17개 종목 중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국내외 가장 민감한 시사이슈를 소재로 다루며, 이에 대한 개개인의 입장을 토론하는 한편 조리 있고 자신 있게 발표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황연성 서울 예일초등학교 교사·건국대 교육대학원 강사 <한겨레 인기기사>
■ 통합진보당 홈페이지 해킹…북 인공기로 도배
■ 새누리·민주 공천 신청자 경력 키워드는 ‘박근혜·노무현’
■ 구글, 아이폰 사용자 ‘검색 정보’ 몰래 추적
■ 800만원 돈선거 고발하고 1억 포상금
■ 도로 복판이 ‘폭삭’…사람 잡은 지하철공사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