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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상위 50% 학생 끌어가고도 성적향상 ‘미미’
입학경쟁 가열시켜 사교육 부담만 늘게 해

등록 2014-06-10 20:02수정 2014-06-13 17:09

교육현장서 말하는 자사고 문제점

고교 서열구조 강화시켜
부정입학·회계비리 적발도
6·4 지방선거에 나선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들은 한결같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의 재검토·축소·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들의 대거 당선은 유권자들이 자사고의 폐해에 꽤 공감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교육정책인 자사고는 현재 전국에 49곳(전체 고교의 2.1%)이 지정돼 있다. 서울에만 25곳(서울지역 고교의 7.9%)이 몰려 있다. 선발 대상은 중학교 내신 성적 상위 50%에 드는 지원자다.

자사고 확대가 빚은 가장 큰 문제점은 성적 상위 50% 학생들로 정원을 채워, 주변 일반고의 교육 여건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재고-특목고-자사고·마이스터고-일반고’라는 고교 서열 구조가 뚜렷해지자, 일반고는 ‘뒤처진 학생들이 가는 학교’라는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서울 구로구 한 일반고의 교사 조영선(38)씨는 10일 “특목고·자사고에 합격하지 못한 상위권 학생 20%와 중하위권 학생 80%가량이 다닌다”며 “학력 차이가 극심하고 학급당 학생 수도 많아 가르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일반고에서 학업 성취만 압박하면 하위권 학생이 배제될 수밖에 없어 교육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된다. 조 교사는 “아이들이 무력감·열패감에 사로잡혀 자신감이나 의욕을 찾지 못하는 게 가장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집 근처 학교’ 정도로 여겼다면 이젠 ‘삼류 학교’에 다닌다는 인식이 역력하다는 것이다. 일반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 이아무개(42)씨는 “특목고다, 자사고다 해서 빠져나가고 남은 애들이 가는 학교가 일반고라는 주변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고 말했다.

몇가지 통계를 봐도 자사고와 일반고의 양극화는 또렷하다. 서울의 같은 교육지원청 관내의 자사고는 중학교 상위 20% 학생이 올해 신입생의 38%를 차지한 반면, 인근 일반고는 그 비율이 11.5%에 그쳤다. 지난 한 해 징계를 받거나 장기 결석한 학생이 자사고에선 각각 0명과 4명인데 일반고는 각각 222명과 35명이나 됐다. 일반고가 황폐화·슬럼화되고 있다는 비판의 근거다. 한 일반고 교사는 “아주 답답한 상황”이라며 “자사고는 공교육을 바보로 만든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고 자사고가 학생 성적을 눈에 띄게 끌어올렸다는 증거도 아직 없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양분 박사 등이 2012년 발표한 정책연구 보고(학교 다양화에 따른 고교 유형별 학교 및 학생 특성 분석)를 보면 사교육 여부, 부모와 자녀의 관계, 학교의 평균 사회경제적 지위 등을 고려하면 자사고와 일반고의 교육력 차이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사고 확대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2010~2011년 자료이긴 하지만 ‘자사고가 공부를 더 잘 시킨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 자사고 입학 경쟁으로 사교육 부담이 늘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반고 3학년과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하해경(46·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씨는 “자사고가 우후죽순처럼 늘자 중학생 학부모들 사이에 자사고 입학을 위한 사교육 경쟁이 뜨겁다”며 “첫째 아들이 다니는 일반고도 예전엔 선호하는 학교였는데 지금은 뒤떨어진다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원 미달, 재정 적자를 겪거나 설립 취지와 달리 입시교육에 치중하는 자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 비강남권의 한 자사고는 2010년 12개 학급 420명을 모집했으나, 전학생이 속출해 정원 미달 사태가 이어졌다. 지난해엔 10개 학급에 350명으로 학생 수를 줄였는데도 전학·자퇴가 계속돼 지금은 8개 학급만 운영한다. 내신에서 순위가 밀린 학생들이 주로 떠난다고 한다. 등록금이 일반고보다 3배나 비싸지만 학생 수가 줄면서 재정 형편도 여의치 않아 교사 수당 지급을 연체한 자사고도 있다. 자사고에 근무하는 한 교사(42)는 “특성교육을 표방했지만 정원이 미달되자 입시교육으로 전환했다. 그러다 보니 자사고가 돼서 나아진 게 뭐냐는 교사들의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자사고에 대한 불신은 입학·회계 부정 등이 드러나며 더 커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의 서울 영훈국제중 부정입학 사건을 계기로 시·도교육청들이 자사고·외고·국제고 75곳을 감사해 보니, 감사 대상 학교 60%에서 부정·비리가 적발됐다. 입학서류 폐기, 개인정보 노출, 심사 점수 변경 등 ‘고의적 입시 부정’ 정황도 드러났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프로그램 사업 지원비를 교사 연수비 등으로 쓴 부당 집행도 나타났다. 그런데도 경고 등에 그치자 교육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감사원에 재감사를 요구했다.

김정빈 다들교육정책연구소장은 “특성교육을 내세운 자사고들이 입시학원처럼 변질됐고 이른바 대학 진학 실적도 신통치 않다”며 “정부와 교육감들은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자사고의 학생 우선 선발권을 회수해야 한다. 동시에 현재 자사고 재학생 대책도 세심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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