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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사배자 뽑아놓고 관심은 오로지 상위권 학생들”

등록 2014-06-10 20:25수정 2014-06-13 17:08

심층 리포트 모두가 행복한 학교
➋ 일반고 전성시대, 자사고 해법부터

자사고 전·현직 교사 3명
“비싼 수업료 못내 전학
내신 불리하다고 전학
교육 질도 일반고 수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탓에 일반고의 교육 환경이 황폐해졌다며 자사고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데 자사고의 전·현직 교사들은 자사고 내부 문제만으로도 자사고는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가 ‘명문 기독교 자사고’에서 근무한 ㄱ교사와 서울의 한 정원 미달 자사고에서 일하는 ㄴ교사, 자사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한 ㄷ교사 등을 만나 이들이 밝힌 ‘자사고 잔혹사’를 들었다.

이른바 ‘명문대’ 입학만 바라보는 자사고에서 학생 사이의 빈부 격차는 관심사가 아니다. ㄱ교사가 경기도 안산 동산고를 3년 만에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학교 쪽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사배자)를 사실상 차별하고 소외시켜서다. 학교는 2011년 학생들이 ‘스펙’을 쌓아야 한다며 승마장을 지었다. 마사회에서 지원을 받아 학교 돈은 거의 들지 않았다. 하지만 비싼 참가비를 낼 수 있는 학생만 참여했다. 그때 ㄱ교사가 담임을 맡은 반의 사배자 학생 2명은 저녁 급식비를 내지 못해 물로 배를 채우고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점심 급식비만 지원하고 저녁 급식은 필수가 아니라며 지원하지 않아서다.

자사고 교사 “입시학원으로 변질된 자사고들은 없애는 게 맞다”

상위권 학생에게 맞춘 진도를 따라갈 수 없는 사배자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잠을 잤다. 교사들은 고1 공통수학 과목 정도는 이미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했다고 전제하고 진도를 나갔다. 방치된 사배자 학생들을 안타깝게 여겨 일부 전교조 교사들이 학교 안에 야학을 꾸려 보충수업을 해왔는데, 이마저도 지난해 없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자사고 문을 열며 정원의 20%를 사배자로 뽑도록 했다. 비싼 수업료를 감당할 수 있는 학생만으로 ‘귀족학교’를 만든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내놓은 타협안이다. 일선 학교에선 마지못해 뽑은 사배자 학생을 방치했다.

적잖은 자사고 학생이 일반고로 전학을 한다. ㄴ교사가 근무하는 자사고에선 해마다 한 학년 300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0명꼴로 “내신에 불리하다” “낸 수업료만큼 얻는 것 같지 않다” “학비를 감당할 수 없다” 따위의 각종 이유로 학교를 옮긴다고 한다. 이 탓에 학교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ㄴ교사가 담임을 맡은 한 학생은 부모가 없어 할아버지와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으로 입학했다가 수급 기준이 바뀌어 차상위계층이 되자 수업료 지원이 끊겨 전학을 갔다. ㄴ교사는 10일 “전학을 많이 간 반은 각종 이유로 30명 중 17명이 떠나기도 했다. 친구들이 전학을 가니까 남은 학생들도 계속 고민하고 불안해한다”고 전했다.

자사고의 속사정을 잘 아는 세 교사는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학생이 많아 자사고의 학습 분위기는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업료가 일반고보다 최대 3배까지 비싼데도 교사의 질은 일반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짚었다. 이들은 자신들도 자사고 전환 전까지는 일반고 교사였던 터라 일반고 교사와 실력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ㄴ교사는 “정부 지원을 못 받는데 학생 수가 정원에 미달하자 학교에선 진학·상담 교사 수를 줄였다. 그만큼 교육의 질이 나빠졌다. 자사고 부모들은 일반고에 비해 최대 3배까지 수업료를 내지만 그에 걸맞은 양질의 교육을 받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ㄷ교사는 “자사고에선 기간제 교사를 많이 뽑는다. 학생 정원 미달 우려 등 탓이다. 그런데 기간제 교사들은 한 학교에서 1~2년 정도만 일해 학생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국·영·수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사고에서 다른 과목을 맡은 교사들은 찬밥 신세일 뿐만 아니라 근무 환경도 열악하다. “국·영·수가 아닌 과목은 수업시간이 줄었다.”(ㄷ교사) “수업이 준 교사들은 전공과 관계없는 창의적 체험 활동이나 진로 상담을 맡게 된다. 정원 미달인 학교는 교사들의 수당을 줄이고 지급 날짜도 미루기 일쑤다.”(ㄴ교사)

이들은 지금이라도 자사고 폐지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ㄷ교사는 “입시교육이 아닌 종교교육을 위해 자유롭게 학교 과정을 운영하겠다는 극소수 학교만 자사고로 남겨두고, 입시학원으로 변질된 대다수 자사고는 없애는 게 맞다”고 말했다. ㄴ교사는 “우리 학교가 자사고로 전환할 때부터 젊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고 지금은 그런 요구가 더 커졌다. 빨리 일반고로 전환해 이 혼란을 끝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이 자사고 폐지 결정 과정에서 기존 자사고 학생·학부모 등의 상실감과 반발을 지혜롭게 풀어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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