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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하나의 역사’만 강조하면 약자·소수자는 배제된다”

등록 2015-09-17 21:59수정 2015-09-18 10:11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사진 이유진 기자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사진 이유진 기자
교과서 국정화 이렇게 본다/연쇄 인터뷰
④ 박구용 전남대 교수
박구용(47)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움직임에 대해 “역사는 ‘하나’일 수 없는데 ‘하나의 역사’만을 강조하면 강자의 입장에서 소수자나 약자 같은 타자를 배타적으로 보는 위험한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부정의 역사철학: 역사상실에 맞선 철학적 도전>(2013) 같은 저서를 통해 지배자들만 부각되고 고통받는 피지배자들은 망각되고 마는 근대적 역사기획에 이의를 제기하며 우리 역사 문제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제안해왔다.

하나의 국정교과서 만들면
피 튀기는 논쟁 매일 일어날 것

세계 시민의 관점에서
다양성이 공존하는 역사관 가져야

하나의 사료에는
수천만의 아우성치는 소리가 있어
그들과 소통하는 게 역사관점

-국정화 주장의 주된 근거는 ‘하나의 역사’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역사’가 있다는 것은 반역사적이다. 과학도 패러다임에 따른 다양한 이해가 있고 진리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진리를 추구한 데카르트의 기획도 실패로 판명나지 않았나.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하나의 역사’라는 주장은 중심과 기준이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문화는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비정상으로 낙인찍히고 배제된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하나의 역사’는 힘의 크기에 따라 재구성된 것이었다. 이때 ‘나’ ‘우리’가 아닌 타자는 강하면 숭배하고 약하면 지배해야 할 집단일 뿐이다. ‘하나의 역사’를 포기해야 타자를 억압하거나 복수심을 조장하는 어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여러개의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첫째는 국론이 분열되어 교과서를 하나로 만들자는 것인데, 서로 다른 역사가 교차하니 분쟁이 이 정도로 멈춘 것이다. 하나의 국정교과서를 만들면 피 튀기는 논쟁이 매일 발생할 것이다. 둘째, 학생들의 경우 여러 관점을 알면 혼란을 겪고, 혼란을 겪으면 국민정체성 형성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논리다. 그 사고방식 자체가 ‘정체성’에 대한 몰이해다. 관점의 혼돈 때문에 정체성 형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철학적으로도 논의된 바 없는 일이다. 오히려 한 사람의 역사관과 정체성은 혼돈의 교차로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복잡성이 증가하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여러 관점을 자기 나름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핵심이다. ‘하나의 역사’는 전근대로 획일화하고 회귀하는 것이다. 하나의 정체성은 하나의 노예를 만드는 길이다.”

-그렇다면 역사 교과서 서술에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가?

“옛날 ‘국사’를 지금 ‘한국사’라고 쓰는 것은 국가주의에 반대한다는 합의를 따르기 때문이다. ‘세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자는 합의다. 세계 3대 경제대국 사이에 있는 우리야말로 ‘세계시민의 관점’으로 역사를 재구성해야 이념적으로 앞서갈 수 있다. 유럽의 작은 나라들일수록 담론의 장에서 독일이나 영국보다 좀더 세계적이고 평화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야만 약자들이 이념적 정당성을 갖고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지성인들이 아프게 질문한 것 중 하나가 왜 인류가 인간적 사회를 추구하려다 야만적 상태에 빠졌느냐는 것이다. 거기서 배운 것이 적개심을 키우고 전쟁을 불러오며 후손들에게 화를 입힐 정치사 중심의 역사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뒤 자민족 중심주의가 아닌 세계시민적 관점을 강조하면서 폭력의 비극을 익히고, 문화사를 가르치는 쪽으로 세계 역사교육의 흐름이 바뀌었다.”

-‘세계시민적 관점’은 하나의 역사가 아닌가?

“세계시민적 관점에서도 ‘하나’가 아닌 다양한 것이 공존하는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하나의 사료는 그저 ‘사물’이 아니라 수천만의 아우성치는 소리가 있다.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 ‘역사 관점’이다. 역사적 순간,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은 모두 다르지만 각자가 주인공이다. 그런 목소리가 교차한 지점에서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역사 교과서는 누구의 시선과 목소리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근현대사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영웅들의 역사, 성공한 사람들 중심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성취 중심의 역사는 이미 폭력적 역사다. 지금의 역사교육은 현재를 정당화시키는 역사만 보려는 듯하다. 성취가 아니라, 이름 없이 쓰러져간, 때려눕혀진 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역사학이다. 베냐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역사철학테제)를 보면, 그는 사료 안에서 우리를 호명하는 소리에 대해 강조한다. 이런 호명을 듣고 응답한다는 것, 예컨대 동학농민전쟁의 한 농민군의 목소리는 사료 어디에도 없지만 잔해와 파편을 모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교육은 폭력적 대결의 역사가 아니라 그 대결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는 것이어야 한다.”

광주/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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