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한 시민이 유럽연합기를 몸에 두른 채 트래펄가 광장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한겨레 사설] 유럽을 위기로 몰아넣는 영국의 선택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는 결국 탈퇴로 결정이 났다. 이로써 영국은 유럽연합(EU) 전신인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한 지 43년 만에 비회원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유럽연합은 창설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유럽을 넘어 지구적 차원의 정치·경제에 큰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개표 최종 결과는 탈퇴 찬성이 51.9%로 반대보다 4%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지난주 브렉시트에 반대한 조 콕스 노동당 의원이 극우파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도 탈퇴 흐름을 뒤집지는 못했다. 콕스 의원을 살해한 범인이 외쳤다는 “영국이 먼저”라는 구호는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영국 국민이 브렉시트에 찬성한 것은 영국이 유럽연합 일원으로서 얻는 이익보다 손해가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영국은 독일 다음으로 많은 유럽연합 분담금을 내고 있지만 기여한 만큼 혜택은 받지 못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 행사하는 권한도 약하다는 불만이 컸다. 또 동유럽 이민 문제와 중동 지역 난민 문제로 인한 복지와 안보의 위협은 영국민의 탈퇴 심리를 크게 자극했다. 특히 유럽연합 회원국 내부의 ‘이동 자유’에 따른 이민 급증은 영국 국민들 사이에 임금 하락과 복지 축소 위기감을 불렀다.
영국의 이번 결정은 개방, 다양성, 협력, 통합 등의 단어 대신 고립, 폐쇄, 자국 우선 등의 단어가 득세했음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영국은 유럽 대륙으로부터 한발 떨어져 필요할 때만 개입하는 ‘영예로운 고립’ 노선을 걸었다. 유럽공동체 가입 이후 배후로 물러나 있던 이런 전통이 이번에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영국의 결정은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과 관계 악화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질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 독립 재추진과 북아일랜드와 웨일스의 연쇄적인 독립 움직임에 직면할 수 있다. 결국 영국은 편협한 안목으로 탈퇴를 선택함으로써 자국을 고립의 길로 이끌고 전 세계에 걱정거리를 안기고 말았다.
유럽연합이 감당해야 할 충격도 크다. 그렇잖아도 유럽연합 내에서 커지고 있던 원심력이 영국의 탈퇴 결정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유럽연합은 이민·난민 문제를 포함해 여러 차원의 내부 갈등을 겪어왔다. 영국의 탈퇴로 회원국 사이에 영국을 뒤따라가자는 움직임이 한층 더 힘을 받게 됐다. 프랑스·네덜란드의 극우정당들은 “다음엔 우리 차례”라며 환호하고 있다. 높은 실업률과 난민 사태 등으로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극우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의 이번 결정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은 이런 이탈 움직임을 막고 역내 경제·사회를 안정시켜야 하는 큰 숙제를 안게 됐다. 유럽연합의 구심축이라 할 독일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올랐다.
세계 금융시장은 영국의 탈퇴 결정으로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 세계 금융시장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24일 영국 파운드화는 1985년 이후 최저치로 추락했고, 엔화 가치는 폭등했다. 또 전 세계 주식시장도 일제히 폭락했다. 국제 금융시장의 혼란은 장기적으로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세계 경제의 위험성 증가에 맞서 국제적 차원의 공동대응이 긴요하다.
[중앙일보 사설] 브렉시트로 현실이 된 신고립주의 공포
영국이 끝내 고립을 택했다. 23일 실시된 영국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지지하는 표가 51.9%로 과반을 넘었다. 영국의 EU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Brexit)’가 현실화함으로써 영국은 43년 만에 EU와 결별하고 독자노선을 걷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가 사실상의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된 것 못지않게 충격적이다.
세계 5위의 경제대국 영국을 잃게 된 EU나 EU에서 이탈하는 영국이나 아무도 가보지 않은 불안하고 두려운 길에 들어섰다. 영국과 EU의 이혼 과정이 얼마나 걸릴지, 과연 순탄하게 진행될지, 또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유럽이 ‘시계(視界) 제로’의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숱한 경고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은 ‘대영국(Great Britain)’을 ‘작은 잉글랜드(Little England)’로 축소시킬지 모르는 브렉시트를 과감하게 선택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영국인들 몫이다. 경솔하게 국민투표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민심의 역풍을 맞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투표 결과 다수가 EU 잔류를 희망한 것으로 드러난 스코틀랜드나 북아일랜드 주민의 민심을 수습하는 것도 영국인들 스스로 알아서 할 문제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영불해협을 넘어 유럽과 전 세계에 미칠 브렉시트의 후폭풍이다.
당장 EU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경제난 속에 난민 유입과 테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에 브렉시트가 ‘도미노 효과’를 일으켜 EU 내 다른 나라로 이탈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음 차례는 그리스·오스트리아·네덜란드·체코가 될지 모른다. 프랑스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미 이들 국가에서는 반(反)이민과 배타적 국수주의를 내세운 극우파 정당들이 급속히 세력을 넓혀 가고 있다.
재정위기와 그리스 사태를 거치며 유럽 단일통화는 근본적 결함을 드러냈다. 시리아와 북아프리카 난민 사태, 이슬람국가(IS) 테러에 대처하는 EU의 능력은 실망스러웠다. EU 체제에 대한 회의가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가운데 외국인 때문에 일자리를 잃거나 잃을 위기에 처한 노동자 계층의 불만이 회원국의 주권을 속박하는 EU를 향하면서 브렉시트의 가장 강력한 추동력이 됐다.
EU는 근본적인 체제 개혁을 통해 유럽 통합과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된 유럽인들의 불만을 어루만지면서 회원국의 추가 이탈을 막아야 하는 힘겨운 도전에 직면했다. 이 도전에 실패한다면 다시는 어리석은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고, 유럽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이루고자 창설한 EU가 파국을 맞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영국은 19세기 말 시작된 제1차 세계화와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정부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발원지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가세하면서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신자유주의는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했다. 그랬던 영국이 브렉시트를 통해 고립을 선택한 것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를 주도해온 개방적 자유주의 시대가 저물고, 자국 중심의 폐쇄적 신(新)고립주의 시대가 열리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신고립주의 색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서 한·미 동맹까지 기존의 동맹체제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멕시코 이민자와 무슬림에 대한 국경 통제 의지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까지 자유무역 질서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브렉시트에 이어 ‘45대 미 대통령 트럼프’까지 현실화한다면 신고립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대선후보가 될 걸로 예상한 사람이 거의 없었듯이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걸로 본 사람도 많지 않았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환멸을 등에 업고 포퓰리즘이 맹위를 떨치면서 통념과 상식을 깨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신고립주의의 등장은 한국을 지탱해온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개방적 자유주의의 토대 위에서 그나마 여기까지 발전했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 되는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치에서 안보, 경제에서 외교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따져보고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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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한계를 보인 유럽의 정치통합 1993년 출범한 유럽연합은 현재 28개 회원국의 연합체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유럽인들이 평화와 번영을 위해 장기간 노력해온 공동 결과물이다. 유럽연합은 회원국들 간의 공동정책 영역을 경제, 정치, 사회, 외교안보에 이르기까지 실현하고자 하는 높은 수준의 공동체이다. 그러나 이번 브렉시트에서도 보았듯이, 개별 국가의 주권을 초국가적 형태로 융합하는 문제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공동정부를 지향하는 유럽연합은 “상품, 노동, 서비스, 자본 등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 시장” 설립을 목표로 하는 규범을 제정하였고, 이 규범을 회원국에 강제하고 있다. 이것이 영국 정부가 산업정책, 이민정책, 재정정책 등을 자율적으로 시행할 수 없었던 배경이 되었다. 또한 회원국들 간의 자유무역은 기존의 국가 간 경제 격차를 더 벌려놓았고 개방적 이민정책이 유발한 동유럽 국가의 이주민으로 인해 재정부담과 문화적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상위 경제력 국가에는 분담금 손실 및 외국인 혐오 문제가, 하위 경제력 국가들은 자유경쟁에서의 도태와 박탈감이 누적되었다. 지금의 제도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여기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극우파 세력들의 자국우선주의가 힘을 얻고 있는 현재, 유럽 통합의 꿈이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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