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20~2025년 대학통합네트워크 현실화 경로와 방안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등교육의 주요 개혁 담론 가운데 하나인 ‘대학통합네트워크’가 총선을 앞두고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학서열화가 유발하는 적폐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통합네트워크를 통해 아예 ‘명문대’의 공급을 늘리는 ‘양적완화’ 정책을 쓰자는 주장도 나온다. 한 해 3조~5조 정도의 예산만 증액해도 거점 국립대학 9곳을 묶어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수준의 ‘상향평준화’된 대학들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19일 교육혁명포럼·한국교육개혁전략포럼·민주평등사회를위한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전국교수노동조합·전국대학노동조합·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등 교육 관련 단체들은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영국 정의당 의원과 함께 국회의원회관에서 ‘2020~2025년 대학통합네트워크 현실화 경로와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대학통합네트워크는 국공립대 위주로 공동 입시, 공동 학위 운영 등으로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 수직적인 대학서열화를 극복하고 고등교육을 혁신하자는 담론이다. 이 담론이 처음 나온지 20여년이 다 되어가지만, 교육계 안에서도 의견들이 엇갈리고 정치권에서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여태껏 제대로 추진되어본 적이 없다. 이날 행사는 총선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이 담론을 현실화시킬 방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열렸다.
발제를 맡은 김종영 경희대 교수(한국교육개혁전략포럼 정책위원장)는 대학통합네트워크가 한국 사회의 주된 모순인 ‘다중적 독점체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책적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법학자 조지프 피시킨의 ‘병목사회론’에 착안해, 김 교수는 우리나라 대학체제가 “광범위한 기회에 도달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좁은 지점”, 곧 병목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짚었다. 하나뿐인 기회구조에 기댄 병목은 지위권력(엘리트 대학), 공간권력(엘리트 대학의 지리적 집중), 평가권력(각종 시험), 계급권력(사교육비·대학등록금), 직업권력(노동시장에서 유리한 학위) 등의 독점을 유발한다. 그러나 ‘누구나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식의 형식적 공정성이 이를 덮는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아예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학위·학벌이라는 상징자본의 공급을 확 늘려서 그 가치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거점 국립대들을 대학통합네트워크로 묶고 이들을 모두 우수한 대학으로 만들어버리면, 병목에 기댔던 독점 효과가 현저히 떨어질 거라는 주장이다. 그는 10개의 거점 국립대들을 묶은 뒤 3조~5조 정도의 예산을 증액해 질적 향상을 이루는 것을 1단계로, 수도권 대학들이나 공영형 사립대 일부까지 네트워크에 참여시키는 것을 2단계로, 독립 사립대들까지 포괄하는 것을 3단계로 삼는 등 프로젝트의 단계별 추진을 주장했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체제를 사례로 들어, 대학통합네트워크는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함께 발제를 맡은 임재홍 방송대 교수(교육혁명포럼 연구위원장)는 그동안 대학통합네트워크 담론이 현실화되지 못한 배경에 대해 짚었다. 대학통합네트워크 담론 일부는 ‘국립대 연합정책’ 등으로 교육부에 의해 추진된 바 있지만, 임 교수는 “애초 취지와는 다르게 국립대 정원감축 등 구조조정 수단으로 쓰였다”고 비판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국립대학 육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대학통합네트워크 담론과는 내용이 다르다. 임 교수는 또 “대학 평준화에 대한 사회 일부의 거부감, 제도 도입에 따른 혼란, 국립대학 서열화에 따른 서열 높은 국립대 구성원의 반대 등으로 추진 동력을 얻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사실 대학통합네트워크에 대해서는 서울대 포함 여부, 단계적 추진 여부, 대학 입시 정책과의 관계 등 세부적인 설계를 놓고 교육계 내부에서도 여전히 이론이 많다. 이날 토론에서도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러가지 의견이 엇갈리는 등 이런 부분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김명연 전국교수노조 정책실장은 전국적인 네트워크, 단계별 추진, 연구중심대학 지향 등에 문제가 있다며 김종영 교수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태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부위원장은 “1단계 거점 국립대 연합이 성립한 이후 그 체제가 그대로 고정되어서 사립대의 참여로 확대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만 참석자들은 대체로 교육계 내부에서 서로의 차이를 더 벌릴 것이 아니라 외부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기 위한 고민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김진균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부위원장은 “이젠 이론을 다듬는 것보다도 대학통합네트워크를 필요로 하는 사회구조, 여론구조 등 환경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다. 어떻게 하면 고등교육 혁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광범위하게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숙제”라고 지적했다. 김학윤 경기여고 교사는 “여러가지 이론들이 많은데, 지금은 차이보다 큰 틀이 더 중요하다. 세세한 안을 따지기 보다는 대학통합네트워크를 추진하는데 부딪친 장벽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고민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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