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좌담] 교사들이 말하는 ‘초유의 원격수업’
“학습 플랫폼 가입·수강신청 등
전화해 자는 아이들 깨워 확인
마치 교무실이 콜센터 같았다”
“기술적 접근 치중된 IT활용
시공간 제약 넘은 장점 바탕
교육철학 담을 그릇 만들어야”
“학습 플랫폼 가입·수강신청 등
전화해 자는 아이들 깨워 확인
마치 교무실이 콜센터 같았다”
“기술적 접근 치중된 IT활용
시공간 제약 넘은 장점 바탕
교육철학 담을 그릇 만들어야”
20일부터 초등학교 1~3학년을 포함한 전국 모든 초·중·고 학생이 원격수업을 받고 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된 사상 초유의 원격수업 앞에서 당분간 학교 현장의 혼란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좌충우돌하는 배의 키를 잡고 있는 건 전국 43만여명의 교사들이다. <한겨레>는 지난 17일 서울 중랑구에 있는 신현고에서 김현(영어과, 1·3학년 교과), 노나리(역사과, 3학년 담임), 정한나(영어과, 1학년 담임), 김웅(지리과, 1·3학년 교과) 교사를 만나, 온라인 개학의 현실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 교무실이 콜센터 같았던 1주일
사회 고등학교 3학년의 경우 온라인 개학을 시작한 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고 실시하는 과정은 어땠나?
김현(이하 현) 요새 고등학교는 선택과목이 많이 확대되어 학생들마다 시간표가 제각각이다. 전체 학생이 8개 과목으로 흩어질 때도 있다. 그러니 학생들마다 받아야 하는 교과서나 학습지가 제각각이다. 온라인 개학에 앞서 교과서를 배부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교사들이 며칠 밤낮 달라붙어 전교생 600여명의 교과서와 2주치 학습자료를 학생별로 일일이 분류하고, 이를 우편으로 보내야 했다.
정한나(이하 정) 우리 학교는 네이버 카페를 기본 플랫폼으로 쓰고, 거기서 <교육방송>(EBS) ‘온라인 클래스’ 등 개별 교과 교사들이 각각 쓰는 학습 플랫폼을 안내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1학년 담임이라 현재 아이들로 하여금 자기 선택과목별로 해당 플랫폼에 가입할 수 있게 확인하고 안내하는 게 주된 일이다. 이번주까지는 다 가입을 시켜야 하는데, 과연 얼마나 가능할지 걱정이다.
노나리(이하 노) 3학년 담임이라 먼저 해봤다. 지난 일주일이 전쟁 같았다. 월요일에 아직 학습 플랫폼 가입을 안 했거나 승인 신청을 안 한 애들 명단이 과목별로 속속 전달됐다. 플랫폼이 다양할 뿐 아니라 온라인 클래스의 경우엔 과목마다 승인 신청을 하고, 각 교과 교사로부터 승인을 받은 뒤 또다시 수강신청을 해야 하는 등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게다가 3학년 전체 과목이 26개이고, 학생별로 시간표가 다 다르다. 자기가 선택한 과목 뭔지 모르는 애들도 많다. 사실 학교에 나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인데, 그게 안되는 거다. 단톡방에 공지 올려도 대답 없으면 읽었는지 여부도 알 수가 없다. 결국 아이들에게 일일이 전화 돌리고, 안 받으면 학부모에게도 전화를 해야 했다. 오후에도 자고 있는 애들이 많아, 한동안 “자니?”로 통화를 시작하기 일쑤였다.
현 이번 온라인 개학을 두고 저학년의 경우엔 ‘부모 개학’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고등학교의 경우엔 ‘담임 개학’이 아니었나 싶다. 전화해서 잠자는 학생들 깨우고 원격교육 플랫폼에 가입시키는 게 한동안 담임 교사들의 주된 업무였다. 오죽하면 “학년부실이 콜센터 같다”는 말도 나왔다.
노 온라인 개학하면서 교사들에겐 퇴근이 없어졌다. 잠잘 때 빼고는 계속 학생들 문의를 받는다거나 퇴근하더라도 집에서 수업 준비를 하거나 하는 상황이다. 생각해보니 학생 관리, 학습지 제작과 배부, 학습 영상 제작과 편집, 시스템 관리 등 대형 학원에서 나눠서 하는 일을 교사 혼자 다 하고 있는 셈이더라.
■ 고층빌딩 속 판잣집처럼 보이더라도
사회 교사들에게 원격수업은 무척 생소한 일이었을 텐데.
김웅(이하 웅) 올해 3월에 전입 와서, 학생들 만나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수업을 준비해야 해서 당황스러웠다. 1시간이라도 아이들 직접 만나서 얼굴과 표정을 보면 느껴지는 게 있는데, 그런 게 전혀 없어서 고민이 컸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지루해하지 않을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교육방송 콘텐츠를 기본으로 하되, 그게 잘 이해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한 콘텐츠와 더 깊은 학습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한 콘텐츠 두가지를 직접 만들고 있다. 삼각대 하나 놓고 직접 수업 영상 만들어보니, 대규모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만든 사교육 인터넷 강의 등에 견줘 조명부터 촬영 방법에 이르기까지 ‘때깔'부터 달랐다. 고층건물 사이에 끼인 판잣집처럼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그런 걸 멋들어지게 만드는 게 과연 교사의 일인가 싶기도 했다.
정 교사들이 교육방송 강사처럼 유려하고 ‘있어 보이는’ 콘텐츠를 만들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에겐 ‘학생들의 수준과 성향을 잘 아는 건 바로 우리’라는 믿음이 있다. 일각에선 ‘실시간 쌍방향’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시간 수업을 통해서는 모든 학생과의 고른 상호작용이 어려울 뿐더러 학생간 상호작용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많이 있다. 과제 제시형 수업도 학생의 깊은 통찰을 이끌어내는 방법으로 쓸 수 있다. 모든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게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등교수업을 시작하면 원격수업 내용을 어떻게 평가로 반영할 것인지, 중간고사는 어떤 방식으로 치러야 하는지 등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모든 학생의 수준과 성향에 맞춰 촘촘하게 설계를 하는 게 관건이다.
노 온라인 개학으로 의도치 않게 수업을 공개하게 되니, 일각에서는 “교사들 실력이 탄로 나게 됐다” “그동안 편하게 지냈다”는 식의 말들도 나왔다. 학부모들이 인터넷 카페 같은 데에서 교사들이 만든 콘텐츠를 놓고 안 좋은 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시선이, 교사들이 지레 겁먹고 위축되게 만들었다. 어제부터 학생 한명씩 만나는 개별 상담을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뭐라도 해야 할 것처럼 불안했는데, 온라인 개학이라도 해서, 학교 와서 상담이라도 해서 너무 좋다”고 입을 모으더라.
현 일주일에 한번씩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고 있다. 지난번 첫 수업에 28명 가운데 25명이 들어왔는데, 화상을 통해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 제각기 다르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아이는 침대에 있고 어떤 아이는 길거리에 있더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와서 평등하고 보편적인 교육을 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게 됐다. 원격수업이 미래가 될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래서 학교는 사라지지 않겠구나' 생각도 들었다. 원격수업으로 학습의 패러다임은 바뀔 수 있어도, 공동체와 배려, 다름의 가치 등을 체험하게 하는 학교의 패러다임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 원격수업 경험 다양하게 활용해야
사회 그렇지만 당분간 어쩔 수 없이 원격수업만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정 어쩔 수 없이 원격수업만 해야 하는 상황에서, “온라인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최대한 오프라인에서 하던 교육을 비슷하게 구현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 됐다. 아이들에게도 “정확한 답을 제시하는 게 수업 목적이 아니다. 선생님 설명에 비판적으로 도전하라”고 당부했다. 지식 전달 일변도의 환경 속에서 조금이라도 과정 중심의 평가를 도입해보려는 게 교사들의 마음이다.
현 그동안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교육이 너무 기술적인 접근으로 흘렀다고 본다. 학교 현장에 ‘전자칠판’ 구매를 강요하는 식으로 도구적인 효용에만 집중했을 뿐 교육 철학과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 형성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정보통신기술 활용 교육, 스마트 교육, 이러닝 등의 개념과 정책들은 이를 담아내지 못했다.
웅 결과 중심의 지필평가를 강조하는 시대가 지나가고, 과정 중심의 평가가 떠오르던 상황이었다. 특히 3~4월은 그런 과정 중심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는데, 코로나19로 그게 사라지고 지식 전달과 지필평가만 남게 됐다. 온라인 교육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예컨대 이번에 원격수업 준비를 하면서, 앞으로 등교수업을 시작하더라도 수업 장면을 녹화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온라인 교육은 무엇보다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일각에서 실시간 쌍방향을 강조하는데, 그건 공간적인 제약만 일부 뛰어넘는 방식일 뿐이다. 대상과 목적에 맞게 원격수업 방식을 적절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노 원격수업을 준비하면서 교사로서 무력감을 느꼈고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었다. 그런데 설문조사를 실시한 뒤 “어떻게 해주셔도 도움 될 것 같다”는 아이들의 따뜻한 말에 힘을 얻었다. 상호작용이 한번이라도 있었으니까, 그다음에 수업 영상 녹화할 때에는 예전에 수업하듯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기도 했다. 화려한 영상과 애니메이션 같은 것들, 부분적으로 활용하면 수업을 풍성하게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걸로 아이들을 계속 집중시킬 수는 없다. 요즘 애들이 스마트폰에 친숙하다지만, 사실 그걸 활용하는 역량은 게임처럼 흥밋거리 찾기에만 국한되어 있다. 교과 지식의 전달보다 어떻게 하면 디지털에서 적절한 정보 습득을 할 수 있을지 등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 대목이다.
현 학생·학부모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일부 착시 현상이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교사가 43만여명이고, 한 개인이 12년 동안 만날 수 있는 교사들도 제각각이다. 그중 부정적인 경험을 안겨준 교사들이 교사 전체를 대표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지금은 교육이 욕망뿐 아니라 공포까지 자극하는 비즈니스가 됐다. ‘공부를 못하면 어떻게 된다'는 식이다. 이런 환경에서 교사에게 거는 기대는 만족되기 어렵고, 교육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다. 교사들에게 이번 온라인 개학은 ‘원격수업, 별 거 아니었네' 느끼고 새로운 도전의식을 불어넣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많은 교사들이 등교수업 뒤에도 보조적 수단으로 원격수업을 활용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웅 사실 현재의 원격수업은 준비 없이 강제된 미래다. 등교수업과 병행되어야만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 다만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병행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개인적으론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와서 수업을 하기보다는 비교과 활동을 주로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형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 일각에서 ‘월급만 받고 하는 일이 없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데 따른 영향도 있겠지만, 개학 연기가 계속되는 동안 교사로서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정말 컸다. 온라인 개학이 결정된 뒤엔 이를 준비하느라 스트레스는 극심해졌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데에 안도감을 느꼈다. 교육의 가치가 무엇인지, 교사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학생·학부모·교사가 서로를 믿고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
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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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랑구 신현고에서 김웅(왼쪽부터), 김현, 정한나 교사가 온라인 개학, 원격수업 실시의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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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수업을 준비하고 있는 신현고 교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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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중랑구 신현고에서 한 담임 교사가 학생과 개인별 면담을 하고 있다. 교사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학교가 고팠던 아이들이 온라인 개학, 면담이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입을 모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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