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러 네트워크 ‘학교너머’에서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전국 홈스쿨러들을 위한 캠프를 마련한다.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이 충북 제천 간디청소년학교 근처에서 눈썰매를 즐기고 있다. 학교너머 제공
홈스쿨 제2의 대안교육 ③홈스쿨 네트워크
제천서 열린 ‘가족캠프’ 가보니…
“1천 개의 홈스쿨링 가정이 있다면 1천 개의 홈스쿨링 방식이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홈스쿨링을 하는 부모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홈스쿨러들은 딱딱한 공교육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공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학교를 그만둔다. 그러나 부모의 교육철학이나 아이의 특성,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와 환경에 따라 아이들의 삶의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목격된다. 아이가 배우고 싶어하는 것을 모두 지원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가정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학교 안에서건 밖에서건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 1월15일~17일 충북 제천에 있는 간디청소년학교에서 홈스쿨링 네트워크인 ‘학교너머’가 주최하는 ‘홈스쿨링 가족 캠프’가 열렸다. 가깝게는 근처 제천 시내에 사는 가족부터 멀리 부산과 경기 북부에 이르기까지, 산 넘고 물 건너 캠프에 참여한 참가자들로 방학 중인 학교가 들썩거렸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부모들은 부모들끼리 모여 그동안 인터넷으로만 주고받던 이야기를 앞다퉈 풀어놓는 자리에서, 몇 가족을 만나 사연을 들어보았다.
명지네 가족
“귀농뒤 전학 간 학교서 괴롭힘 실컷 놀렸더니 영어공부 시작”
올해 15살이 된 명지네는 충북 봉화에 산다. 2000년 아버지 장창호씨와 어머니 차정원씨가 귀농을 결심하면서 단양으로 이사를 했고, 2003년 다시 봉화로 옮겼다. 초등 5학년이던 명지는 봉화로 전학을 한 뒤 몹시 힘들어 했다. “6학년 언니들이 신고식을 하라며 괴롭힌다”는 것이다.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는 곳에 사는 터라 명지가 학교까지 가는 일 자체가 부담스런 상황이었다. 6학년 진학을 앞두고 명지가 학교를 그만두던 날, 가족들은 ‘탈학교 파티’를 열었다. ‘믿는 구석’이 있긴 했다. 어머니 차씨가 귀농하기 전 초등학교 교사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엄마가 초등학교 교사였다고 하면 집에서도 애들을 잘 가르치겠다며 부러워해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요. 농삿일이 바쁜데 아이를 하루종일 데리고 있을 수도 없고, 학교에서 하던 대로 시간표를 짜서 아이 공부를 가르치면 집이 곧 학교가 되니 명지가 더 답답해 할 게 뻔하잖아요. 처음에는 이것저것 해보라고 시키고 점검도 했는데, 한 달 만에 둘 다 지쳐 버렸죠.”
그래서 명지는 하루종일 놀았다. 그러다 불쑥 ‘영어공부를 하겠노라’고 했다. ‘동방신기’때문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따라부르고 싶은데, 영어 가사를 도통 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명지는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보면서 영어 공부에 열을 올렸다. 학교너머 캠프에 참여한 뒤 또래 홈스쿨러들과 연락을 하면서 이것저것 관심을 갖고 욕심을 내는 일도 많아졌다. 차 씨는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면 어느 부모든 조바심이 나고 불안하게 마련이지만, 아이 스스로 하고 싶어야 무언가 하게 되니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아이를 믿어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소영이네 가족 “공부가 즐겁다는 천재 드문데 경쟁의 지옥 겪게 해야 하나” 경기 고양에 사는 소영이는 고등학교 학력 인정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14살인 소영이가 중학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고교 검정고시까지 치르는 것은 ‘천재’라서가 아니다. 입시 전문가인 아버지 이재건씨의 독특한 철학 때문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상위 1% 안에 드는 아이들 중에 부모와 심각한 갈등을 겪지 않는 아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학교가는 것이 즐겁고 공부가 재미있다는 ‘천재’들은 아주 드문데, 우리 소영이는 그런 천재가 아닙니다. 누구를 위한 경쟁인지도 모르는 지옥을 6년이나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학교를 그만두게 했지요.”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집에서 아버지와 공부하는 소영이는 가끔 교복을 입은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막상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 학교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또래 친구들이 학교와 학원으로 ‘뺑뺑이’를 도는 지난 열 달 동안, 소영이는 어림잡아 넉 달 가량 각종 캠프에 참여해 놀았고, 나머지는 책을 읽거나 검정 고시 준비를 했다. 아버지 이 씨는 잘라 말했다. “소영이가 대학에 갈 지, 언제 갈 지는 이번 검정고시 이후에 소영이가 결정하겠죠. 치열하게 경쟁해서 가는 대학은 안 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만약 경쟁을 할거라면 자신이 누구를 위해 왜 경쟁을 하는지 스스로 알고 하길 바랍니다. 고등학교를 일찌감치 졸업한 셈이니,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남보다 많겠죠. 제가 소영이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은 그것 뿐입니다.” 수민이네 가족 “중학교 진학뒤 가치관 혼란 홀로 배우면서 자신감 쑥쑥” 경북 영천에 사는 수민이는 올해 16살이다. 동생 민정이는 집 근처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수민도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한 학년에 한 학급씩, 한 반에 학생이 열 명쯤 되는 ‘작은 학교’다. 초등학교 졸업 뒤 규모가 큰 중학교에 진학한 수민이는 학교에 다녀온 뒤 “이상하다”고 했다. “한글로 ‘아이 엠 어 보이’라고 16장이나 ‘빽빽이’ 숙제를 하라는데 꼭 해야 돼?” “인체에 대한 공부를 한다면서 학생을 앞에 세워놓고 여기저기 만지면서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어.” 어머니 서경희씨는 담임 교사와 의논도 하고, 학교쪽에 항의도 해 보았지만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았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지닌 수민이가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걱정이었어요.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는데, 어느날 수민이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더군요.” 수민이는 요즘 중학 학력 인정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영어는 무척 잘한다. 한글 자막이 없어도 외화를 보는 수준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수민이를 위해 초등 5학년 때부터 외화 비디오를 사준 것이 부모의 유일한 ‘뒷받침’이었다. 나머지 과목은 인터넷으로 교육방송을 보면서 공부를 한다. 애초 수학과 과학이 어렵다던 수민이는 “책을 한 번 더 보고 이야기 하겠다”고 하더니, 같은 책을 세 번씩 읽은 뒤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혼자서 해도 이해가 돼. 학원 갈 필요 없겠어.” 서 씨는 수민이가 모든 과목에서 뛰어난 아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목표를 세우고 해냈다는 사실이 수민이에게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어요. 그 중에는 집을 ‘명문 사립학교’와 맞먹는 수준으로 만든 부모들도 있었어요.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르쳐주고, 해외 어학연수도 보내고. 우리는 그럴 수가 없어요. 이번에도 가족 캠프에 올 지, 아니면 수민이만 계절학교에 참여할 지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했거든요. 학교너머 캠프는 저렴한 편이지만, 두 가지 다 할 수는 있는 형편은 아니니까요. ” 서 씨는 “부모가 아이를 직접 가르칠 수 있거나 경제적으로 넉넉한 이들만 홈스쿨링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처지에 놓인 홈스쿨러들이 서로 도울 수 있는 네트워크가 활발해졌으면 한다”고 했다. 제천=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지난 15일에 열린 학교너머 가족 캠프에 참여한 가족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미경 기자
그래서 명지는 하루종일 놀았다. 그러다 불쑥 ‘영어공부를 하겠노라’고 했다. ‘동방신기’때문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따라부르고 싶은데, 영어 가사를 도통 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명지는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보면서 영어 공부에 열을 올렸다. 학교너머 캠프에 참여한 뒤 또래 홈스쿨러들과 연락을 하면서 이것저것 관심을 갖고 욕심을 내는 일도 많아졌다. 차 씨는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면 어느 부모든 조바심이 나고 불안하게 마련이지만, 아이 스스로 하고 싶어야 무언가 하게 되니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아이를 믿어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소영이네 가족 “공부가 즐겁다는 천재 드문데 경쟁의 지옥 겪게 해야 하나” 경기 고양에 사는 소영이는 고등학교 학력 인정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14살인 소영이가 중학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고교 검정고시까지 치르는 것은 ‘천재’라서가 아니다. 입시 전문가인 아버지 이재건씨의 독특한 철학 때문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상위 1% 안에 드는 아이들 중에 부모와 심각한 갈등을 겪지 않는 아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학교가는 것이 즐겁고 공부가 재미있다는 ‘천재’들은 아주 드문데, 우리 소영이는 그런 천재가 아닙니다. 누구를 위한 경쟁인지도 모르는 지옥을 6년이나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학교를 그만두게 했지요.”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집에서 아버지와 공부하는 소영이는 가끔 교복을 입은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막상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 학교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또래 친구들이 학교와 학원으로 ‘뺑뺑이’를 도는 지난 열 달 동안, 소영이는 어림잡아 넉 달 가량 각종 캠프에 참여해 놀았고, 나머지는 책을 읽거나 검정 고시 준비를 했다. 아버지 이 씨는 잘라 말했다. “소영이가 대학에 갈 지, 언제 갈 지는 이번 검정고시 이후에 소영이가 결정하겠죠. 치열하게 경쟁해서 가는 대학은 안 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만약 경쟁을 할거라면 자신이 누구를 위해 왜 경쟁을 하는지 스스로 알고 하길 바랍니다. 고등학교를 일찌감치 졸업한 셈이니,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남보다 많겠죠. 제가 소영이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은 그것 뿐입니다.” 수민이네 가족 “중학교 진학뒤 가치관 혼란 홀로 배우면서 자신감 쑥쑥” 경북 영천에 사는 수민이는 올해 16살이다. 동생 민정이는 집 근처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수민도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한 학년에 한 학급씩, 한 반에 학생이 열 명쯤 되는 ‘작은 학교’다. 초등학교 졸업 뒤 규모가 큰 중학교에 진학한 수민이는 학교에 다녀온 뒤 “이상하다”고 했다. “한글로 ‘아이 엠 어 보이’라고 16장이나 ‘빽빽이’ 숙제를 하라는데 꼭 해야 돼?” “인체에 대한 공부를 한다면서 학생을 앞에 세워놓고 여기저기 만지면서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어.” 어머니 서경희씨는 담임 교사와 의논도 하고, 학교쪽에 항의도 해 보았지만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았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지닌 수민이가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걱정이었어요.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는데, 어느날 수민이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더군요.” 수민이는 요즘 중학 학력 인정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영어는 무척 잘한다. 한글 자막이 없어도 외화를 보는 수준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수민이를 위해 초등 5학년 때부터 외화 비디오를 사준 것이 부모의 유일한 ‘뒷받침’이었다. 나머지 과목은 인터넷으로 교육방송을 보면서 공부를 한다. 애초 수학과 과학이 어렵다던 수민이는 “책을 한 번 더 보고 이야기 하겠다”고 하더니, 같은 책을 세 번씩 읽은 뒤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혼자서 해도 이해가 돼. 학원 갈 필요 없겠어.” 서 씨는 수민이가 모든 과목에서 뛰어난 아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목표를 세우고 해냈다는 사실이 수민이에게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어요. 그 중에는 집을 ‘명문 사립학교’와 맞먹는 수준으로 만든 부모들도 있었어요.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르쳐주고, 해외 어학연수도 보내고. 우리는 그럴 수가 없어요. 이번에도 가족 캠프에 올 지, 아니면 수민이만 계절학교에 참여할 지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했거든요. 학교너머 캠프는 저렴한 편이지만, 두 가지 다 할 수는 있는 형편은 아니니까요. ” 서 씨는 “부모가 아이를 직접 가르칠 수 있거나 경제적으로 넉넉한 이들만 홈스쿨링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처지에 놓인 홈스쿨러들이 서로 도울 수 있는 네트워크가 활발해졌으면 한다”고 했다. 제천=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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