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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수능 성적표 도착? 수능창시자 “이런 수능 할 필요 없어”

등록 2020-12-23 07:59수정 2020-12-23 13:23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
수능창시자 박도순 교수 인터뷰
“수능, 처음과 견줘 99% 달라져
사람들…점수에 대한 미신 있어
수능은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 아냐”

수능, 대체 누가 만든 거? 한겨레TV
수능, 대체 누가 만든 거? 한겨레TV
한국인의 인생에 깊게 관여한 시험 가운데 하나는 수능이지 않을까요. 지난 26년 동안 수능을 본 국민이 1천만명은 거뜬히 넘어 보입니다. 수능 수험생이 가장 많았던 해는 2000년으로 86만여명이었고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올해는 역대 최소 인원인 49만여명이 수능을 봤죠.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고등학생에게 수능은 잠시나마 삶의 전부였을 텐데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초대 원장이자 ‘수능창시자’로 불리는 박도순 명예교수(고려대 교육학과)는 <한겨레TV>와 만나 수십년간 수능을 입시 평가 잣대로 믿어온 이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우선 그는 지금 수능의 모습은 “처음과는 모습이 99%가 달라졌다”고 밝혔습니다. 초기 수능은 지금처럼 점수로 순위를 매기지 않고, 대학에 갈 정도의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만점을 받을 수 있게 설계됐다고 합니다.

또 수능점수가 학생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냐는 의문까지 나왔는데요. 그는 “(수능 같은) 지필검사, 선다형 검사가 가진 한계가 크다”며 “(사람들은) 점수에 대한 미신이 있다. (수능은) 측정 오차가 크다.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 “현재 사회상과 대학 성격을 본다면 지금 같은 수능은 할 필요가 없다”며 수능폐지론까지 주장했습니다.

수능을 만든 사람조차도 비판하는 현재의 수능은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수능의 기원부터, 앞으로 한국교육이 나아갈 방향까지, 이 모든 이야기를 수능창시자 박도순 교수로부터 자세히 들어보시죠. 인터뷰 요약본은 영상으로, 전문은 아래 기사로 정리했습니다.

영상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M2k5mLAw8PU

수능과 같은 선다형 검사가 인간의 학력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박도순 교수. 한겨레TV
수능과 같은 선다형 검사가 인간의 학력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박도순 교수. 한겨레TV

<인터뷰 전문>

―‘수능창시자’로 알려져 계시는데,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교수님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관장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초대원장이고,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명예교수로 있는 박도순입니다.”

―혹시 올해 나온 수능 문제 보셨나요?

“신문에 난 거 하나 딱 봤는데요. 답지가 4개인데 하나가 너무 분명해서 누구도 답을 다 맞힐 수 있는…”

―아 국사 문제 말씀하신 거죠?

“네.”

―그 문제는 암기문제인 것 같던데요?

“그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수학능력시험이 암기문제를 내지 않겠다는 이유로 출발했는데요. 20여년 간 수능이 바뀌어오면서 완전히 암기와 학력평가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현재 변해버린 수능을 점수로 매긴다면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처음과 비교한다면 99% 달라졌습니다.”

―점수로 매기면 1점?

“글쎄요. 처음과 비교한다고 하면 완전히 달라졌다고 볼 수 있고요. 다만 수능의 역할이나 기능을 다르게 규정하면 다르게 대답할 수도 있죠.”

원형은 언어·수리 두 과목

―애초 구상할 때, 수능의 역할과 기능은 어떠했나요?

“처음에 수능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면 누구나 답할 수 있는 통합 교과적인 문제로 출제한다. 이렇게 기획돼있었습니다. 통합 교과라는 것은 한 교과목의 시험은 안 보겠다는 거죠.”

―통합 교과 적인 문제라는 게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예를 들면, 비행기가 가다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비행기가 떨어진 이유는 물리적인 이유, 지구과학의 요소도 있고요. 과학의 모든 상황이 다 들어가죠. 경우에 따라 운전하는 사람의 심리상황까지 고려한 문제를 낸다고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안 되었죠. 지금은 완전히 다른 시험이 됐죠.”

―그럼 수능은 원래 한 과목이었나요?

“아닙니다. 처음에 만들어질 때는 언어와 수리, 두 과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언어능력은 무엇인가. 대학에 들어가서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언어능력입니다. 그래서 첫 문항부터 듣기를 시작했습니다”

―수리는요?

“당시 대학은 엘리트를 양성하는 기구로 생각됐죠. 논리적인 사고를 상당히 많이 갖춘 사람이 대학생이 되어야 한다. 논리적인 사고를 가장 잘 잴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게 수리가 됐습니다.”

―그런데 과목이 더 많아졌군요.

“둘로 딱 결정이 됐는데, 그 후에 영어가 붙어졌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만 해도 자연과학 계통에서는 우리말로 된 대학교재가 없어서 거의 영어로 된 교재를 썼습니다. 영어독해능력이 없으면 대학에서 공부하기 어렵다. 대학의 강력한 요구로 지금처럼 영어 말하기가 아니라 독해능력을 시험 보게 됐죠.”

―그리고 또?

“그러다 보니 또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과학계에서는 왜 과학을 넣지 않느냐. 우리나라 설립되면서 제일 먼저 나온 구호가 과학입국인데. 그래서 과학을 넣지만 과학과 좀 관련이 있다고 해서 과학탐구를 넣었습니다. 그런데 과학탐구를 넣다 보니 그다음에 사회과학을 한 사람들이 탐구라는 것은 원래가 사회과학 영역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사회탐구영역입니다.”

―학계의 영향을 받은 것이군요.

“네. 학계의 요구가 아주 강력해서, 당시 결정을 해야 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습니다. 결국 다 넣게 됐습니다.”

―그럼, 수능을 제안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인 건가요?

“아닙니다. 제일 먼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 교육개혁심의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월간지를 냈는데, 입시에 대해 뭘 좀 써달라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우선 잘 생각이 안 나 미국 입시제도를 염두에 둬서 에스에이티(SAT) 중심의 시험문제를 가져왔습니다. 이름 붙이기를 ‘대학적성검사‘를 실시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수능의 시작은 잡지에 낸 글이었군요?

“네. 그런데 그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이어받아 선거공약으로 넣었습니다. 그때 제가 연구책임자였습니다. 수학능력시험뿐만 아니라 대학입시 전반에 관한 것을 연구했죠. 거기에 수학능력시험 같은 것을 좀 집어넣었죠. 그래서 계속 그때부터 참여정부 끝날 때까지 제가 관여해 왔습니다.”

수능의 유래

―‘수능‘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에피소드가 좀 있습니다. 검사(test)라는 말을 붙이려면 특정한 특성이 있어야 하는데, 느닷없이 영어도 들어가다 보니 원래 재려고 했던 것과는 변질이 되었습니다.”

―대학적성검사(test)라는 말은 쓸 수 없게 됐군요.

“네. 당시 정원식 문교부 장관이 저를 불러 이 문제를 장관실에서 같이 상의하자고 했습니다. 그 와중에 교육개발원장을 했던 이영덕 전 총리에게도 전화했더니, 그분도 왔습니다. 셋이 앉아 한 2∼3시간 이야기했습니다. 이름을 뭐라고 하냐 하다가, 대학에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보면 대학수학능력이다고 했습니다. 다만 검사는 아니라고 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지었습니다.”

―수능이라는 명칭은 세 명이 2∼3시간 동안 논의해 결정된 것이군요. 수능 첫해 1994년에 꽤 혼란스러울 거라 생각하는데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우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본다고 하니까. 제일 먼저 학교현장에서 반발이 나왔어요. 왜냐, 선생님들이 그런 시험문제를 어떻게 가르치느냐. 가르칠 방법이 없다. 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절대로 그렇게 가르치지 말아라”

―수능을 가르치지 말라니요?

“왜냐면, 고등학교 교육과정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또 수능은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한 특징이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거에요. 수능은 대학에서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어요. 현재까지도 자율적으로 주어진 거죠”

―대학 쪽은 반응은 어땠나요?

“대학 쪽 반발도 컸어요. 원래는 정부에서 대학이 그런 문항을 만들기 어려우니까. 수능을 만들어 줄 테니 쓰고 싶으면 써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대학은 우리가 자율적으로 본고사를 보면 어떻겠냐. 그때 본고사가 금지됐거든요. 그래서 수능도 시행하고 본고사도 허락했습니다.”

―아…본고사라니요.

“그러니 또 어떤 현상이 일어나냐면, 대학 쪽에서 그렇게 강력하게 본고사를 요구하더니 대부분 대학이 본고사를 안 보겠다는 겁니다. 시험 관리를 엄격하게 해야 하는데 돈이 엄청 들어가요. 최소한도로 10억원씩 쓰니까 대학에서 우리 못하겠다. 주요 대학만큼은 제발 좀 본고사 쳐달라, 당신들이 요구해서 하자고 했는데 안 하면 어떻게 되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그 당시 대학은 학생을 뽑을 능력이 없던 건가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대학이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학생을 평가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문제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군요?

“고등학교 선생님에게도 시험문제를 보여주고 평가받아야 하는데 어렵죠. 미국에서도 이티에스(ETS)가 에스에이티(SAT)를 만든 이유가 있죠. 평가방법은 대학이 정하지만 문제를 만들어달라 부탁을 한 거죠. 수능도 원래 의도는 만들기 어려운 시험을 정부가 제공할 테니, 좋은 전형을 위해 가져다 쓰라는 뜻이었어요.”

―몇몇 대학은 수능점수 100%로 학생을 뽑은 경우도 있는데요.

“그거 하나를 가지고 판별을 하려니까 문제가 생긴 거죠. 그런 목적이 아니라 그냥 능력 있는지 알아보려면 쓸려면 쓰고 말라면 말라는 건데 다 대학이 쓰는 거예요.”

“완전히 공정한 시험은 없다”

―대학이 수능시험점수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유가 있죠. 왜냐면 전국단위 시험이라는 것이 수능밖에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수한 학생을 뽑는 게 그게 제일 낫다고 생각하니까 하지 말라 해도 가져다 쓰더라고요. 물론 요즘이야 전혀 다르지만요.”

―그러니까, 수능의 본래 취지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다?

“예. 왜 그런가 하면 수능은 대학에 들어가 ‘수학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거니까요.”

―그럼, 패스나 논패스의 성격이라는 건가요?

“이론적으로는 수학능력이 있으면 끝나는 거죠. 교수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지 평가하면 되니까요. 대부분 사람이 수능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게 정상이에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사람이 다 맞출 수 있는 문제가 수능이니까요.”

―대학은 그동안 수능 시험을 통해서 좋은 학생을 뽑았다고 생각할 텐데요. 수능이 학생의 능력을 평가할 수는 있는 건가요?

“어떤 종류의 시험이든지 우수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을 구분하게는 돼 있습니다. 시험문제를 어떻게 내든지 말이죠. 그런데 정확하게 구분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시험으로 학생의 능력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말씀이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시험이 무엇을 재고 있는가가 굉장히 중요한데요. 지필검사, 선다형 검사가 가진 한계가 매우 커요. 학력을 잰다고 하더라도 학력의 아주 작은 한 부분밖에 못 재요. 아무리 시험이 발달해도 그래요. 지필검사나 선다형 검사를 가지고 전체 학력을 잰 것처럼 보는 건 잘못된 거죠.”

―사례를 들어주신다면요?

“예를 들면 국어시험을 봤을 때 국어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국어능력이 있다고 보는 건데 그건 거짓말이에요. 왜 그러냐면 국어과 교육과정 목표는 굉장히 다양하게 돼 있어요. 그중에 ‘태도’부터 별의별 것이 다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시험으로는 지식 중에서도 아주 얕은 지식을 가려내는 방법밖에 없다고요.”

―학업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일은 불가능한 건가요?

“제가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 어떤 것에서도 완전히 공정을 담보하는 시험은 없습니다.”

―그럼 평가는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 거죠?

“미국에서 평가를 공부하니 먼저 철학이 나오더라고요. 모든 평가는 주관적이다. 다만 주관적인 것이 모여서 객관적으로 된다고 이야기한다고요. 그런데 평가에서 불공정한 걸 없애려면 여러 가지 장치가 필요해요”

―장치라면요?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평가자들 간에 점수 차이가 크게 나면 당연히 다시 평가하고요. 제가 작년에 고려대 총장을 만났더니, 평가자 1명을 두고 16명의 면접관이 2번씩 면접을 본 거예요. 한 사람당 32명이 면접을 한 거죠.”

대학은 교양을 가르치는 곳

―사람들은 그래도 수능점수가 공정하다고 믿는데요?

“공정하다고 믿는 건 미신 때문에 그러는데요. 점수에 대한 미신이 있습니다. 400점 만점이라고 하면, 390점과 380점 사이에 390점을 받은 학생이 더 우수한 것이냐. 그건 뭐 통계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안 그렇다는 거 다 압니다.”

―10점이나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건데요?

“학력이라는 걸 구성해보면 다 사람의 정신과정에 관한 것이라고요. 학력검사를 할 때 학력을 원래 못 재는 것도 문제이지만요. 원래 측정 오차가 커요. 정신과정 자체가 무엇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인데, 무엇을 잰다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참고자료일 뿐인 거죠”

―그럼, 점수로만 대학교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문제를 두고 학계에서 말은 나오지 않았나요?

“70년대에 그런 논의도 있었어요. 통계적으로 합격선 안에 있는 사람은 추첨해서 가르자. 구별도 안 되는 걸 구별한 것처럼 거짓말하지 말고. 390과 389가 아무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은 붙고 한 사람은 떨어지는 이런 불합리를 보고 있어야 하나 이런 거죠.”

―점수로만 합격 여부를 가르는 일은 불합리하다는 거군요.

“심지어 저는 정식으로 법원에 고소하겠다. 그게 정말 합리적이라면. 왜 뽑았냐면 능력의 차이가 있다고 보거든요. 대학에서는 점수 몇점으로 능력의 차이가 없다는 건 누구든지 다 알아요. 대학도 알고 다 아는데 눈 감고 있는 거예요. 믿을 게 하나도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예전 학력고사 때가 더 좋았다는 말도 나오는데요.

“대학에서 학력이 제일 중요한 요인이라면 학력고사 볼 수도 있어요. 그런 나라가 있고요. 대만도 전형적으로 학력고사 봐서 한줄로 세운다고요.”

―대만도 학력고사를 본다면 한국도 보면 되겠네요.

“그런데 학력고사냐 수학능력시험이냐, 우리가 무엇을 재려고 하느냐를 따지려면 대학이 무엇을 하는 곳이냐를 따져야 하는데요. 이미 25년 전 대학과 지금 대학은 많이 달라요. 변했다고요. 옛날 대학은 그래도 꽤 엘리트를 키우는 곳이라고 했다고요. 지금은 엘리트를 키우는 곳이 아니라고요”

―대학이 엘리트를 키우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는 곳이죠?

“일종의 교양을 가르치는 곳이라고요. 왜 우리나라에 대학이 이렇게 많냐. 기본철학이 바뀐 거라고 보는데, 대학은 엘리트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일종의 교양교육을 하는 곳이다. 교양교육은 온 국민이 다 필요하죠.”

―대학은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겠다고 말하곤 하는데요.

“창의력이면 창의력은 잴 수 있는 거예요? 경우에 따라서 창의력이 무엇인지도 몰라요. 비판적 사고력도 지필로 어느 정도 재는 건 가능해요. 그렇지만 1/5 정도밖에 못 재요.”

―대학의 목적이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인재를 기르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시험이 필요 없죠. 지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참고하는 대학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봤어요? 안 하는 학교가 훨씬 많습니다. 대학에 온다고 하면 시험이고 뭐고 그냥 받아들이는 게 우리 현실이에요. 학생 수는 적고 대학생 수는 훨씬 많은데요?”

―대학이 양극화된 것 같네요. ‘조국 사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수능을 확대하라고 밝혔죠.

“그래서 수능에 대한 모든 논의는 불행하게도 상위 몇 개 대학을 위한 논의만 계속하고 있죠. 언론도 마찬가지고요. 예를 들면, 이번 수능 시험이 쉬웠냐 어려웠느냐. 맨날 언론이 이 문제를 따진다고요.”

―언론을 지적하시니 좀 뜨끔하네요.

“수능 문제가 어렵냐 쉬우냐를 상위 몇 개 대학을 중심으로 해서 계속 논의한다고요. 전국 모든 학생을 위해서 수능을 만들라고 해놓고선…제가 언론사에 묻죠. 하위 30% 학생에게 관심을 가져보고 수능을 본 적이 있느냐. 그건 관심조차 없다고요.”

지금 같은 수능은 필요 없다?

―다시 돌아가면 이런 수능을 만들어 보겠다?

“현재 사회상과 대학 성격을 본다면, 지금 같은 수능은 할 필요가 없죠. 없습니다. 차라리 원래의 적성검사 수준으로 해야 하죠.”

―이유가 있다면요?

“왜냐면 수능이야말로 전국단위에서 학생들의 등수를 나눌 수 있으니까. 대학 서열화를 심화시키는 바로 이 수능이라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국가 단위의 시험은 좀 곤란하다는 생각을 해요. 지역 단위에서 다양한 시험을 만들어야 하는데, 또 그런 걸 만들면 대학에서 안 쓰죠.”

―그래도 요즘 청년들은 정시를 봐서 대학에 간 학생이 수시를 본 학생보다 더 똑똑하다고 믿는 거 같습니다.

“그거는 아무런 과학적인 근거가 없고요. 연구한 결과를 보면 학교 성적이 훨씬 연관성이 높습니다. 학교 내신성적이. 그런데 안 믿는다는데 방법이 없잖아요. 연구한 것도 안 믿는다는데 방법이 없잖아요. 그건 근거가 없는 거예요.”

―옛날이야기도 조금 듣고 싶은데요. 교수님 때 입시는 어떠했는지요?

“제가 1959년에 대학에 입학했거든요. 당시 대학생이 되는 학생의 비율은 전체에서 0.4%였어요. 시군구에서 한명 정도밖에 대학생이 없었어요. 입시도 그때는 그냥 고등학교 성적 보고 들어갔어요. 난 고려대를 나왔는데 시험을 봤고, 연세대는 그냥 학교 성적으로만 뽑았고요. 내신으로 뽑았다는 의미는 학교별 수준 차이가 있었다는 게 그런 걸 고려 안 했다는 거죠.”

―그래도 고려대에 가실 정도면 공부를 잘하셨군요?

“그런데 대학 갈 생각도 별로 없었어요. 제가 운동선수 출신이거든요. 옛날에 레슬링 선수였습니다. 내 친구들도 내가 대학 갔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요. 대학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에 한 번 합격했지만 포기했어요. 운동을 계속 못 할 거 같더라고요. 이후 서울대 공대 본고사를 봤는데 떨어졌어요. 고려대 교육심리학과 설립인가가 늦게 나와서 전기와 후기입시 중간에 지원했더니 뽑혔어요.”

―조심스럽지만 요즘 세대보다 편하게 공부했다고 봐도 되는 건가요?

“그렇죠.”

―자녀분들 교육은 어떻게 하셨나요? 교수님이 만드신 수능을 자녀분들도 치렀는지요?

“우리 집 애들은 수능세대가 아닙니다. 큰 애가 쉰이니까(웃음). 첫째는 89학번이거든요. 둘째는 90학번이니까. 그 애도 수능세대가 아니고요.”

―자녀분들은 학력고사 세대네요?

“네. 그리고 애들은 초등학교를 미국에서 나왔어요. 제가 유학을 하는 중이었죠.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왔을 땐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과외 금지령을 내린 때였거든요. 부모 이외에 과외를 하면 다 구속한다고 했다고요. 아이들이 미국에서 오니까 수학 성적이 굉장히 낮았어요. 저는 수학은 가르칠 수 있는데 다른 과목은 할 수가 없었어요. 다른 과학 교사 선생님들에게 과학을 어떻게 가르치냐고 물어보면서 애들을 가르쳤어요.”

―요즘 식으로 보면 홈스쿨링이네요?

“그렇죠.”

철저한 절대평가, 쿠바의 교육시스템

―예전에 쓰신 글 가운데 쿠바교육을 설명한 글이 인상 깊었습니다. 조금 더 알려주실 수 있다면요?

“쿠바는 지구 위에 남아있는 공산주의 국가죠. 국교 정상화 이후, 관광하러 간다고 하면서 굉장히 어렵게 쿠바에 들어갔는데요. 교육 쪽을 보니 대학입시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어요. 대학을 가든, 대학원을 가든 버는 돈이 똑같으니 공부를 그렇게 안 하죠. 공부는 하고 싶은 사람만 하는 거예요.”

―하고 싶은 사람만 하는 공부. 이상적이긴 하는데 학생들 성적은 좋을까요?

“오히려 하고 싶은 사람만 공부하니까 성적이 좋아요. 쿠바의 학업 성취도가 어느 정도냐면 아르헨티나 최상위 그룹 학생과 쿠바의 제일 하위그룹 학생을 비교하면 하위그룹 학생의 성취도가 더 높아요.”

―믿기가 어려운데요. 쿠바만의 교육 방식이 있는 것인가요?

“우선 철저하게 절대평가에요. 그리고 어떤 학생의 성적이 떨어지잖아요? 그 책임을 부모, 지역사회, 학교 선생님이 공동으로 져요.”

―성적이 떨어지면 학생 책임 아닌가요?

“책임을 모두 공동으로 지니까. 그 점이 대단하죠. 제일 신기한 것은 숙제가 ‘개별화’돼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한꺼번에 숙제를 내주잖아요. 쿠바에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어요. 학생 수준에 각각 맞는 숙제를 내줘야 해요. 이럴 거면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하죠. 의식주를 공산주의 체제에서 보장하니까, 교육도 국가가 해주는 것이죠.”

―한국교육이 교수님의 이상과 거리가 멀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조금 기사가 잘못 나가면 문제가 되는데요. 저는 교육에 관해서는 약간 사회주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많은 나라에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가장 사회주의 성격이 약한 곳이 미국이고, 유럽도 다 사회주의 성격을 띠고 있죠.”

―사회주의 성격이라니요?

“교육에서 경쟁보다 협동을 강조하는 것이죠. 우리도 입시 때문에 100여명씩 죽어가고 있다고요. 저걸 그냥 계속 보고 있을 거냐고요.”

―사회주의 성격의 교육이라는 말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습니다만….

“우리가 말하는 자본주의나 자유주의를 부정한다는 뜻은 아니라고요. 그것은 그것대로 하되 교육적인 건 국가가 투자해야 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영국도 모든 대학교수의 보수를 국가에서 줍니다. 프랑스도, 필리핀도 그렇고요. 경쟁보다는 협동을 강조해야 하죠.”

“장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요즘은 교육에서 ‘공정성’이 이슈인데요.

“교육에서 지금 말하는 ‘공정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르치고, 뭘 공부할 지이지요. 제일 중요한 것은 진로지도예요. 진로를 결정할 때 대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장사를 할지, 학문할지, 그림을 그릴지. 이게 중요한 거죠.“

―자기가 필요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학생들이 즐겁게 배우려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죠.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공립학교에서 아이가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어했어요. 내가 담임선생님께 돈이 없어서 곤란하다고 이야기하니, 걱정하지 말라며 교육청에서 수업비를 내요. 차가 없다고 하니까 택시비도 교육청이 내더라고요. 그때 깜짝 놀랐어요. 학교가 이렇게도 해줄 수 있구나.”

―과외활동 말고도 일반적인 교육에서는 어떠해야 할까요?

“학교공부가 즐거우려면 재밌게 가르쳐야 즐겁습니다. 예를 들면, 스웨덴은 어떤 내용을 가르치든지 이 내용이 어떻게 써먹을 수 있는지 반드시 이야기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적분을 배워서 어디에 쓰는지도 몰라요.”

―한국은 어떤 상황일까요?

“언론을 예로 들면요. 한국은 방학하면 ’와∼!’하며 학생들이 학교에서 나오는 사진을 찍더라고요. 미국은 학생들이 방학이 끝나고 즐겁게 학교에 들어가는 장면을 찍어요. 미국 가서 충격받은 일은요. 바로 학생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한다는 점이에요. 우선 학교에서 준 급식이 집에서 주는 밥보다 맛있어요. 또 모든 선생님이 학생 한명 한명에 굉장히 관심을 가져요.”

―한국교육에서 학생들이 즐거움을 잃어가는 이유가 있다면요?

“우리는 계속 다 똑같은 잣대로 재고, 서열화를 하니 문제 해결이 안 됩니다. 교육학개론만 봐도 교육이란 각 개인이 가진 잠재능력을 깨워서 길러주는 일이에요. 모든 학생은 각각 다른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는 관점이 하나의 철학이고, 학생은 능력에서 차이가 있다고 보는 관점이 또 다른 하나의 철학이죠. 다만 장점은 누구든지 있다고요. 어떤 사람이든지 장점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요.”

―어른들도 귀담아들어 볼법한 말씀이네요.

“평가원에 있을 때 직원들에게 하던 이야기가 있어요. 직장이나 학교를 즐겁게 나오지 않으면 그건 헛된 거다. 즐거워야 한다. 공부도 사실 즐거워야 하는 겁니다.”

수험생에게 전하는 당부

―그런데도 만족하지 못한 수능점수를 받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수능은 그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에요. 성적 낮았다고 실망할 것 없고, 좀 높다고 나는 괜찮다고 생각할 이유 하나도 없습니다. 앞으로 대학에 들어가서 할 일들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사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나 스스로 내 문제를 어떻게 볼거냐가 훨씬 더 중요하죠.”

―좋은 말씀인데, 학생들에게 위로가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평가원장 할 때 저 화형식 시킨 사람도 있습니다(웃음). 종로경찰서장이 찾아와서 ‘앞으로 삼성동 쪽 가지 마십시오. 거기서 선생님 화형식하고 있습니다’고 말하더라고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 친구가 하필 또 고려대에 들어왔더라고요. 본인이 와서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수험생들은 수능을 다 싫어했군요.

“시험이라고 하면 어떤 종류 시험이든지 탐탁해 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렇잖아요(웃음).”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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