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TV]it슈줌 인터뷰 베이비박스 상담사 이혜석씨 영상 인터뷰 2009년 이종락 목사가 문 연 베이비박스 아기 1천명 보호·7천명 미혼부모 상담
한겨레TV 썸네일
“엄마들이 베이비박스에 올 때는 아기를 살리고 싶어서 온 것이거든요. 여기 온 엄마들이 삶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내는 엄마들인지 세상이 조금만 다른 눈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바람이에요.”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주사랑공동체. 골목 담벼락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문이 열리면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걸음이 바빠지는 이가 있습니다. 2019년부터 베이비박스를 찾는 엄마들과 무릎을 맞대고 상담하는 이혜석씨. <한겨레TV> 이슈줌 인터뷰에서 이씨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인터뷰 주요 내용을 아래 추렸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으로 확인하시죠.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주사랑공동체 골목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베이비박스 벨이 울리면 어떻게 하세요?
“심장이 막 뛰어요. 엄마를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적어도 아기가 크면 갖고 가야 할 엄마의 편지라도 있어야 하거든요. 아기 이름이라도 있어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절박해요. 엄청난 속도로 엄마를 붙잡으려고 뜁니다. 올겨울에 눈 올 때 아기를 두고 가는 엄마를 놓쳤어요. 뛰다가 아기 엄마한테 소리를 엄청 질렀죠. 만나고 가라고.”
―상담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요?
“뒤돌아서는 엄마들의 죄책감과 상처가 아주 크거든요. 여기 오는 엄마들은 온전히 혼자서 임신 기간 내내 모든 것을 감내한 엄마들이거든요. 힘들다고, 아프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런 말도 못하는 엄마들인데, 그들에게 우리 상담사들의 말 한마디는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를 다 쏟아 놓게 하죠.”
―엄마와 마주 앉으면 어떤 이야기 나누세요?
“먼저 엄마를 위로하죠. 너무 고생했다고. 아기 낳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 막달엔 밑이 아마 빠질 정도로 힘들 텐데 그런 상태에서도 엄마가 임신했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버티고 버텼어요. 어떤 엄마는 출산하기 전날까지 공장에 다녔어요. 베이비박스에 오는 엄마들을 세상이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저는 알거든요. 그렇지만 여기 온 엄마들이 삶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내는 엄마들인지 세상이 조금만 다른 눈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바람이에요.”
베이비박스 상담사 이혜석씨.
―기억에 남는 엄마는 누구인가요?
“2009년 상담했던 아기 엄마인데, 이혼 과정 중에 남편한테 성폭행을 당한 거예요. 아기가 둘이나 있었는데, 남편이 폭력적이다 보니까 엄마가 자살 시도를 몇 번 했어요. 이혼 과정에서 남편이 찾아와서 성폭행했고 임신했어요. ‘혼자선 아기 셋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울면서 얘기했거든요. 우리가 할 일은 엄마를 설득하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에게 암이 발견됐어요. 엄마가 아기 출생 신고를 해줘서 아기는 장기 위탁으로 돌볼 수 있도록 했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엄마는 그 엄마예요. 너무나 가슴 아픈 게 잘살아 보려고 했는데,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서 진짜 잘살아 보려고 했는데, 암이 발견됐고 말기였어요. 2년 지났죠. 그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기 돌볼 상황이 안되는 엄마에게 아기를 길러 달라고 얘기하는 게 늘 옳은가. 여기 오는 엄마들이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아기를 데려가 키우는 엄마도 많죠?
“처음엔 아기를 보육원 시설로 보낼 생각하고 와요. 그러다 미혼모자 돕는 프로그램이나 여러 사회복지 시스템에 관해서 얘기를 해주면 엄마들이 마음을 조금 돌려요. 그러면 ‘몇 달만 아기 봐주시겠습니까’라고 해요. 그렇게 저희에게 위탁하는 경우도 있어요. 엄마들이 방 보증금 낼 돈 마련하면, 일자리만 생기면 아기를 꼭 찾아가겠다고 해요. 그렇게 약속하고 아기를 데려가는 엄마들이 많이 있어요.
2년 전에 온 한 엄마는 이혼 가정이에요. 몇 달만 아기를 돌봐달라고 해서 봐줬죠. 이젠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다 독차지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요. 만약에 엄마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같은 행복이 없었잖아요. 베이비박스에 왔던 아기를 찾아서 기르는 가정들이 꽤 많아요. 그런 가정은 36개월 동안 아기 양육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품을 지원하고요. 개미 후원자들이 저희에게 지원해 주세요.”
―기억에 남는 후원자 있으세요?
“어떤 아주머니가 나랏미(정부미)라는 쌀을 가지고 왔어요. 정부에서 기초 생활 수급자에게 주는 쌀인데, 여기 온 엄마들 생각하면서 그들 가정에 주라고 놓고 가셨어요. 이런 게 후원이구나. 저런 마음으로 후원하는 거구나 싶었어요.”
―엄마에게 양육을 권하는 이유가 뭘까요?
“제가 잘했다는 생각을 어디서 했느냐면요. 베이비박스에서 지내다 엄마가 데려간 아기들 사진을 보내주세요. 지극히 고요하다는 그 아기의 표정 속에 평안함이 들어있어요. 그걸 보면 엄마를 설득해야 되겠구나 싶어요.”
―보육원에 가야 하는 아기도 있죠?
“가장 힘든 부분이 아기들이 시설로 나갈 때죠. 아기들에게 닥쳐야 하는 어려움, 차별들 저는 알잖아요. 아기는 보육시설에서 건강하게 자랄 거예요. 그렇지만 성장 과정에서 혼자 인생을 개척해야 하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죠. 우리는 어려울 때 엄마가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넘어지면 일으켜도 주고 그런데. 그런 응원들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거든요. 아기들이 보육시설에 가면 먹고 입는 것은 부족함이 없을지 몰라도 가장 든든하게 지탱해줄 만한 (정신적) 기둥이 그들에게 없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요.”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주사랑공동체 골목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베이비박스에 대한 시선이 어떻게 바뀌면 좋을까요?
“정부에서 베이비박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다른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아기들이 시설로 나갈 때, 경찰에 신고하거든요. 전화 받는 경찰분도 ‘버려진 아기죠’라고 얘기해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엄마들이 여기 올 때는요. 아기를 살리고 싶어서 온 거예요. 그 엄마들도 쉽게 아기를 놓고 가겠어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가는 걸 ‘유기’라고 표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기 살리고 싶은 엄마의 그 애끓는 마음. 여기까지 아기를 끌어안고 올 때, 돌아갈 때 그 엄마의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사진 문석진 한겨레TV 편집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