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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졸업장이 나를 대변하는 시대의 종언

등록 2020-12-28 17:07수정 2020-12-29 02:36

연재ㅣ강원국의 ‘공부하면 뭐 하니’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해봅니다. 그중 하나가 머잖아 학교가 없어질 것이라는 상상입니다. 공부하는 물리적 장소로서의 학교 말입니다.

첫 직장이 증권 회사였습니다. 증권사 ‘객장’이란 게 있었지요. 주식 투자자들이 모여 앉아 주식 시세를 봤습니다. 실시간으로 주식 가격을 알 수 있는 데는 객장밖에 없었습니다. 그곳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득실득실했지요. 지금은 객장이 사라졌습니다. 스마트폰 등으로 시세를 확인합니다.

나는 강의하고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코로나 초기 국면에서 강의가 모두 끊겼습니다. 그러다 비대면 강의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학교에서도 많이 하고 있지요. 비대면 강의는 단점도 있지만 나름의 장점도 많습니다. 공간적·시간적 제약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가장 좋은 점입니다. 어디서나, 아무 때나 들을 수 있지요.

일정한 시간 학교에 나가야만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각자 편한 시간에 편한 장소에서 들으면 됩니다. 반복해서 들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익숙해지면 코로나가 물러나도 대면 수업으로 돌아가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는 아직도 길에 서서 택시를 잡습니다. 손을 들고 빈 택시가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갈수록 빈 택시보다는 ‘예약’ 표시를 한 차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들이 내게 택시 부르는 프로그램을 깔라고 합니다. 조만간 나도 그리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앞으로는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잘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앞으로는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잘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강의도 처음에는 ‘줌’(비대면 강의 툴)을 쓰는 게 무서워 집에서 해도 되는 강의를 굳이 가서 했습니다. 집이 경기도인데 강원도 평창까지 가서 비대면 강의를 한 적도 있지요. 집에서 강의하다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봐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이제는 나도 집에서 비대면 강의를 합니다.

머잖아 학생들은 학교에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에 가진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을 읽고 듣는 것은 집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학교의 기능은 가르치는 것 말고도 다양합니다. 친구들과 교류하고 체력을 기르는 등의 역할은 지속돼야겠지요. 하지만 등교가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로 취급되진 않을 것입니다. 특별한 날을 정해 학교에 나가겠지요.

나아가 입학도 없어질 것입니다. 왜 우리는 입학을 했는가. 매일 등교하는 학교를 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학생이 그 학교 선생님에게만 수업을 들을 필요가 있을까요? 다른 학교 선생님에게 들으면 안 되나요? 이전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되거든요. 이전에 없던 온라인이란 게 생겼잖아요.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해졌습니다. 이미 학생들은 유튜브나 인터넷 강의를 통해 배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학교는 오프라인만 가능했던 시대의 관성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지요. 과거 집에 배달되는 신문을 보고 뉴스를 접했던 것처럼.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졸업장은 어디서 받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졸업장이 의미 없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사람을 뽑을 때 졸업장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지금은 ‘어디 나왔느냐?’고 묻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을 뽑습니다. 졸업장이 그 사람의 능력을 대변하지요. 이렇게 된 데에는 대졸 공채 제도가 핵심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사람을 뽑는 기업은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의 역량을 알 길이 없습니다. 어차피 자기들에게 필요한 역량은 재교육을 통해 키워야 하지요. 그런 상황에서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졸업장에서 적어도 이런 걸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얼마나 말을 잘 듣고 성실한지, 이해력·분석력·암기력이 좋은지. 그리고 인내심과 지구력이 있는지. 중고교 과정에서 공부를 잘했다는 건 이런 능력이 있다는 뜻 아닐까요?

인공지능 시대에도 이런 역량이 중요할까요? 인공지능은 잘 참고 꾸준합니다. 쉬지도 않습니다. 시키는 것 군말 않고 해냅니다. 감정의 기복도 없지요, 이해하고 분석하고 기억하는 능력은 인간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탁월합니다. 하지만 창의성은 없습니다. 창의력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그런데 내가 학교 다닐 적만 해도 공부 잘하는 것과 창의력은 관계가 없었습니다. 창의력과 관계 있는 질문, 관찰, 공감, 상상, 감성 역량이 부족해도 공부는 잘할 수 있었습니다. 도리어 이런 역량이 부족할수록 공부를 더 잘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창의성이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에도 기업은 졸업장을 보고 직원을 채용할까요?

아, 이럴 순 있겠네요. 이른바 명문대 나온 친구들을 뽑아둬야 정부기관에 선을 대야 할 때 써먹을 수 있다고요. 이것 역시 시대착오적입니다. 세상은 앞으로 더 투명해질 것입니다. 그런 게 통하질 않지요.

무엇보다 기업이 정부 눈치 보느라 대졸 공채를 뽑는 일을 지속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경력직을 선호할 것입니다. 이미 자신들에게 필요한 역량이 검증된 사람, 돈 들여 재교육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뽑으려 할 것입니다. 그럴 만큼 시장권력이 세졌습니다. 나도 기업에서 사람을 뽑아봤지만, 경력직은 대학을 어디 졸업했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과 기술을 갖췄는지, 그 분야에서 어떤 실적과 성취를 해냈는지를 보지요. 또 그것이 올바른 평가 방식이고요.

결론적으로, 대학 졸업장을 보고 사람을 뽑지 않으면 이른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경쟁하지 않을 것이고, 초·중·고등학교가 대학 입시에서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앞으로는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잘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질 것입니다. 국·영·수 고루 잘해서 평균점수가 높은 것보다는 어느 것 하나, 자신이 좋아하고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그 무엇에 몰입하는 게 새로운 시대에 앞서가는 길이 되지 않을까요?

강원국 ㅣ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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