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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폭이 한때 장난? 피해자엔 풀 길 없는 ‘평생 트라우마’

등록 2021-02-18 04:59수정 2021-02-18 11:58

[이유있는 학폭 미투 확산]

“현직 경찰·교육감 자녀도 가해자”
스포츠·연예계 넘어 학폭 폭로 번져
‘어릴적 폭력도 결국 응징’ 교훈으로
가해 28%가 ‘장난·특별한 이유 없어’
당한 이는 우울·위축·극단선택 후유증
“교육부 대책, 피해자 치유 초점 둬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중학교 때 동료 선수들을 괴롭혔다는 폭로가 사실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는 프로배구 선수 이재영·이다영 자매 사건 이후 이른바 ‘학폭 미투’가 스포츠계를 넘어 사회 전 분야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 15일 하루에만 온라인 커뮤니티에 현직 경찰과 현직 교육감 자녀에게 길게는 20년 전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주장을 담은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트라우마가 성인이 되도록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폭 미투’를 계기로 피해자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좀 더 효과적인 지원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17일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피해자 쪽과 전문가들은 이번 ‘학폭 미투’가 일종의 교육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아무리 과거에 저지른 폭력이라도 미래에는 결국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교훈을 안겨줄 수 있다는 얘기다. 학가협은 자녀가 학교폭력으로 심하게 다친 사건을 계기로 부모가 직접 나서서 꾸린 단체다. 신준하 학가협 사무국장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회적으로도 학교폭력이 잘못된 행위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피해자 지지 여론이 쉽게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들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문제는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신체적 후유증이다.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우울, 위축·불안, 낮은 자아존중감, 자살행동 등을 겪는데 이 후유증을 오롯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이 짊어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신 사무국장은 “성인이 돼서도 한동안 골목길을 다니지 못할 정도로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따돌림사회연구모임’의 강균석 교사(부천일신중)는 “피해 학생이 피해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진실을 규명하고 울분을 푸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장기간 자신을 자책하며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가해자들은 자신의 폭력을 장난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달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295만명 가운데 가해 경험이 있다는 9300명은 가해 이유로 ‘장난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28.1%)를 가장 많이 꼽았다. ‘화풀이 또는 스트레스 때문에’(8.3%), ‘강해 보이려고’(5%)와 같은 이유로도 폭력을 저질렀다. 그런데도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한 학생 2만6900명 가운데 17.6%는 외부에 피해 사실을 알리지도 못했다.

피해자 쪽과 전문가들은 교육당국이 학교폭력 가해자의 처벌 강화보다 피해자가 조기에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상담이나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피해 학생 지원 기관을 대폭 확충하고 교육부가 이를 직접 운영해야 한다는 얘기다. 교육부는 2019년 기준 48곳이었던 피해 학생 지원 기관을 2024년까지 60곳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인데, 규모도 문제지만 국립청소년우주센터에서 피해 학생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의 이유로 전문성에 대한 지적을 받아왔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교육학)는 “학교폭력은 예방과 처벌, 치유를 통한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복귀가 모두 균형적으로 고려돼야 하는데, 그동안 예산·인력 부족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데만 주로 초점이 쏠려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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